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께서 기도로 삼촌을 얻으셨고, 이어 엄마와 나는 자여스럽게 교회에 다니게 되었다. 외갓집 시골 교회에서 초등학교를 마치고 중학교 때 외삼촌과 우리는 제천으로 이사를 했다. 엄마는 생활이 바쁘셔서 주일은 지키나 목장예배는 드리지 못했다. 그럴 때마다 '너가 대신 다녀와라' 하고 하셨고 한 두번 대신 가다가 쭉 다니게 되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어린이집에 있는데 인도자이신 인도자이신 장학사님의 정보로 학교로 이동할 수 있었고 결혼 후에도 자연스럽게 목장예배에 갈 수 있었다. 형철이와 보람이를 업고서 다닐 때도 힘들지 않았다. 그런데 바쁜 사회생활과 주변 가족들로 인해서 지치고 믿음도 겨우 겨우 지키며 살았다. 힘들 때마다 매주 목장예배에서 기도제목을 내 놓고 기도해 주심으로 일주일이 편했다.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신 김문숙 집사님과 김명옥 권사님과 목장 식구들은 힘들 때 가장 큰 위로의 예배가 되었다. 엄마가 편찮으셔서 힘들 때도 숨길 수 없었고 형철이와 보람이 아빠, 시시때때로 다양한 모습의 기도제목이 있었다. 이런 나약한 나에게 엄마가 가시면서 선물을 주셨다. 천국에 가셨다는 확신과 나를 누구보다도 생각하고 도와 주신다는 믿음을 감출 수 없었다. 치매 가운데도 늘 성경을 보시고 목사님을 기다리고 기도하시던 모습이 나는, "그래도 보기는 좋다" 라고만 했지 그것이 진정한 믿음이라고 생각지 않았다. 그런데 정말 가시는 시간부터 마침까지 아니 지금도 천국에서 나를 위해 기도하고 돕고 계신다는 확신이 들어서 형제들과도 이야기했다. "너무 놀랍다고" 할머니, 어머니의 기도처럼 나도 좀 더 든든히 세워지길 바란다. 좀 더 시간이 지나면 이야기 할 수 있도록 지금은 묻어 두고 싶다.
- 권순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