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깨기 (WELCOME)경배와 찬양 (WORSHOP)●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찬송가 94장) ● 만입이 내게 있으면 (찬송가 23장) | 말씀읽기와 적용 (WORD)● 제목 : VIP (1) ● 본문 : 베드로전서2:9-10 1)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붙여주신 VIP 호칭 중에 ‘택한 족속’의 의미를 두 가지로 나누어 보자. ● 누가 택함을 받을 수 있는가? (고린도전서 1:27-29절 참고):
● 택함을 받은 자들이 얻는 복은 무엇인가? (로마서 8:35-39절): |
2) ‘왕 같은 제사장’ 의 호칭에서 주목해야 할 내용을 다시 살펴보자. ● 교회의 영역에서의 제사장과 세상의 영역에서의 제사장을 만인제사장설에 입각하여 나누어 보자.
● 차별과 구별의 입장에서 만인제사장설을 해석해 보자. |
3) 택한 족속이라는 VIP로 세상이라는 영역에서 살아가는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해야 할들이 무엇인가? ● 적용하기: 예) 5월 표어를 적용해 보자. ● 지난 4월 한 달 동안 표어대로 살았는가를 점검하며 세상의 성직을 지속적으로 잘 감당할 수 있도록 합심하여 기도해 보자. | 사역하기 (WORK)1) 오순절 릴레이 기도회 ① 기간: 3월 28일(월)~ 5월 14일(토)까지 ② 시간: 오전 9시~ 오후 9시까지 (1시간씩 담당) (기도를 마친 후 다음 지체에게 문자 남기기) ③ 장소: 교회 혹은 개인의 상황에 따라 2) 중보기도 ① 춘계대심방을 위하여(김명옥 셀을 위하여) ② 환우들을 위하여(최정희 집사, 안동철 형제 등등) ③ 5월 사역 나누고 기도하기 3) 헌금 4) 광고: 5) 폐회: 주기도 | 설교요약 (SUMMARY)2016년 5월 1일 주일 오후 예배 ● 제목 : VIP (1) ● 본문 : 베드로전서2:9-10
세속적 관점에서의 VIP의 위상은 언제나 유동적입니다. 얼마든지 변질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속적 관점과는 전혀 다른 어느 경우에든지 변하지 않는 영역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살피면 총 네 가지로 성도들을 VIP로 호칭합니다.
1) 택하신 족속으로 대우하십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고유 언어 중에 ‘택하다.’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택하셨다.’라는 이 단어는 우리 교우들 사이에 너무 빈번하게 사용되는 단어이다 보니 어느 경우는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는 이 단어는 결코 과소평가해서는 안 되는 중요한 단어입니다. 성경적인 내증이 증언하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8:38-39절입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헌데 로마서 8:38-39절의 이 어마어마한 위로의 말씀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말씀이 아니라 특정한 인물에게 주어지는 말씀이라는 점을 주목하여야 합니다. 로마서 8:38-39절에 기록된 끊어지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대상자를 앞선 구절인 로마서 8:29절 이하에서 이렇게 선언합니다. 29-30절을 보도록 합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기막힌 은혜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끊어지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를 바울은 분명히 한정하고 있습니다. 네 가지입니다. ① 미리 정하심을 받은 자 ② 부르신 자 ③ 의롭게 해 주신 자 ④ 영화롭게 해 주신 자입니다. 네 가지를 종합하니 보이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택함을 받은 백성들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택함을 받은 자들에게 주어지는 은혜가 바로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사망도, 생명도, 천사들도, 권세자들도, 현재 일도, 장래 일도, 능력도, 높음도, 깊음도, 다른 어떤 피조물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으로부터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주어지는 특권으로 이렇게 한층 더 나아갑니다. 로마서 8:31-35절을 봅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3절이 보이십니까?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저와 여러분의 신분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으로부터 선포된 택하신 족속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베드로를 통해 오늘 본문에서 분명하게 선언된 택함을 받는 족속이 특별한 계층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저와 여러분이라는 점에서 하나님의 진정성을 확신합니다. 잘 생각해 보십시다. 저와 여러분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자랑할 만한 것이 있습니까? 그래도 이것만큼은 내가 타의 추종을 불허할만한 특별한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한 터럭도 없는 존재가 저와 여러분이 아닙니까? 그런데도 저와 여러분이 택함을 받았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때가 솔직히 있습니다. 기적 같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조금 더 깊이 열람하면 그래서 오히려 하나님이 우리들을 택하셨다는 것에 대한 진정성이 믿어지는 또 다른 증거가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27-29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 구절은 특별히 우리를 감동시켜 줍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의 미련함 때문에 택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의 약함 때문에 택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의 천함과 가지고 있지 못함 때문에 택하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나를 택하여 주신 은혜에 감사하기에 노래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입이 내게 있으면 그 입 다 가지고 내 구주 주신 은총을 늘 찬송하겠네.”
2) 왕 같은 제사장으로 대우하십니다.
구약성경에서 제사장의 역할은 항상 중재자의 역할이었습니다.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갈라진 틈새를 이어주는 자가 제사장이었습니다. ‘제사장’으로 번역된 ‘히에라투마’는 원래 문자적인 뜻이 ‘성직계급의 질서’를 말하는 개념입니다. 그래서 이 단어에서 가톨릭교회의 성직 계급은 상징하는 단어 ‘hierarchy’(하이어라키)가 파생되었습니다. 이 단어는 근래 들어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쓰입니다. 그러나 제사장을 의미하는 라틴어 단어는 상당히 긍정적인 뜻을 갖고 있습니다. pontifex 라고 하는데 이 단어는 ‘다리를 이어주는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설득력이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과 인간의 단절을 이어주는 그래서 다리를 놔주는 중보의 역할자라는 뜻으로 합당합니다. 베드로전서의 이 말씀을 근거로 종교개혁자들이 봇물처럼 주장하고 나선 것이 바로 그 유명한 만인제사장설입니다. 적어도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은 무리들은 성직의 개념으로 사역하고 있는 목회자나 평신도의 반열에서 사역하고 있는 여러분이나 동일하게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이라는 개념이 만인제사장설의 골격입니다. 저는 이 교리적인 문제를 이야기 할 때마다 신학적 의미 그대로 모든 하나님의 구원 받은 백성들은 성직자라는 것에 대하여 조금의 이의를 달지 않고 동의합니다. 일부 은사중심적인 카리스마틱 한 목사들에게는 이 만인제사장설이 목회자의 권위를 허물어뜨릴 수 있는 요소가 있다고 해서 경계하고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분위기가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은 옳은 방법이라고 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차제에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 모두가 제사장이라는 개념으로 본문에서 베드로의 입을 통해 전언해 주신 왕 같은 제사장이라는 신학적 의미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통정리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한 번 즈음은 본문 순서에 나온 내용이니까 건드려 보려고 합니다. 하나님이 목사를 성경을 가르치는 전문가로 세우셨습니다. 그래서 목사는 설교를 준비하고 성경을 가르치기 위해서 지속적인 전문성을 추구해야 하고 공부해야 합니다. 반면, 평신도 제사장들은 세상이라는 영역에 파송한 하나님의 성직자들입니다. 그렇다면 평신도 성직자들이 해야 할 일은 세상의 영역에서 왕 같은 권위를 같고 세속적 전문성으로 예배를 드리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세속의 영역에서 목사는 아무 일을 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맡기신 영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목사는 교회 안에서 성도들을 섬기고 돌보고 성경을 가르치는 직분자로 부름 받았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목사는 하나님의 거룩한 직을 감당하는 성직자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반면, 평신도들로 세속의 영역을 하나님의 도로 점령해 나아가야 할 성직자들입니다. 언젠가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은 그리스도인” 이런 사람이 바로 세속의 영역에서 주의 일을 감당할 거룩한 제사장입니다. 어느 것 하나 과대평가되어야 하고 과소평가되어야 할 성직이 아닙니다. 공히 이 두 성직자들은 왕 같은 제사장들입니다. 여기에서 한 가지 노파심으로 드리고 싶은 권면이 있습니다. 교회를 맡아 사역하는 성직자인 목사, 세속의 영역을 섬기는 평신도 성직자는 공히 같은 공통분모를 가지고 다른 영역에서 사역하는 동등한 동역자입니다. 그래서 둘 중의 하나의 편 가르기나 높고 낮음의 차원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차별하지 말아야 하는 구조라는 말입니다. 동의합니다. 그러나 또 한 가지를 덧붙이고 싶습니다. 그것은 구별함이었습니다.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며 월권하지 말자는 권면입니다. 그래야 질서가 유지됩니다. 이것이 무너지면 교회 공동체는 와해됩니다. 베드로가 말한 왕 같은 제사장이라는 만인제사장설의 성경적 근거를 악용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근래 들어 설교권에 대하여 평신도들에게도 허용되어야 한다는 주장들이 진보주의적인 교회에서 강하게 표출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점에 대하여 부분적으로 동의합니다. 평신도들도 얼마든지 설교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전제가 있어야 합니다. 신학적인 공부와 니케야 신조에서 말한 사도적 권위를 알고 인정하는 경우로 제한해야 한다는 것이 전제입니다. 설교는 케리그마입니다. 케리그마의 이해는 신학이 있는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곁길로 나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세인 지체 여러분! 오늘 저는 여러분에게 베드로가 선언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VIP의 증거로 총 4가지 중에 두 가지를 먼저 소개했습니다. 위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 안에 택함을 받은 거룩한 족속임에. 동시에 하나님께서 왕 같은 제사장으로 어떤 이는 교회에서, 어떤 이는 세상에 다리를 이어주는 귀한 VIP임을 명심하고 맡기신 사명을 잘 감당하는 귀한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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