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적입니다. 인천에서 태어나서 인천에서 자랐고, 인천에서 공부하고 인천에서 28년을 살았습니다. 29년이 되는 해, 부산에서 부교역자 사역을 하기 위해 고향을 떠났으니까 이제 꼭 34년이 되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제천에서 19년을 살았으니 제천은 제 2의 고향이 되었습니다.
어렸을 때, 소래 포구에서 형님들과 망둥이 낚시를 하고 그 자리에서 매운탕을 끓여 먹던 추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50년이라는 세월이 어느 덧 흘렀습니다. 지금이야 주변이 대도시로 탈바꿈하였지만 문학산 근처에는 어렸을 때 논밭 말고는 없었습니다. 지금 같은 겨울이 되면 형님들과 논밭에 물을 대 만든 야외 스케이트장에 가서 지칠 줄 모르고 놀았던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신포동 먹거리 시장에서 먹었던 신포 만두는 지금은 전국 브랜드가 되어 유명해졌습니다. 아주 어렸을 때, 골목에서 악동들과 비석치기와 땅 따먹기를 하며 손이 새까매지는 것도 모르고 놀던 시절이 그리워집니다. 고향 교회에서 반주했던 1학년 첫사랑 후배가 살았던 동네를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방과 후 일부러 택해 지나가던 풋풋했던 그때가 아스라이 떠오릅니다. 첫사랑 순천이는 잘 살고 있는지. 고향 교회 앞마당에는 큰 플라타너스 나무가 있었습니다. 여름성경학교를 할 때면 그 나무 그늘에서 주일학교 어린이들을 가르치던 눈부시게 아름다웠던 수채화를 머리로 그릴 수 있습니다. 고향은 언제나 생각해도 울컥하게 만드는 그 무언가가 있습니다. 아버님, 어머님이 다 소천하시고 나니 고향을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누님, 형님들도, 조카들도 다 인천에 살고 있지만, 제게는 부모님이 돌아기시고 나서는 왠지 낯선 타향과도 같습니다. 어쩌다 가족사(家族事)가 있어서 형제들을 만나기 위해 방문하면 길을 놓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망연자실할 때도 있습니다. 고향이 타향처럼 돼버린 셈입니다.
오늘 주일은 공교롭게 설 명절 당일이기도 합니다. 해서 고향을 찾아온 교우들이 부럽고 또 부럽기까지 합니다. 지난 목요일, 아내와 함께 부모님을 모신 이천 호국원을 찾아 성묘를 하고 왔습니다. 두 분의 사진을 보는데 또 울컥했습니다. 그리고 너무 보고 싶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안식하시겠지만, 오늘 같은 명절이 되면 또 그립고 그립습니다. 인천이 제 고향이지만 영원한 고향은 언제나 어머님의 품인 것이 분명합니다. 은퇴를 하면 인천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입니다. 그것이 제대로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해보렵니다. 명절을 맞아 고향에 오신 식구들을 환영하고 따뜻한 고향의 맛을 만끽하고 돌아가시기를 기도합니다. 어렸을 때, 월미도 앞바다는 정말 더러웠는데 지금은 어떨까? 그래도 오늘따라 그 비린내 나던 바닷가 내음을 맡고 싶은 걸 보면 저도 이제 늙어가나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