집중 훈련 3일째, 브레이크 타임에 마침 처남에게 전화가 걸려와 통화를 하였습니다. 여느 때와는 달리 처남의 목소리가 많이 상기되어 있었습니다. 처남의 전화는 참으로 반가운 전화였습니다. 손윗동서가 이번 정기 진급 심사에서 준장 진급이 확정되었다는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상식적으로 세인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직업 군인으로 투신하여 별을 단다는 것은 정말로 하늘에 있는 별을 따는 것과 정비례되는 표현으로 말 할 정도로 어려운 일입니다. 이렇게 어려운 과정을 통과했다는 처남이 전해 준 소식은 정말 기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손윗동서의 진급 과정은 2년 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장모님을 비롯하여 처갓집 식구들 모두의 공통의 기도제목 중의 하나는 그래서 자연스럽게 2년 전부터 손윗동서의 장군 진급이었습니다. 저는 물론이거니와 아내도 자연스럽게 2년을 중보 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탈락이었습니다. 저와 아내는 형식으로 기도한 것이 아니었기에 손윗동서의 진급이 2년 동안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스스로 정의하고 중단했습니다. 이것이 목사가 가지고 있는 신학적 해석의 한계입니다. 저와 아내는 그렇게 포기를 했습니다. 허나 이번에 손윗동서는 장군 진급에 드디어 성공했습니다. 저는 그렇게 기도 응답을 포기했는데 저를 부끄럽게 동서는 보란 듯이 드디어 별을 달게 되었습니다. 처남을 통해 기쁜 소식을 듣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생각 끝에 너무나도 중요한 교훈을 배웠습니다. 그것은 손윗동서를 통한 기도는 중단된 것이 아니었다는 교훈이었습니다. 분명히 손윗동서의 장군 진급은 기도의 응답이었습니다. 그것은 장모님의 기도 응답이었습니다. 지난 2년 동안도 장모님은 기도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당신도 지금 몸 하나를 건수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육체의 나약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장모님은 큰사위의 진급을 포기하지 않고 다니엘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2년이라는 세월이 지났기에 가능성이 제로인 동서의 장군 진급을 위해 당신은 누가 뭐라 해도 상관이 없이 하루에 어김없이 세 번씩 무릎을 꿇으셨습니다. 다른 식구들이 이성적으로 포기한 기도제목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당신의 눈물 어린 기도의 제목이 응답되었습니다. 저는 목사입니다. 그것도 아주 자신의 신학적인 기초를 든든하다고 스스로 자부하는(?) 그런 목사입니다. 2년을 기도했는데 응답이 되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다른 뜻이 있다고 명쾌하게 해석한 자랑스러운(?) 목사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이렇게 자랑스러운 목사인 둘째 사위에게 기도에 응답은 신학이 아니라 인내라는 더 위대한 요소를 장모님께서는 삶으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다보니 또 하나의 눈물을 자아내는 감동을 종은 받습니다. 스가랴의 고백 그대로 타다 남은 검게 그을린 마른 장작나무 같은 부족한 제가 지난 25년 동안의 목회 여정 중에 어줍지 않지만 여기까지 달려올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큰사위를 위하여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행하셨던 장모님의 바로 그 기도가 저에게도 동일하게 중보 되었기 때문임을 심장으로 배웠습니다. 신학교에서 배운 것보다 훨씬 더 위대한 영적인 지혜를 손윗동서에게 임한 장모님의 기도의 응답을 눈으로 보며 아주 진하게 배울 수 있었습니다. 차제에 손윗동서에게 진심으로 축하의 인사를 전합니다.
“강창구 안수집사의 장군 진급을 축하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