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지은이 | C.S 루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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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출판사 | 두란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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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일 | 2021-08-19 11:08: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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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 루이스의 “책 읽는 삶” (두란노, 2021년)을 읽고 “지식은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라 인격적이고 체험적으로 아는 것이다. 우리가 곧 타인의 자아가 되는 것이다. 단순히 타인이 어떠한 사람인지를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타인이 보는 것을 우리도 보기 위해서다.” (p,20) 아주 가끔 경험하는 일 중에, 너무 상식의 일이기에 너무 많은 타자들이 공통으로 인식하고 있는 본질적인 이해조차도 하지 못하는 또 다른 타자들을 대할 때가 있다. 그때마다 말 그대로 화나고 아연실색한다. 도쿄 올림픽이 종료되었다. 탁구 신동으로 각광을 받으며, 이번 올림픽에서 탁구 국가대표로 분전한 이제 갓 17세인 미성년 여자 선수의 활약 사진을 캡처하여 성적으로 희롱한 일련의 일들을 보면서 그랬다. 중요한 것은 이 일에 공범자들 중 상당수가 지식층이라는 것이다. 한양대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유영만은 헤르타 뮐러가 쓴 ‘숨그네’를 읽고 이렇게 북 리뷰의 한 문장을 남겼다. “내가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책이 나를 읽는다. 내가 책속으로 파고들어 저자와 혼연일체가 된 것이 아니라, 책이 나를 먹어버리는 독서는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유영만의 블로그 글 중에서) 루이스야 말로 책이 본인을 먹었다고 고백하는 수많은 유경험자 중에 한 명이다. 저자는 계속해서 이렇게 일갈한다. “좀체 책을 읽지 않는 친구와 대화를 하다보면 그가 아주 선량하고 사리 분별력도 꽤 있지만 안타깝게도 그가 사는 세계는 너무 작다.” (p,21) 너무 적절한 통찰이다. 오래 전에 필자가 존경했던 신영복 선생이 쓴 글의 한 대목 때문에 무릎을 쳤다. 전적으로 동의했기 때문이다. “1회 완료적인 변화란 없습니다. 개인의 변화든 사회의 변화든 1회 완료적인 변화는 없습니다. 설령 변화가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계속 물주고 키워내야 합니다. 그것이 인간관계라면 더욱 더 그렇습니다. 제도가 아니라 움직이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신영복, “담론”, 돌베개, 2015,p,244.) 루이스가 에두른 것처럼 필자도 인간이든 사회든 1회적인 완성품이 탄생되지 않기에 지속해서 물주고 키워내는 치열한 작업이 필요한데 필자는 그것을 독서라고 도전하고 싶다. 금년 들어 영문학도 시절, 그렇게 담임교수가 원서 강독으로 종용했던 독서 목록을 때늦은 후회와 자책으로 파헤치고 있다.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시작으로 ‘파우스트’,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조나단 에드워드 전집’들을 진하게 만났다. 루이스는 아주 단호하게 권한다. “요즘 시대의 책들은 그 내용이 옳은 경우에는 우리에게 이미 어설프게 알던 진리를 줄 뿐이고, 틀린 경우에는 이미 중병 수준인 우리의 과오를 가중 시킬 뿐이다.”(p,56) 그래서 그랬는지 저자는 독자들을 향하여 그만의 독서선택 요량을 알려준다. “신 서 세 권에 적어도 한 권의 고서(고전)를 읽어야 한다.” (p,54) 필자는 버릇이 있다. 글을 읽다가 심쿵(?)하는 문장을 만나면 잠시 멈춘다. 밑줄을 긋고 설교 메모 파일에 삽입한 뒤, 곱씹고 되새김질을 거듭하는 습관이다. “진실하지 않고는 글쓰기가 치명적으로 어려울 수 있으나, 진실성 자체는 누구도 좋은 작법을 가르친 적이 없다. 진실성은 문학적 재능이 아니라 도덕적 덕목이다. 진실성에 대한 보상을 바랄 곳은 내세이지 문단이 아니다.”(p,130) 본서를 원서로 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부분이다. 번역자가 나름 최선을 다해 번역했을 것으로 믿지만, 뉘앙스에 있어서 ‘진실성’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들게 하는 부분이기에 필자는 아쉬움이 있었다. 도리어 나는 윗 문장을 역설한 루이스의 갈파에 정면 돌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진실성이 요구되는 필드는 내세는 물론 문단(文壇)도 포함이라고. 지면 한계가 있지만 절대로 놓치지 말아야 하는 저자의 금과옥조를 한 가지만 더 나누자. “단언하건데, 모든 좋은 책은 적어도 10년에 한 번 다시 읽어야 하네.” (p,142) 저자의 절친인 아서 그리브즈에게 보낸 편지에 담긴 글이다. 근래, e-book이 대세다. PDF 파일로 읽어지는 수많은 책들이 있다. 생각의 다름을 이해하고 들어주시기를. 나는 불편하다. 루이스의 말대로 필자는 고전에서 풍기는 종이냄새가 너무 좋다. 색 바랜 책의 추억도 즐긴다. 그러나 정말로 종이책을 사랑하는 이유는 다시 읽는 책을 펼쳤을 때, 밑줄 그은 글에 대한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의 해석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성장인가? 퇴보인가? 다시 보는 책이 시금석이 되어준다. 메이지 대학 사이토 다카시 교수의 글로 마무리한다. “독서를 하지 않는 사람은 진정한 공부를 하기 위한 출발선에조차 서지 못한 자다.”(사이토 다카시, “독서는 절대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 걷는 나무, 2014,p,34.)
2021년 72번째 독서 목록으로 강추한다. C.S. 루이스의 ‘책 읽는 삶’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