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신학교 졸업반 시절, 아내와 연애를 할 때 걷는 데이트를 많이 했습니다. 기억으로는 김포공항에서 영등포구 양화 인공폭포까지 걸으며 데이트를 한 적도 있습니다. 지금 생각하며 미친 짓을 한 셈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신학생 호주머니가 비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 실례를 말씀드렸는데 어쩔 수 없이 돈을 아끼기 위해 할 수 있었던 데이트는 보건 데이트가 전부였습니다. 지금이야 없어졌겠지만 1980년 후반, 신촌 로터리 현대 백화점 앞에는 포장마차들이 성업 중이었습니다. 그와 관련하여 엽기적인 에피소드를 하나 말하라고 한다면 그 포장마차에서 판매하던 번데기를 아내가 너무 맛있게 먹었던 기억입니다. 그날, 순간 감추려고 했지만 너무 놀랐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았던 외모 의 아내가 번데기를 식용하는 것을 보며 마치 괴물 같이 보였던 추억이 있습니다. 연애시절이었기에 웬만한 모든 것이 다 용서가 되고 사랑스러운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번데기를 먹는 아내는 현기증이 날 정도로 충격적이었습니다. 문제는 그날, 제게 번데기를 권했다는 사실입니다.
“전도사님도 한 번 먹어보세요. 정말 맛있어요!” 목사가 될 사람이었기에 훗날 현장에서 교우들이 제공하는 일체의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오른 저였지만, 징그럽기 그지없는 번데기를 권하는 애인의 권유를 뿌리치지 못했던 것은 아마 사랑의 힘이었을 것입니다. 남자가 이것도 못 먹느냐고 사랑하는 애인에게 타박당하는 것이 싫어 순교적 각오를 갖고 먹었던 번데기는 그날 이후, 가난한 신학생에게는 가성비 최고의 고단백 식품으로 자리 잡고 지금까지 애용하는 식품이 되었습니다. 지난 주간, 노 권사님이 이 애용식품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그것도 역대 급으로 많이. 먹으면서 아내에게 연신 광고 문구를 남발했습니다. 얼마나 맛있게요!
지난 후반 주간, 권사님이 가지고 온 번데기는 이제 기력이 많이 딸리는 담임목사에게 자양강장의 도구로 접목되었습니다. 아내와의 풋풋했던 연애시절의 웃픈 추억을 떠올리게까지 해 준 번데기 사랑은 지난 주간 목양 현장, 제게는 박카스 같은 활력소가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번데기 사랑은 마다하지 않겠습니다.(ㅎㅎ) 그러고 보면 세상에는 맛있는 것이 참 많습니다. 생각만 바꾸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