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 사역

제목2020년 2월 16일 (셋째 주) 지역 셀 사역2024-04-23 17:07
작성자 Level 10


얼음 깨기 (WELCOME)
당신이 좋아하는 길은 어떤 이미지인가요?(걷기, 드라이브, 등산 등)  

 
경배와 찬양 (WORSHOP)
● 찬송가 430장 –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  복음성가: 하늘 소망
  

 
말씀읽기와 적용 (WORD)
● 제목 : 길을 잃어버린 자들에게
● 본문 : 마태복음 15:21-28
1) 길을 잃은 자에게 먼저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⓵ 마태복음 15:22
⓶ 마가복음 5:25-29
⓷ 마가복음 1:40-45  

2) 길 위에 있는 자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⓵ 마태복음 15:25-28  

3) 적용하기
⓵ 설교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중심 메시지는 무엇인가?
⓶ 당신이 분명한 길 위에 있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사역하기 (WORK)
주간 중보기도

1)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인해 영적 집중력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2) 2020년 지역 셀 사역에서 영혼을 구원하는 은혜가 있도록
3) 시작된 수요 심야 기도회가 기도 응답의 진원지가 되도록 (50대 기도 제목과 성도들의 중보 제목이 응답 받게 하옵소서.)
4) 성도들의 경영이 어려움에 봉착하지 않도록
5) 다음 세대가 다시 살아나도록
6) 환우들의 치유를 위하여
7) 담임목사의 목양을 위해서


셀 사역

1) 수요 심야기도회 사역에 적극적으로 임할 수 있도록  독려하기
2) 섬기는 피선교지 중보 및 셀 별 기도제목 숙지하고  반드시 중보하기
3) 지역 셀에서 형식적으로 태신자를 품지 말고 최선을 다해 영혼 구원 대상자를 선정해서 품고 기도하기
4) 개인 청결을 통해 건강 유지하기
5) 지역 셀 예배를 형식으로 드리지 않고 최선을 다해  은혜롭게 드리기
6) 셀 헌금 드리기를 통해 지역 셀 사역이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독려하기  

 
설교요약 (SUMMARY)
설교요약
제목: 길을 잃어버린 자들에게
본문: 마태복음 15:21-28

  서론)
  혹자는 그리스도인을 가리켜 이렇게 말합니다. “길을 찾는 자들이다.” 그리스도인들은 길을 찾는 사람들입니다.  문제는 길을 찾되 잘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길을 잘 찾아야 많은 사람들이 길을 잘 찾도록 도와줄 수 있는 선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길을 잘 찾을 수 있겠습니까? 적어도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주인공을 추적하면 길을 잘 찾을 수 있는 모형이 보이기에 저는 오늘 본문을 통해 이 답을 드려볼까 합니다. 

  본론)
  오늘 본문 텍스트의 줄거리는 우리들이 익히 있는 수로보니게 출신의 한 여인이 주님을 찾아온 사건입니다.
그녀가 왜 주님을 찾아 왔는가? 그 여인의 딸이 심하게 귀신이 들려 있었기 때문이라고 마태는 증언합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딸의 치유를 위해 힘들게 예수님을 찾아왔건만 주님으로부터 심한 모욕에 가까운 냉대를 받은 스토리의 주인공이었음도 본문이 함께 밝히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여인은 본인에게 임한 여러 불리한 정황을 믿음으로 극복하여 결국에는 주님으로부터 딸의 치유를 얻어 냈음을 극적으로 본문이 증언합니다. 이제 우리는 이런 대체적인 스토리를 오늘 설교의 방향성에 맞추어 재해석함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성도로서의 바른 길 찾기에 대한 영적인 은혜를 나누어보고자 합니다.
  본문 22절을 읽어보겠습니다.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하되”
  우리는 인지상정으로 사랑하는 딸이 귀신들렸기에 주님에게 찾아왔다는 것을 흔쾌히 수용할 수 있습니다. 주목할 것은 여인이 주님을 찾아왔다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외친 단말마적인 외침입니다.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수로보니게 여인의 이 외침은 기도의 극치였습니다. 왜냐하면 수로보니게 여인이 주님께 외쳤던 외침은 기도를 하는 대상자가 기도를 듣는 주체에게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절규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여인은 본인의 능력으로 도무지 어찌할 수 없는 유한적인 무능함을 인정하고 그 무능함을 뛰어넘게 해 주는 절대자를 찾아간 것입니다.
  이 여인은 가나안 여인이었습니다. 헬라적인 이방인인의 피가 흐르는 여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여인은 지금 자기가 찾아온 예수라는 존재가 어떤 존재인가를 묻는 문화에서 성장한 여인이 아니었습니다. 도대체 다윗이 누구? 그 다윗이 주라는 이게 말이 되는 소리냐는 문화에 속하면 속했지 다윗의 자손이 누군지에 대하여 전혀 관심이 없는 문화, 사회에서 자라난 이방인이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도 이 여인은 지금 자기가 찾아온 예수에 대한 정확한 정체성을 갖고 있었다는 정보가 22절에 담겨 있지 않습니까? 바로 이 대목에서 저와 여러분같이 올바른 길을 찾는 사람들이라면 반드시 유념해야 하는 첫 번째의 은혜를 만나게 됩니다.   

  1) 예수 그리스도를 찾아야 길을 찾습니다.
  가나안 여인이 행한 최고의 행위는 예수를 찾았다는 점입니다. 왜 이 선택에 박수를 보냅니까? 정말로 잘 찾았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 같은 그리스도인들은 예수가 길임을 믿기에 그 분을 찾는 데 목숨을 건 사람들입니다. 예수라는 길은 우리의 신앙 여정 중에 지속적으로 찾아야 하는 정답입니다.
  주군은 우리에게 직접 당신의 정체성을 이렇게 밝히셨습니다. 요한복음 14:6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주군께서 당신의 정체성이라고 표현한 ‘길’ 즉 ‘호도스’를 바울은 고린도전서 1:18절에서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여기에 기록된 ‘도’ 즉 ‘로고스’는 요한복음 1:1절에서 요한이 밝힌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고 말했던 ‘말씀’ 즉 ‘로고스’입니다. 그렇다면 마땅히 말씀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저와 여러분이 찾아서 따라가야 할 길이지 않겠습니까? 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찾아 그 분이 걸으셨던 길을 따라가는 것이야 말로 저와 여러분이 승리하는 유일한 요소임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마가복음  5:25-29절을 소개합니다.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온 한 여자가 있어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많은 의사를 찾았던 이 여인의 결과는 많은 괴로움이었다고 마가는 요약합니다. 공교롭게 이 여인이 많은 괴로움을 당한 뒤에 찾은 예수님으로부터 12년 동안에 지긋지긋하게 괴롭혔던 혈루의 근원이 말랐다고 마가는 보고합니다. 의사로 상징되는 비 진리를 찾는다고 해서 우리들의 문제 혈루들이 마르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지금 여러분이 찾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입니까? 의사입니까?
  마가복음 1:40-45절을 봅니다. “한 나병환자가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곧 나병이 그 사람에게서 떠나가고 깨끗하여진지라 곧 보내시며 엄히 경고하사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가서 네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고 네가 깨끗하게 되었으니 모세가 명한 것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하셨더라 그러나 그 사람이 나가서 이 일을 많이 전파하여 널리 퍼지게 하니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는 드러나게 동네에 들어가지 못하시고 오직 바깥 한적한 곳에 계셨으나 사방에서 사람들이 그에게로 나아오더라” 나병 환자의 치료 이후 대중적인 인기몰이를 염려하셨던 주님이 한적한 곳으로 물러가 계셨지만 가버나움뿐만 아니라 사방에서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아갔다는 이 구절이 주는 의미를 언제나 잊지 않으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찾는 자가 이깁니다. 나는 우리 세인 지체들 예수 그리스도를 찾는 지혜로운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대합니다.

  2)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감동시키는 믿음이 있을 때 복의 길에 섭니다.
  정말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쳐서 수로보니게 여인은 주님을 만났습니다. 이제 만났으니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은 것과 다름없습니다. 그런데 만만치 않은 복병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본문 23-24절을 읽겠습니다.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니” 가장 기대했던 당사자인 예수께서 여인의 청에 대하여 싸늘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24절에서 도무지 해석이 곤란한 반응을 주께서 보이신 것입니다.
  주님은 공생애를 사시면서 철저하게 지키셨던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사역의 순서 즉 질서였습니다. 예를 들자면 주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신 시기는 세례자 요한이 헤롯에게 순교를 당한 뒤 부터였습니다. 세례 요한이 외쳤던 일성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이었음을 압니다. 이렇게 외쳤던 세례 요한이 살아 있는 동안, 주님은 무대 정 중아 위로 올라오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이 무대로 올라오신 것은 세례요한이 죽음을 당한 뒤였다는 점은 주님이 얼마나 사역의 질서를 존중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어디 이뿐입니까? 주님의 일성 역시 세례 요한의 일성으로부터 시작했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였습니다. 주님은 이런 사역의 질서를 깨뜨리지 않으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당신의 선교의 순서도 질서를 유지하려 했던 것이 분명합니다. 어떻게? 제일은 이스라엘에게, 그 다음은 그 이스라엘을 통하여 이방인에게. 이 구원사적인 사역의 순서는 아브라함부터 지금 주님의 시간까지 지켜지고 있음을 아셨기에 주님은 본문에서 수로보니게 여인에게 그렇게 말씀하시며 반응하셨다는 해석에 저는 한 표를 던집니다. 이것이 주님의 원칙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수로보니게 여인은 주님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하고도 큰 믿음이 있었습니다. 저는 수로보니게 여인이 주님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던 아름다운 믿음을 갖고 있었던 구도자라고 확신합니다. 본문 25-27절입니다.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주님은 여인의 믿음에 감동하신 것입니다. 감동하신 주님은 당신의 계획과 원칙도 바꾸십니다.
  유진 피터슨 목사의 메시지에 기록된 본문 마지막 28절의 번역은 짜릿함 감동을 독자인 저와 여러분에게 선사합니다. “예수께서 뜻을 굽히셨다. 여자여, 네 믿음이 남다르다. 네 소원대로 되었다. 그 즉시 여자의 딸이 나았다.” 아마도 두로에서 만난 수로보니게 여인의 큰 믿음을 보셨던 주님께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여인의 엄청난 믿음을 확인하셨고 끝내는 감동하셨습니다. 해서 주님은 당신의 뜻을 굽히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칭찬하셨습니다. 네 믿음이 남다르구나! 이렇게 주님을 찾아와 인생의 극적인 드라마를 쓴 여인은 딸의 질병을 고침 받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플러스알파의 은혜, 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의 길을 걷는 가장 행복한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결론)
  유대인 신학자이자 철학자인 아브라함 조슈아 헤셀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 존재는 결코 그냥 존재하는 존재가 아니다. 그것은 언제나 의미와 관련되어 있다.” (아브라함 죠수아 헤셀, “누가 사람이냐”,한국기독교연구소 간,p,68) 이 글에 밑줄을 친 이유는 ‘의미’라는 단어 때문이었습니다. 헤셀이 말한 ‘의미’가 저와 여러분과 같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과연 무엇일까? 내가 나 되도록 한 의미는 예수가 길 그 자체라는 것을 받아들였다는 의미입니다.
  사랑하는 세인 지체 여러분! 지금도 길이 잘 보이지 않습니까? 아니면 그 길이 유일하게 나에게 펼쳐진 은혜의 길이라는 것에 대한 확신이 없습니까? 바랍니다. 그것이 성경이든, 우리가 계속 살펴보는 주님 앞에 엎드림이든, 또 아니면 성서에 근거한 영적 조명이든 또 아니면 세미한 음성이든 주님이 주시는 다양한 길을 찾으십시다. 길을 찾는 순간, 여러분은 가장 의미 있는 감사를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이번 한 주간도 이 은혜를 찾기 위해 더 많이 엎드리는 우리 세인 지체들이 되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