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사무총회를 준비하기 위해 사랑의 교회 안성 수양관에서 한 주간 머물렀다. 근 2년 6개월 동안 거의 폐쇄되었다시피 한 수양관 문이 다시 열려 피정 겸 사역 준비 차 다녀왔다. 펜데믹 이전 같으면 교회에서, 교회 전문 기관에서 또 다른 한 해를 준비하기 위해 올라온 사람들로 북적거렸을 텐데 3년 만에 다시 올라간 기도처는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불과 20여명 정도의 사람들이 그 큰 수양관을 이용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마음 한편이 휑했다. 유대인 철학자 마틴 부버는 20세기의 영적 공허를 ‘하나님의 일식’이라고 표현했고, 제랄드 메이는 같은 영적 상태를 ‘영혼의 어두운 밤’이라고 일설(一說) 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일식과 영혼의 어두운 밤은 경험된다. 영적인 은혜를 갈구하는 사람은 더 더욱 그렇다. 지난 한 주간, 나 또한 이런 마음이었다. 제 15회 사무총회를 준비하는 일이 무겁게 다가왔다. 펜데믹 후유증이 생각보다 크기 때문이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했다. 어디에서부터 손을 다시 써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주군께 기도했다. 나름 수양관에 머무는 동안 하나님의 일식을 혹독하리라 만큼 경험했다. 하지만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오래 전, 읽었던 신학자의 글이 이번 주간 내내 내 마음에 잡혔다. 하나님의 조명이라고 생각하고 곱씹고 또 곱씹었다. “위기의 순간에 언제나 붙들어야 할 것은 원리다.” 수많은 목사들이 교회가 지금처럼 어려운 시기를 없었다는 토로를 매년 한다. 동의한다. 진짜로 그렇기 때문이다. 교회 리서치 기관에서 이런 저런 교회 부흥 방법론들을 발표하고 있고, 이제 엔데믹을 기대하면서 교회가 다시 움직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교계에서 크다. 부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그 목소리들을 다 경청하고 따라가야 한다는 생각이 내게는 1도 없다. 그것은 세인 공동체의 것이 아니기에 말이다. 리서치 기관의 것이고, 다른 교회의 것이지 세인 교회의 것이 아니다. 이제 안 맞는 옷을 입을 나이는 지났다. 2023년 교회 표어를 ‘상식을 존중하는 교회’로 정했다. 이 표어를 정한 이유는 기독교가 지켜야 하는 상식이 원리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누가복음 10:37절이 표어 구절이다. 예수를 책잡기 위해 질문한 율법 교사에게 강도 만난 자의 비유를 말씀하신 뒤에 주께서 이렇게 그에게 질문하셨다.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눅 10:36) 예수님의 이야기를 들은 자가 마지못해 자비를 베푼 자이지 않겠느냐는 하답에 다시 주께서 이렇게 하명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눅 10:37 2f)) 주군께서 하명하신 내용을 순전하게 감당하는 것이 2023년 세인교회의 목회 계획이다. 기독교의 원리이자 성도가 행하여야 하는 상식이기 때문이다. 이 일을 잘 감당하다보면 가장 위기의 때를 맞이한 한국교회에 속해 있는 세인교회를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이끌어주시지 않겠는가 싶다. 깊은 하나님의 일식을 경험한 한 주간, 다시 또 종을 타격한 말씀에 내 귀를 집중했다. 그러자 공명되어 울린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