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민,이선영집사님 자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목사가 된 이래 목회하기가 정말 쉽지 않은 사역이 있습니다. 두 가지 경우의 장례식 인도입니다. 신앙과는 전혀 상관이 없이 악한 인생을 살았던 자를 교회 지체 내의 가족이 장례를 부탁하여 가족관계라는 입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장례식이 그 첫 번째요, 그 다음은 예수를 잘 믿는 하나님의 백성이 젊은 나이에 불의의 사고로 생명을 잃어 슬픔 속에 장례를 인도할 때입니다. 이 두 가지의 경우를 목사가 직면하여 사역을 행할 때 그 답답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지난 주간 앞서 언급한 두 가지의 경우와는 다른 예이지만 장례를 인도하기가 아주 거북한 장례식을 인도했습니다. 이선민, 이선영집사 자매의 친할머니이셨던 고 이계자집사님의 장례 사역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에서 귀한 신앙생활을 감당하고 있는 집사님 남매의 할머니는 역시 주님을 구주로 믿고 신앙생활을 하시다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으셨기에 마땅히 장례의 예식을 목사가 맡는 것이 일상의 상식이라고 생각하여 사역에 임했습니다. 그러나 사역은 그리 녹록하지 않았습니다. 아주 신앙에 대하여 냉소적인 남매 집사님의 작은 아버지와 약간의 불신앙자 형제들 때문이었습니다. 기독교의 집사직을 받고 신앙생활 하시던 어머님, 그리고 어머님의 신앙 따라 지금도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 따님들, 동시에 너무 예쁜 신앙생활을 감당하는 손녀딸들이 마땅히 어머니이자 할머니인 이계자집사님의 이 땅에서의 육신적인 이별의 모든 순서를 목사의 위로와 격려를 받으며 모시고 싶었을 것은 당연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부장적인 문화가 강력한 우리나라의 가정구조상 장남이 이미 세상을 떠나 부재인 상황에서 신앙적으로 냉소적인 작은아버지인 상주의 권위와 입장에 대하여 주장할 수 있는 힘이라고는 그들에게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이선민집사와 이선영집사의 애타는 마음만으로는 장례의 대세(?)를 바꿀 수는 없었습니다. 기독교적인 장례예식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제례 행위를 보면서 장례를 인도하는 목사로서 도저히 예배를 인도할 수가 없었지만 두 남매의 애끓는 마음을 먼저 이해했기에 용기를 내어 부분적인 장례를 인도하였습니다. 상주가 주어진 예배에 참석하지 않았던 예는 종이 지금까지 제천에서만 인도한 약 100여 차례의 장례예배를 통틀어 처음 있는 일이었고, 아무리 상주가 불신자라고 하더라도 마땅히 부모님께 효도하는 마음으로 예의상 참석들을 했기에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당황스러운 일을 경험하면서 심히 유감스러웠습니다. 이런 일로 인하여 결국은 하관예배를 부득이 산에 까지 올라가서 인도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일을 경험하면서 그 동안 두 자매 집사님들의 마음고생이 얼마나 컸을까 하는 마음에 사랑하는 자매들이 애처로워졌습니다. 올바른 신앙적 삶이라는 것이 고독한 길이기는 하지만 종이 두 집사님들을 7년을 섬기면서 그 동안 두 집사님들이 가정을 통해 말하지 못할 아픔들이 한꺼번에 밀려오는 것 같아 가슴이 찡해 왔습니다. 부분적으로 인도한 장례였지만 두 집사님을 보면서 종이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이선민집사님, 이선영집사님. 수고하셨습니다. 손녀로서 정말로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기에 두 집사님들이 자랑스럽습니다. 할머니의 소천 이후에 이제는 조금은 더 자유롭게 할머니에 대한 부담감에서 벗어나 행복한 삶을 사는 집사님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장례를 통해 집사님 두 사람을 종은 더욱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행복합니다. 두 분에게 박수를 보내 드립니다. 사랑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