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입니다. 2022년이 역사의 뒤안길로 넘어가고 새로운 해인 2023년이 밝았습니다. 매년 이 시기가 되면 세속은 시간의 의미를 부여하곤 합니다. 아마도 그 이면에는 상업적인 모드가 숨겨져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시간이라는 것은 한 부분만 특정화해서 분위기를 들뜨게 하는 도구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시간의 의미는 시간 속에 살고 있는 나에 의해 그 의미가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좋은 시간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쓸데없는 것’을 비워낸 정신이다.”(한병철,『시간의 향기』, 문학과 지성사, 100,) 재독 철학자인 한병철이 시간의 향기에서 내뿜어낸 이 금과옥조의 글을 만난 지가 이제 어언 10년이라는 그 시간이 지났습니다. 나는 이후 쓸데없는 것들을 치워내는 일과 치열하게 싸워왔습니다. 결과, 이런 치열함은 내게 시간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는 좋은 반려가 되어 주었습니다. 2022년에서 2023년으로 건너뛰는 데 필요한 시간은 산술적인 계산으로 단 1초에 지나지 않습니다. 1초는 불교에서 말하는 억겁의 시간으로 가늠할 때 설명 불가의 찰나에 불과한데 무언가 억지로 의미를 부여하려는 세속의 정신은 어찌 보면 쓸데없음을 치워내는 작업에 대해 방해거리가 되거나 혹은 경솔하게 여기도록 만드는 수단이 될까 심히 유감스럽습니다. 나는 2023년의 첫 날이 유난히 호들갑을 떨게 만드는 지극히 상업적인 모드의 시간이 아니라, 또 다시 우리들의 삶의 한복판에서 ‘쓸데없는 것’들을 지워내는 아름다운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만들어 갔으면 좋겠습니다. 주어진 시간에 내 삶을 성실하게 살아내는 1월 1일 그리고 이어지는 2023년의 매 시간이 된다면 그 시간은 언제나 아름다운 것이 될 수 있기에 말입니다. 언젠가 누군가에 의해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시간으로 청각적 형상으로 표현한 글을 읽었던 적이 있습니다. “10대: 시계소리 안 들림, 20대: 째에 깍, 째에 깍 (아주 느리게), 30대: 째-깍, 째-깍 (느리게), 40대: 째깍 째깍 (보통으로), 50대: 째깍째깍 (빠르게), 60대: 짹 (아주 빠르게), 70대: 헐레벌떡 (아주 힘들게), 80대: 휙 날아감 (연주 불가능)” ‘짹’에 살고 있어서 그런지 조금 더 긴장하며 내 삶을 살아내는 2023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여러분은 여러분의 시간에 맞추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