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려드는 선교 요청서를 바라보면서
매년 이 맘 때가 되면 두 가지 일 때문에 적지 않게 곤혹스러움을 경험한다. 하나는 불특정다수가 보내는 선교 요청서가 밀려드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피선교지 선정의 일이다. 주지하다시피 세인교회는 교회 개척 초창기부터 대내외적인 선교에 최선을 다했다. 선교적인 교회의 미션을 감당하는 것은 교회가 갖고 있는 역량보다 조금 더 부담을 갖는 것이 옳다는 담임목회자의 목회 철학이 있다 보니 기실, 우리 교회는 할 수 있는 역량보다 선교적인 무게감을 더 가지려고 해왔다. 6곳의 해외선교, 5곳의 기관 선교, 9곳의 작은 교회 섬기기를 2022년 감당했다. 20개의 피선교지를 선정하는 것은 전적으로 선교위원회의 사역이다. 물론 어쩔 수없이 담임목사가 제시하는 로드맵을 중심으로 피선교지가 선정되는 것은 평신도 사역자들이 피선교지 파악하고 선정하는 것에 분명한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언제나 신중하다. 이제 이번 달은 2023년의 피선교지를 재점검해야 하는 달이다. 서재에 도착해 있는 선교 요청서와 전화 및 SNS 상에 올라와 있는 선교 지원 내용들이 적지 않다. 해서 내게 압박이 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성도들의 모든 헌금은 세 가지의 액체가 묻어 있는 결과물이다. 그들이 현장에서 흘린 땀과 눈물과 피라는 액체를 담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 선교 헌금은 또 다른 헌신의 압권이다. 한편으로는 성도들이 직접 현장에 나가 선교사로 사역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대리적 사역의 밑거름이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피선교지에서 몸부림치고 있는 사역자들을 뒷받침해주는 피와 같은 무기이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런데 어찌 선교 사역 프로젝트가 가벼울 수 있나 싶다. 사역을 감당하는 교회는 이런 목회신학적인 무게감을 갖고 사역하는 데, 연 말 즈음에 내게 도착한 선교요청서와 SNS를 통하여 밀려드는 선교 요구의 내용들을 보고 있노라면 너무 쉽게 접근하는 것 같아 속상할 때가 있다. 심지어 요행을 바라며 그냥 툭 던진 낚시 바늘 같은 요청서도 본다. 낚시 바늘에 꿰이면 다행이고, 그렇지 않으면 말지 식의 선교 시도를 해 보는 사람들의 글과 요청서를 볼 때 어떤 경우에는 분노가 치밀기까지 한다. 설상가상으로 이제는 교단에서도 세인교회가 감당해야 하는 선교의 몫에 대해 노골적이지는 않지만 나름의 요구를 음으로 양으로 압박하는 모양새까지 보인다. 펜데믹 3년을 지나면서 교회들이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재정적인 심각한 타격을 입은 게 사실이다. 해서 간접적으로 경험한 일이지만 줄일 예산은 선교비가 가장 만만하다고 여겨 선교지역 축소와 파송 선교사 지원 중단이라는 강수를 두는 교회들이 여기저기에서 보인다. 아픔이다. 그러면 절대 안 되는 일인데 선교하는 교회의 궁여지책이 어느 면으로 보면 이해되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축소지향적인 선교는 재고되어야 한다. 선교가 죽으면 곧 교회가 죽는 것이기에 말이다. 선교는 교회의 교양 선택 과목이 아니라 전공필수 과목이다. 이렇게 선교하는 교회의 목사는 피를 말리며 고민하는데 낚시 바늘 던지기 선교 요청 상습범들을 보면 참담하다는 생각 때문에 우울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