至難(지난)한 과정이지만
“누나, 네 번째 책이 설 명절 즈음에 출간될 것 같아요. 책이 나오면 보내드릴 게요.” 전화로 이야기를 듣던 누님이 곧바로 이렇게 반응했습니다. “막내야, 조금 쉬어가며 목회할 수 없니? 누나가 보기에는 너무 숨 가쁘게 목회하는 것 같아 아슬아슬하다. 이제 나이도 있는데 건강 생각하며 해야 돼.” 누이의 말에 왜 아니 그럴까 싶었습니다. 교회 홈페이지와 페이스북에 올라오는 막내 동생의 사역이 실로 만만치 않게 보였기 때문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누이의 말처럼 지금도 40대처럼 천방지축으로 사역 하는가를 뒤돌아보았습니다. 그러다가 피식 웃었습니다. 이제는 그 때에 비하면 거의 다 내려놓았다고 보아도 무방하기 때문입니다. 제일 원인은 물론 나이 탓입니다. 그렇게 열정적으로 사역하고 싶어도 이제는 체력이 따라주지 않습니다. 그러니 자연적으로 숨 고르기를 할 수밖에 없고, 또 그러다보니 체력이 감당할 정도의 사역에 머무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교우들은 따라오는 게 쉽지 않다고 볼 멘 소리를 하지만 실로 그렇습니다. 사역의 내용을 힘으로, 체력으로 감당할 나이가 지났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목회의 내용이 무엇인가 고민하며 내린 결론이 목양의 깊이는 있어야 하겠다는 마음이었습니다. 목양이 깊이는 열정만으로 이루어지지 않기에 반드시 수반되는 일을 포기하지 말자는 마음으로 십 수 년을 달려왔습니다. 그건 독서와 기도하는 삶이었습니다. 내게 주어진 기도 시간은 묵상과 더불어 이루어지는 새벽 기도에 사활을 걸었다고 할 정도로 천착하는 편입니다. 월요일은 세인 교회의 사역 전체와 일주일 동안 성도들이 처해 있는 삶의 현장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편지가 되도록 중보하고, 화요일은 교우들이 금년에 드린 기도 제목의 응답과 환우들을 위해 집중해서 기도합니다. 수요일에는 저들의 생계가 걸려 있는 직장, 경영 터, 그리고 가족들을 위해 기도하고, 목요일에는 교회에서 섬기는 20곳의 피선교지를 위해 중보 합니다. 금요일에는 이타적인 교회를 만들기 위해 대 사회적인 내용의 기도 제목을 위해 간구하고, 토요일은 주일 사역의 승리를 위해 집중하여 기도하며 일주일의 기도 스케줄을 이루어 가는데 너무 귀하고 행복한 시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시간은 목사로 사는 동안 결코 빼앗길 수 없는 소중한 사역입니다. 동시에 독서에 최선을 다하려고 하는 마음가짐을 놓지 않습니다. 오전 중에 아침묵상을 마치고 나면 점심 식사 전까지 책과 함께 합니다. 기존 조직교회 당회장 시절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책 읽기를 개척 이후 아무리 못해도 하루에 100페이지 이상을 읽자고 다짐했고 그렇게 십 수 년을 달려왔습니다. 그렇게 달려온 세월은 제게 책을 통해 베풀어주는 내공쌓기의 복을 주었습니다. 책 읽기는 책읽기로 끝나지 않습니다. 곧바로 글쓰기로 연결주기에 그렇습니다. 전부는 아니더라도 큰 도전과 감동을 준 독서는 반드시 북 리뷰로 남기는 것을 목표로 병행했기에 책읽기와 글쓰기는 목사로 사는 제게는 떨어질 수 없는 동반자와 같은 역할을 해 주었습니다. 설 명절을 즈음에 해 나오는 ‘신-사사 시대에 읽는 사사기(1)’과 더불어 따뜻한 봄기운이 기지개를 펼 때 즈음이면 사사기 시리즈 2가 나오게 될 터인데 이 모든 과정들이 제게는 축복 그 자체로 다가오는 게 사실입니다. 지난(至難)한 과정인 것은 분명하지만, 나는 이런 목회의 내용들로 인해 춤을 춥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소설의 마지막에 자유로움을 만끽하며 춤을 추었던 조르바의 춤사위를 통해 작가가 지향하는 진정한 자유함이 무엇인가를 독자들에게 유감없이 보여주었던 것처럼 내게는 목사로 살면서 주어진 운명과도 같은 기도하는 삶과 공부하는 삶이 춤사위 그 자체입니다. 이거 하나만으로 충분합니다.
이 마음으로 1월 셋째 주일도 감당하렵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