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톤 대학에서 구약학을 가르치고 있는 다니엘 J. 해링턴이 쓴 ‘최근 히브리서 연구 동향’이라고 번역된 책의 원제가 ‘What are they saying about the letter to the Hebrews?’다. 주목할 단어는 ’the letter‘다. 도대체 그들은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가의 편지라는 해석이다. “히브리서는 긴 설교다. 글로 기록된 기독교설교 중에서 아마도 가장 위대한 설교일 것이다.” (p,10) 해링턴 자신도 본서를 통해 신약성서의 19번째 책인 히브리서를 편지가 아닌 설교의 성격이 강하다고 역설했는데 제목이 도전적이지 않나! 편지일까? 설교일까? 강해를 통해 나눌 예정이다. 해링턴의 노고가 소개한 책에 진하게 담겨 있다. 특히 내가 주목한 것은 히브리서가 말하고 있는 신학이었다. “히브리서의 핵심적인 신학 논지는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이 단 하나의 완전한 속죄제물이라는 것과 그리스도는 기꺼이 죽음으로 나아갔기 때문에 위대한 제사장으로 간주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단 하나의 완전한 속죄 제물인 동시에 그 희생제물을 바치는 제사장이다.” (p,89) 철저한 기독론이다. 빈틈없는 기독론이다. 이러한 논지에 근거한 히브리서 신학을 담지하기 위해 몇 권의 책을 소화했다. 히브리서의 개괄적인 이해를 위해서 양용의 교수의 ‘히브리서 어떻게 읽을 것인가?’(성서유니온 간)를 독서하며 많은 공부를 했다. 그가 제시한 부가적인 제목이 이러했는데 적절했다. “위기에 처한 교회에 주는 간곡한 권면” 필자는 이 부가적인 제목을 펜데믹 시기에 불어 닥친 위기로 해석하려고 노력했고, 앞으로 강해를 진행하면서 집요하게 이 프레임에 맞추어 재해석해보려 한다. 히브리서에 나타난 기독론에 대한 함의를 충분히 제공받은 책이 있다. 김성목 박사의 ‘히브리서의 기독론’이다. 이 책은 독립교회 연합회에서 활동할 때 함께 동역했던 김 박사의 박사학위 논문을 확장한 책인데 예수그리스도의 비하와 승귀를 히브리서 안에서 집요하게 관철시키려는 대제사장의 사역을 기독론적으로 접목시킨 그녀의 해석은 압권이다.(p,79-86) 예측건대 앞으로 강해를 진행하면서 상당수 많은 부분에서 김 박사의 책을 인용하게 될 것 같다. 필자는 지역교회를 섬기고 있는 평범한 목사다. 당연히 설교는 내게 있어서 운명이다. 히브리서를 설교로 풀어가는 데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인사이트를 톰 라이트 교수의 ‘모든 사람을 위한 히브리서’(IVP 간)에서 얻었다. 신약성경을 강해할 때마다 빼놓지 않고 숙독하는 그의 주석적 설교는 나 같이 허접하기 그지없는 목사가 매료되기에 충분하다. 특히 그의 ‘인트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히브리서 설교 행함의 큰 도움을 준 신앙의 선배는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다. 그가 쓴 ‘히브리서 강해’(복 있는 사람 간)는 투박하고 융통성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역설이라고 해야 하나, 너무 행복했다. 그의 강해 한 마디, 한 구절을 읽으면서 조지 휫필드가 말했던 그대로 벼락과 천둥을 동반한 성령의 소리를 내내 들었다. 앞으로 히브리서 강해를 해 나아감에 있어서 내 설교의 프레임 중에 상당수는 로이드 존스의 벤치마킹 작업임을 정직하게 밝힌다. 조금은 고전적이고 신비적인 냄새가 있지만 히브리서 신학을 클래식하게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었던 책은 풀러 신학교의 도널드 해그너의 ‘히브리서의 신학적 강해’(도서출판 크리스천)다. 아주 고도의 성서해석적인 도움을 주지는 않지만 히브리서 저자가 강조하려고 했던 신학적 단어들을 나름 해석하려고 노력한 저자의 수고가 담겨 있다. D. 거쓰리의 ‘히브리서’(틴데일 신약주석 시리즈 15-CLC 간)는 조금 난해했지만, 히브리서의 구조를 집요하게 파고 든 해석에 긴장감을 갖게 해주었다. 특히 본문 언어에 대한 집중력으로 풀어낸 주석은 목회자이자 설교자인 내게 참 많은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압박한 양서로 자리매김했다. 횃불 트리니티의 조재천 교수는 신진 교수다. 그가 쓴 ‘히브리서-그리스도인을 위한 통독 주석 시리즈-홍성사 간)를 읽다가 양용의 교수의 책과 연계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신구의 조화 두 분에게 실례가 되는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내게는 그렇게 강하게 히브리서 해석에 대한 조화를 주었던 것 같다고 고백하고 싶다. 조재천 교수는 히브리서 독서를 위해 통전적인 읽기자료로 본 주석을 썼다고 했지만, 또 하나의 보너스가 그의 책에서 느껴졌다. 히브리서를 통해 주어지는 현대적 감각의 이해와 언어 표현이었다. 아마도 히브리서 강해에 참여하는 세인교회의 젊은 교우들은 조재천 교수의 해석을 소개할 때 많은 공감을 표하리라 예상된다. 필자는 성서해석을 할 때 보는 주석이 있다. 성서 원어의 제 2차 자료를 분석한 주석의 내용을 알고 싶을 때 언제나 ‘국제성서주석’을 펼친다. 본문 해석을 위한 굵직한 아웃라인을 찾아내기 위해 ‘현대성서주석’(한국장로교출판사)을 옆에 놓고 읽는다. 성서어원 연구와 신학적 해제를 위해서는 ‘WBC 주석’을 펴는데 소홀하지 않는다. 설교의 레마를 정하기 위해 ‘HOW COMMENTARY SERIES’는 최고의 선생님이다. 대럴 퍼시플(Darrell J. Pursiful)은 이렇게 말했다. “히브리서는 헬라 유대교 출신의 그리스도인이 1세기 60년대 로마에 있는 가정교회에 써 보낸 설교로 본다.” (다니엘 J. 해링턴, “최근 히브리서 연구 동향”, CLC, p,103) 이상의 명제를 2,000년이 지난 뒤에 해석하는데 어찌 먼저 이룬 선생님들의 수고를 간과할 수 있을까 싶어 지난 2개월 동안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히브리서 공부를 해왔다. 10월 첫 주부터 히브리서 여행을 떠난다. 두려운 것이 사실이지만 최선을 다해 보려 한다. 주후 1세기 로마를 비롯한 주변에 산재해 있었던 그리스도인들에게 임한 영적인 침체를 정면으로 돌파하여 위기를 극복하려고 했던 히브리서 저자의 수고가 있었기에 오늘 한국교회를 비롯한 전 세계에 교회와 성도들이 존재할 수 있었음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예수 그리스도보다 뛰어난 존재는 없다.” 10월 첫 주부터 제천세인교회 강단에서 증언할 위대한 메시지다. 이 메시지의 지지는 히브리서가 해 줄 것을 확신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