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순위에 대한 애매한 개념. 옛날엔 ‘우선순위=하나님 일=교회 일’ 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해버린 경우가 많았던 것 같아. 근데 하나님 일이라는 건 단순히 교회 일에만 국한되어 있는 게 아니지. 하나님은 교회에만 계신 게 아니잖아. 교회 일만 잘 챙긴다 해서 교회 일 외의 내 삶은 내 멋대로 살아도 된다는 게 아니라는 거야. 교회 안에선 천사처럼 사람들에게 온화하게 웃다가 밖에선 사람을 깔보고 무시해도 되는 게 아닌 것 처럼. 내 모든 삶에 있어 하나님이 우선순위가 되는 삶. 내가 학교에서 공부하고, 직장에서 일하고, 친구를 만나고, 부모님을 대하고, 연애를 하고, 화를 내고, 슬퍼하고, 싸움을 하고, 기뻐하고, 행복해 하고, 밥 먹고, 씻고, 자는 그 모든 일에 하나님이 우선이 되어야 해. 하지만 어떻게? 하나님이 눈에 보이는 팅커벨처럼 늘상 내 옆을 따라다니시며 “○○○야~ 이럴 땐 이렇게 하고~ 저럴 땐 저렇게 하렴~” 요렇게 들리는 소리로 설명해 주시는 게 아니잖아. 그래서 기준 삼아야 하는 게 말씀이라고 생각해. 삶 속에서 말씀에 순종하는 것. 이론적으론 마음먹은 대로 될 것 같지만 막상 상황이 닥치면 내 마음, 내 고집 내려놓기가 정말 힘이 들어. 보통은 자기 상태에 대해서도 잘 몰라서 그것이 내려놓아야 할 자아라는 것 자체를 인식하지 못할 뿐더러 그렇게 말씀에 마음이 부딪힌 걸 깨달았다 해도 이런저런 이유를 들며 자기 고집에 대한 합리화까지 시켜버리니.... 그래서 자기 자아를 부인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거라고들 하나 봐.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싸움에 잔뜩 화가 나 마음이 굳어지고 상했었어. 근데 그렇게 마음이 상해 하나님께 하소연하고 있을 때 어떤 말씀을 통해 ‘용서하고 사랑하고 품으라’는 메시지가 내 맘에 들어온 거지. 물론 상황에 따라 사람에 따라 하나님이 주시는 메시지는 다를 수 있어. 근데 하나님이 주신 그런 메시지와 별개로 내가 먼저 미안하다고 하면 왠지 지는 것 같고 내가 여기서 화를 금방 풀어주면 저쪽이 날 만만하게 볼 것 같아서 독하게 굴어 저쪽의 버릇을 고쳐놔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하나님이 주신 마음과 내 마음이 충돌해. 게다가 주변에서마저 그렇게 은근슬쩍 넘어가면 다음에 또 저럴 거라며 절대 먼저 굽히지 말라고 부추겨. 결국, 이런 게 밀고 당기기의 지혜라고, 혹은 이렇게 해서 저 사람을 변화시켜야겠다고, 이게 상대를 위한 거라고, 스스로의 행동을 합리화시키는데 이르지. 그럼 그게 뭐야. 결국 난 내 자아를 말씀 앞에 꺽지 못한 거고 하나님을 우선으로 두지 못한 거야. 문제 상황은 사람과 사람이 일으켰을지라도 그 다음 문제는 그 사람과 나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과 나의 문제가 된다는 것. 내가 그 사람한테 굽히고 안 굽히고가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께 순종했느냐 안 했느냐의 문제가 된다는 거지. 내가 정말 하나님을 의식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다면, 상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사람’의 시선 따위 의식하지 말고 ‘하나님’께 무조건 엎드려야지. ‘말씀’ 앞에 무조건 나를 꺽어야지. 사업에 관해서든, 인간 관계에 관해서든, 내 삶의 모든 순간마다 이익 더 얻자고, 알량한 자존심 부리자고, 체면 차리자고, 불순종을 택하는 행동 자체가 하나님을 우선으로 두고 있지 못하다는 증거. “그 때에 다윗이 나단에게 자백하였다. 내가 주님께 죄를 지었습니다.”(삼하 12:13) -출처: 김네몽의 신앙일기(p.280-283), 터치북스, 김네몽 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