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란히 걷는 것은 아주 섬세한 행위랍니다.” (나희덕, 『파일명 서정시』, 창비, 2012, 102쪽)
제가 참 좋아하는 나희덕 시인의 시어를 만났을 때 화들짝했습니다. 뭔가 숨기고 있는 게 발각된 느낌이어서. 왜 아니 그러겠습니까? 보폭 맞추기를 포기한 시대를 살고 있는 오늘 나이기에 말입니다. 매년 12월 31일이 돌아옵니다. 오늘도 또 내게 성큼 걸어왔습니다. 내 딴에는 보폭을 맞춰 걸어보려고 무척이나 힘써보았는데, 여전히 삐걱거리는 나를 보며 동주 시인이 그랬던 것처럼 슬픈 참회록을 또 써보는 것으로 자위하곤 합니다. 2024년, 많이 애쓰셨습니다.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일들이 비일비재한 2024년이었지만, 놀란 가슴 쓸어내리고 다시 다잡이하며 묵묵히 보폭을 맞추려고 노력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송구(送舊) 예배를 앞두고 몇 자 적어 2024년에 함께 해주심에 감사 인사를 드려봅니다. 오래전에 레비나스의 글을 읽다가 잠시 생각을 멈추게 했던 문장이 오롯합니다. “받아들인 타자. 그것이 타인이다.(L'autre “assumé” – c'est autrui.)” (엠마누엘 레비나스, 『시간과 타자』, 문예출판사, 2018, 91쪽) 2025년에는 타자에게 더 집중해 보고자 합니다. 그래서 행복한 날이 오도록 했으면 좋겠습니다. 12월 31일, 아름다운 카이로스의 시간이 되기를 기도해 봅니다.
2024년 12월 31일 송구 예배를 앞두고 제천세인교회 이강덕 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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