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1장 큐티 하기 이강덕 목사 1. 찬양하기 : 찬송가 368장 - 주 예수여 은혜를 내려 주사 2. 큐티본문 : 느헤미야 1:1-11 3. 큐티날짜 : 2011년 5월 23일 4. 말씀요약 1) 느헤미야의 울음(1-4) 느헤미야는 바사의 아닥사스다(크세르크세스) 제 1세 치하에서 술 맡은 관원장으로 일하던 관리였다. 그는 바사의 수산성에서 식민지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의 입지를 굳히며 정치적으로 성공한 삶을 영위하고 있었지만 항상 마음속에 자신의 조국에 대한 염려와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살았다. 그러던 중 그의 동생 중의 한 명이었던 하나니가 두, 세 사람과 함께 예루살렘을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느헤미야는 그를 불러 조국의 상황을 세심하게 질문하기에 이른다. 질문을 받고 말하는 동생의 보고는 참담했다. 예루살렘 성이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타버리는 비극을 당했다는 보고였다. 느헤미야는 이 보고를 듣고 난 뒤에 수일 동안 슬퍼하며 울었다. 그리고 그 슬픔을 하나님께 보고하기 위해 금식으로 기도했다. 2. 느헤미야의 간절한 기도(5-11) 조국의 슬픈 현실을 듣고 난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그의 기도는 철저한 중보 기도적인 성격을 담고 있다. 동시에 철저한 이타적인 기도였다. 그는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은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에게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임을 고백하였다. 이 약속을 근거로 그는 두 가지의 기도를 드리고 있다. 첫째, 지금 조국이 이런 고통과 비극을 당하는 근본적인 원인이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을 향한 범죄와 동시에 내가 하나님을 향하여 올바르게 살지 못한 이유 때문임을 고백하는 통전적인 참회였다. 둘째 주님이 약속한 말씀의 언약 중에 악의 길을 떠나 명령과 규례를 지키고 돌아서면 회복시키겠다고 한 말씀을 의지하고 주님에게 그 약속을 회복하겠으니 우리 민족을 고통에서 회복시켜달라는 민족을 위한 중보를 드리고 있다. 3. 내게 주시는 말씀 1) 2절 내 형제들 가운데 하나인 하나니가 두어 사람과 함께 유다에서 내게 이르렀기로 내가 그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의 형편을 물은즉 왜 느헤미야는 동생 하나니에게 예루살렘의 형편을 물었을까? 관심 때문이다. 관심은 내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집중의 결과물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듯 사랑의 반대말이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라고 말하는 말은 옳다. 느헤미야는 조국을 사랑했다. 이런 이유로 조국에 대한 민감하고 세밀한 관심이 그에게 있었다. 그것이 느헤미야의 질문으로 표출된 것이다. 하나니에 대한 일정도 그는 관심거리였다. 그가 다녀온 곳이 느헤미야의 마음이 머문 조국이었기 때문이다. 2) 4절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객관적인 현실 앞에서 느헤미야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정말로 간절했지만 조국을 위하여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현실적인 난관 앞에서 좌절하지 않고 가장 큰 것을 했다. 그것은 조국을 위하여 하나님이 움직이게 하는 것을 붙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하늘의 하나님께 울면서 기도한다. 그는 곡기를 줄였다. 이런 일체의 행위는 하나님만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해답이심을 확신한 행위를 갖고 있을 때만 반응할 수 있는 것이었다. 4. 적용 나는 지금 어떤 관심에 집착해 있는가? 나는 무엇을 목적으로 살고 있는가? 나는 지금 가장 세밀하게 형편을 묻고 있는 나만의 대상이나 지체가 있는가? 목회를 하면서 많은 세월이 흘렀다. 그 시간의 여정 중에 내가 붙들고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이었는가? 이 질문에 진정성을 갖고 대답을 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내가 지금 목적하고 있는 우선순위일 것이 분명하다. 하나님인가? 가정인가? 성공인가? 답을 해야 하겠다. 모름지기 내가 마음의 전 구석에서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하나님과의 전인격적인 관계이다. 이런 면에 어찌 보면 당연한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겠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하나님을 향한 바른 삶을 목적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그러나 목양의 현장에서 자꾸만 옥좨는 것이 있다. 목사로서 승패하는 잣대가 인생의 단면에서 자꾸만 외형적인 성취나 이룸으로 기울어지고 있다는 자괴감이다. 나는 지금 그것과 싸우고 있고 또 앞으로도 계속 싸울 것이 자명하다. 지치지 않기 위해 성령의 지도함과 인도하심의 길에서 탈락되지 않도록 느헤미야의 심정으로 기도해야 하겠다. 얼마나 사랑하는 것을 위해 울어보며 기도했는가를 날마다 곱씹어야 하겠다. 영적인 민감함이 둔감함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몸부림쳐야 하겠다. 5. 기도 이름이 존귀하신 하나님! 주님이 가장 존귀하게 여겨지는 종이 되게 하옵소서. 주님의 관심사가 나에게 가장 민감한 관심사가 되게 하옵소서. 주님의 아파하심에 나도 아파하게 하시고 주님의 기뻐하심에 나도 기뻐하게 히옵소서. 항상 주님을 생각할 때 감격의 울음이 있게 하시고 당신의 인도하심이라는 틀에서 절대로 벗어나지 않게 하옵소서. 주님이 원하시는 뜻이 종의 가장 민감한 관심사가 되게 하옵소서. 주님이 울지 않도록 내가 울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