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깨기 (WELCOME)● 신구약에서 한 구절씩 내가 좋아하는 말씀을 발췌하여 다음 주에 암송하기. ● 성탄 축하의 밤 나누기. | 경배와 찬양 (WORSHOP) ● 나의 사랑하는 책 (찬송가 199장) ● 하나님 아버지 주신 책은 (찬송가 202장) | 말씀읽기와 적용 (WORD)● 본문 : 시편 19:7-10 ● 제목 : 꿈틀거리는 말씀 1) 다윗의 노래에 나타난 하나님의 말씀이 주시는 위력은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2) 위에 소개된 각 항목의 위력이 나에게 나타난 경우들을 소개해 보자. 3) 성경 읽기 정하기 ● 2016년 성경 일독을 반드시 실천할 수 있도록 의무적으로 설정하기 | 사역하기 (WORK)1) 중보기도 *교회의 기도 제목 ① 담임목사님을 위하여 ② 환우들을 위하여 ③ 대강절을 보내며 성탄의 기쁨을 전하기 위하여 ④ 성탄 축하의 밤 예배를 위하여 ⑤ 명품신앙으로 한 해를 잘 마무리 할 수 있도록
2) 치유기도 3) 헌금 기도 4) 광고
5) 폐회: 주기도 | 설교요약 (SUMMARY)2015년 12월 6일 성서주일 낮 설교 제목: 꿈틀거리는 말씀 본문: 시편 19:7-10
성경은 오늘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송두리째 변화시켜준 지금도 살아 움직이는 유일한 책입니다. 기독교 변증학자인 C.S. 루이스는 시편 19편을 가리켜 “시가 서에서 가장 위대한 시이며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위대한 시어 중에 하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특별계시가 가장 아름답게 표현된 글이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자기계시의 중요한 방법 중의 하나가 성경입니다. 신학은 이것을 특별계시라고 말하는데 루이스는 시편 19:1-6절은 하나님의 자연계시를, 본문 7-10절은 특별계시에 대한 기막힌 표현이라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본문에 고백된 다윗의 노래 안에 적어도 3가지의 방법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인간에게 드러내고 계심을 알려 줍니다.
1. 성경은 우리의 영혼을 되살아나도록 해줍니다.
본문 7절 전반절에서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소성하게 한다.’ 는 본문의 단어 ‘슈브’는 문자적으로 가장 적합하게 적용한다면 ‘되살린다.’입니다. 그래서 ‘회복시키다.’ 로 많이 번역됩니다. 요한복음 6:66-68절의 “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이 기사의 시작은 오병이어의 기사와 맞물려 있습니다. 엄청난 기적을 경험한 디베랴 지역의 벳세다의 무리들은 그 충격이 쉽게 가시지를 않아서 기적을 일으킨 주인공인 예수와 더 오래 시간을 갖고 싶었습니다. 그 분과 함께라면 손해 볼 일이 없다는 계산에 따른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세상적 마인드를 들여다보시고 계신 주님은 그들을 떠나 가버나움으로 제자들과 함께 이동하셨습니다. 절호의 기회를 놓치게 될 위기에 놓인 벳세다 지역의 사람들은 절대로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주님이 가신 곳으로 이동하기로 합니다(요한복음 6:22-26절). 주님을 통해 개인적 이익을 추구하려던 무리들은 예수와 제자들이 디베랴 지역의 벳세다를 떠나 가버나움으로 이동한 것을 알고 예수를 찾기 위해 가버나움으로 따라왔습니다. 이렇게 집요하게 주님을 따르던 자들의 저의를 예수께서는 이렇게 표현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요 6:26). 요한 기자는 이들을 ‘무리’(오클로스)라고 표현했고 ‘제자’(마쎄테스) 와는 구별하여 표기합니다. ‘무리’들은 ‘제자’일 수 없습니다. ‘무리’들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다.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다.”라고 말씀하시면서 기적인 아닌 예수님 당신 자체로 만족하라는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강력하게 선포하자 주님을 거들떠도 안보고 떠나간 자들입니다. 이 엄연한 실제 앞에서 주님이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너희도 가려느냐?” 요한은 주님의 이 질문이 떨어지자마자 베드로가 답한 반응을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베드로의 고백은 대단히 중요한 교훈과 감동을 전합니다. 그것은 말씀이 말씀인 이유입니다. 그 말씀 안에 영생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은 도덕 교과서도, 윤리적 교훈도, 지성적 성장을 경유하도록 하는 수단도 아니며 건강 지침서도 아닙니다. 말씀은 우리들의 영혼을 바르게 세워주는 이 땅에 존재하는 유일한 바로미터입니다. 말씀은 세속적 가치에 함몰되어 싸늘하게 죽어 있는 우리의 영혼을 살리는 꿈틀대는 살아있는 하나님의 특별계시입니다. 교회가 약해지는 이유는 교회 안에 복음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불편함을 합리화시키며 자기에게 유리한 반쪽 복음으로 수용하지 말고, 온전하게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믿어 싸늘하게 죽어 있는 영혼들이 살아나는 교회가 되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들의 삶에서 꿈틀거리는 역동적인 은혜의 현장이 되게 하십시다.
2. 성경은 우리에게 영적인 지혜를 줍니다. 성경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세상을 이겨 나가는 지혜를 발견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다윗은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서 우둔한 자에게 삶의 지혜를 준다”(7절 하반절)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적인 지식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여호와의 말씀에 비추어 볼 때 그릇된 것이라면 그것은 지혜로운 것이 아님을 다윗은 선포합니다. 사무엘상 25:29-31절에 나오는 아비가일을 보면서 하나님이 그녀에게 주신 지혜로 다윗이 이전에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행했던 일련의 일들이 하나님의 일이었다는 것을 가슴에 간직하였던 것과, 바로 이 다윗이야말로 사울의 뒤를 이어 왕이 될 존재라는 이해를 했던 그녀가 생명에서 구원을 받았고 훗날 다윗의 아내가 되는 복도 받게 되었습니다. 아비가일에게 이런 지혜가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여호와께서 내 주에 대하여 하신 말씀대로” 였습니다. 아비가일은 이미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루어진 승리를 믿었던 여인이었습니다. 꿈틀됨을 현장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자와 그것을 무시하는 자의 삶이 동일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받는 지혜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은 우리들에게 영적인 지혜를 주신다는 것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영적 지혜와 세상의 지식은 다른 것입니다. 바울이 사울이었을 때에 그는 당대 최고의 지성으로 가말리엘 문하에서 수학을 했고, 헬라어에 능통했으며,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었던 분명 당대 최고의 석학이었고 최고의 지성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예수님의 지혜를 모를 때 그는 그 지성으로 예수주의자들을 죽이는 일에 앞장섰고 하나님의 사람들을 죽이는 일에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사울이 예수님의 지혜를 얻고 나서 그는 그 지성으로 바울서신을 남기면서 기독교 교리를 세우는 금자탑을 쌓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 안에 거할 때 예수께서 주시는 지혜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바울은 이것을 깨달은 뒤에 그래서 이렇게 선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고린도전서 1:26-31절).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본문 8절 하반절에서도 다윗은 이렇게 갈파했습니다.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오늘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혜를 받고 이 땅을 살아가는 세인 지체들이 되십시다.
3. 성경은 우리에게 참 기쁨을 줍니다.
본문 8절 전반절에서 다윗은 노래합니다. 마음을 기쁘게 해준다는 것은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큰 행복입니다. 사그런데 이 기쁨이 성서에 있다는 것을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빌립보서 4:4절을 보면 바울이 빌립보 교회의 교우들에게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권면합니다. 바울이 이러한 고백을 할 때 그의 삶의 형편은 정말로 어려울 때였습니다. 감옥에 있으면서 자신의 운명이 어떻게 될 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의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이런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은 주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 안에 있다는 말을 조금 구체적으로 표현한다면 주님이 행하셨고 약속하신 말씀 안에 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기쁨을 주는 것은 정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한쪽으로 기울어 있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편벽되어 있지 않다는 말입니다. 한쪽의 손을 들어주는 편협함이 말씀 안에는 없습니다. 곧 이 말은 하나님은 정직하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요동하시거나 흔들리는 갈대와 같지 않으시다는 말입니다. 그 분의 말씀은 신뢰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세상사는 힘이 있는 것에 기울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으시기에 그 분이 말씀하신 말씀은 항상 진정한 기쁨을 준다는 것을 역설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렵고 지쳐있다 할지라도 이렇게 주님의 위로와 격려와 권면이 있기에 말씀 안에서 참된 기쁨과 희열이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생애의 기쁨이 있기를 원하시는 성도가 있다면 진정으로 주의 말씀에 사로잡힘이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여호와의 특별하신 계시인 성서를 사랑하십시다. 다윗의 고백처럼 꿀보다 더 단 여호와의 말씀을 사모하여 영혼을 날마다 새롭게 회복시켜주시며, 영적인 지혜를 주시고, 참된 기쁨을 통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므로 승리합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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