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지은이 | 임철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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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출판사 | 문학과 지성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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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일 | 2021-07-12 09:55: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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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우의 “아버지의 땅‘(문학과 지성사, 2018)을 읽고 임철우의 ‘아버지의 땅’을 읽었다. 왜 소설가 한강이 이 단편모음의 소설을 극찬했는지 공감의 도를 절감했다. 11편의 작품들을 접하면서 내게 가장 깊이 박힌 냄새는 토속적인 아픔 그리고 눈물이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 민족처럼 한(한)이 많은 민족이 있나 싶다. 물론 유대인들이 항의하겠지만, 내 민족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한의 민족임에 틀림없다. “恨은 한민족의 삶이 역사를 이루어오면서 민족감정으로 쌓이고 가라앉혀진 陰記다.”(서광선, “한의 이야기”, 보리, 28.) 오래 전에 읽었던 서 박사의 글을 담아 놓은 이유는 ‘陰記’라는 표현 때문이었다. 우리 민족이 갖고 있었던 역사의 줄기가 그렇다. 눈물이 존재하지 않았던 시기는 없었던 이 민족이다. 음기는 눈물로 쓴다. 임철우는 11편의 단편에서 슬픈 이야기를 말하는 데 독자인 나는 슬픔에 머물러 있지만 않은 기적을 맛보았다. 슬픔의 꼭지를 절절하게 체감했는데 나는 그의 소설에서 한민족의 끈기를 보았다. 5번째 게재한 ‘그 밤 호롱불을 밝히며’에 등장하는 빨치산자로 몰린 아들을 기다리는 어머니의 토속적 한을 읽다가, 좌익과 우익이라는 웃기지도 않는 이데올로기의 제물이 되어 그토록 그리던 어머니를 숨죽이며 찾은 새벽, 같은 동네에서 형, 동생, 이웃 아저씨로 부대끼던 또 다른 이데올로기의 희생양들이 쏜 총에 숨을 거두는 장면에서 엘리 위젤이 고발한 문장이 다시 떠올라 분을 삭이는데 오래 걸렸다. “나는 그들에게서(공산주의자들) 볼세비즘, 멘세비즘, 사회주의, 무정부주의란 세 단어를 배웠습니다. 나는 아버지에게 ‘주의(_ism)’라는 것이 정확하게 무엇이냐고 여쭈어 보았습니다. 그러자 아버지께서 이렇게 답해 주셨습니다. 그건 혼인할 준비를 하고 있는 변덕스러운 여자 같은 거란다. 앞의 단어에 따라가는 거야”(엘리 위젤, “팔티엘의 비망록”, 주우,63.) ‘사평역’에서 만난 인간의 군상들을 보면서 천박한 자본주의 체계 하에서 살아가야 하는 그들은 누구도 예외 없는 나였기에 왠지 모를 동지의식에 아팠지만 희열을 느꼈다면 내가 이상한 사람인가! “중년 사내에게 산다는 일이 그저 벽돌담 같은 것이라고 여겨진다. 햇볕도 바람도 흘러들지 않는 폐쇄된 공간, 그곳엔 시간마저도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마치 이 작은 산골 간이역을 빠른 속도로 무심히 지나가는 특급 열차처럼” (본서, 130) 지나온 나날을 돌이켜보는 것은 행운이다. 돌이켜 본다는 것은 막 살지 않는다는 증거이기에. ‘아버지의 땅’, ‘뒤 안에는 바람 소리’를 읽다보면 전쟁이라는 인간에게 경험되는 최악의 비극에서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는 인간악의 절정을 이입하는 경험을 하게 한다. 전쟁이라는 것이 인간에게 무엇을 주는가는 묻고 싶지 않은 질문이다. 아직도 생생하다. 바오 닌의 걸작인 ‘전쟁의 슬픔’에서 베트남 전쟁의 승자였던 북 베트남 전사들이 사이공 공항을 점령함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릴 때, 그 안에서 그들이 벌였던 전쟁은 누구도 승자가 아니라는 광기의 분노를 표출했던 비참한 압권을. “10년을 치러온 전쟁이 끝났다. 동료들은 브랜디 술병을 벽에 던지며 조소를 퍼부었다. 밤새도록 공항을 돌면서 아무 데나 들어가서 먹고 마시며 때려 부수었다. 시끌벅적하고 요란한 환락의 향연이었지만 그다지 즐겁지 않았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탁자와 의자를 뒤엎고 망가뜨리고 조각조각 부숴서 바닥엔 그 잔해들이 뒤죽박죽 어지럽게 널렸다.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기관총이고 권총이고 할 것 없이 공중으로 쏘아대며 샹들리에를 마구 부숴 버렸다.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마음껏 마시고 곤드레만드레 취했다. 그리고 대부분은 울고 웃었다. 어떤 이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다가 흐느껴 울었다. 끝내는 미친 듯이 딸꾹질을 하기도 했다. 모두에게 평화는 기쁨이 아니라 당혹스러움과 고통이었다.”(바오 닌, “전쟁의 슬픔”,아시아 간, 139-140.) 소설이 우울하다. 재 강조하지만 음기 충만하다. 그런데 읽는 독자들은 결코 손해 보지 않는다. 그래서 추천한다.
사람은 독서해야 산다. 왜? 글을 읽는 자마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