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깨기 (WELCOME)당신이 중단하지 않고 꾸준히 해오는 일에는 무엇이 있나요? | 경배와 찬양 (WORSHOP)● 찬송가 365장 – 마음속에 근심 있는 사람 ● 복음성가: 주님의 아파하심으로 | 말씀읽기와 적용 (WORD)● 제목 : 대가 없는 승리는 없다. ● 본문 : 느헤미야 1:1-11 1) 성도가 성도로서 승리하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대가는 무엇인가요? 2) 대가를 치르는 내용 2가지는 무엇인가요? 3) 적용하기 ⓵ 설교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중심 메시지는 무엇인가? ⓶ 대가를 어떻게 치를 것인가, 구체적으로 나누어보자. | 사역하기 (WORK)주간 중보기도
1)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인해 영적 집중력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2) 2020년 지역 셀 사역에서 영혼을 구원하는 은혜가 있도록 3) 시작된 수요 심야 기도회가 기도 응답의 진원지가 되도록 (50대 기도제목과 성도들의 중보 제목이 응답 받게 하옵소서.) 4) 성도들의 경영이 어려움에 봉착하지 않도록 5) 다음 세대가 다시 살아나도록 6) 담임목사의 목양을 위해서
셀 사역
1) 수요 심야기도회 사역에 적극적으로 임할 수 있도록 독려하기 2) 섬기는 피선교지 중보 및 셀 별 기도제목 숙지하고 반드시 중보하기 3) 지역 셀에서 형식적으로 태신자를 품지 말고 최선을 다해 영혼 구원 대상자를 선정해서 품고 기도하기 4) 개인 청결을 통해 건강 유지하기 5) 지역 셀 예배를 형식으로 드리지 않고 최선을 다해 은혜롭게 드리기 6) 셀 헌금 드리기를 통해 지역 셀 사역이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독려하기 | 설교요약 (SUMMARY)설교 요약 제목: 대가 없는 승리는 없다. 본문: 느헤미야 1:1-11
서론) 세상적인 시각에서도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위대한 일을 이루는 일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상식의 일입니다. 하물며 영적인 면에서야 재론의 여지가 있겠습니까? 성도가 성도로서의 삶을 승리하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대가가 무엇일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말씀드리기 위해서 예언자 에스겔을 통하여 말씀하신 하나님의 신탁을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에스겔 36:37절입니다.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내가 그들의 수효를 양 떼 같이 많아지게 하되” 이 구절에서 우리들이 놓치지 말아야 하는 신탁이 있습니다.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하나님은 당신의 일을 이루시기 위해서 반드시 이스라엘로 하여금 기도라는 대가를 지불하게 만드신다는 엄위하신 신탁이 읽혀지십니까? 여기에서 우리는 성도가 성도로서 승리하기 위해서 지불해야 하는 대가를 분명하게 발견하게 됩니다. 바로 기도입니다. 이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승리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은 단 한 사람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서 기도라는 대가를 지불하고 난 뒤에 승리의 노래를 부른 대표적인 주인공 한 사람을 교우들에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본론) 느헤미아는 바사에서 출세한 사람이기는 하지만, 항상 본인이 유대인임을 명심하고 살았던 역사의식이 있었던 자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항상 그는 조국 예루살렘의 근황에 대해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느헤미야는 자신의 조국 예루살렘에 다녀 온 친척 하나니에게 뜻밖의 우울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것은 고향 예루살렘이 폐허로 버려진 상태로 있다는 비보였습니다. 오늘 본문 2-3절입니다. “내 형제들 가운데 하나인 하나니가 두어 사람과 함께 유다에서 내게 이르렀기로 내가 그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의 형편을 물은즉 그들이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자들이 그 지방 거기에서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 하는지라” 느헤미야에게 충격이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읍이 훼파되었다는 소식이 들려 온 것입니다. 해서 느헤미야는 무언가를 결심하고 행동하였습니다. 먼저 본문 4절을 읽겠습니다.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느헤미야는 슬픈 소식을 듣고 하나님 앞에서 금식하며 기도했다고 보고합니다. 오늘 설교 제목으로 맞추어 해석한다면 느헤미야는 대가를 지불한 것입니다. 바로 이 대목에서 우리는 기도라는 대가를 지불하려면 반드시 공감해야 하는 대목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1) 비정상적인 영적 상태에 대한 1인칭적인 아파함이 있어야 합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니의 비극적인 보고를 받은 뒤에 수일 동안 울었다고 했습니다. 왜 그는 이렇게 통곡을 했습니까? 조국 땅에서 일어난 일들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 아닌 영적으로 비정상적인 상태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 통곡의 아픔 때문에는 그는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였던 것입니다. 본문 6절을 주목해 주십시오. “이제 종이 주의 종들인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우리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 범죄 한 죄들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이 범죄 하여” 느헤미야는 선조들의 죄를 자신의 죄로 고백하고 있는 기도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사실 엄격한 의미로 말한다면 느헤미야는 포로 2세였기에 이스라엘의 성읍이 훼파된 것에 대한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느헤미야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와 나의 아비 집이 범죄 하여” 지금 이스라엘이 당하고 있는 아픔에 대한 1인칭적인 적용은 느헤미야의 이 기도가 참으로 중요한 기도라는 것을 가르쳐 주는 교과서적인 실례입니다. 느헤미야는 민족의 아픔을 1인칭의 아픔으로 승화시켰습니다. 그리고 그 아픔을 이기기 위해 철저한 개인적인 기도라는 대가를 지불하였고 그 결과 느헤미야는 그렇게도 꿈에 그렸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기회를 거머쥔 뒤에 다시는 외부의 공격에 무너지지 않을 성벽 재건을 완성하게 됩니다.
2) 대가를 지불하는 기도는 유불리를 계산하지 않고 기도한 대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본문 7-10절을 읽겠습니다. “주를 향하여 크게 악을 행하여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 옛적에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만일 너희가 범죄 하면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 흩을 것이요 만일 내게로 돌아와 내 계명을 지켜 행하면 너희 쫓긴 자가 하늘 끝에 있을지라도 내가 거기서부터 그들을 모아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리라 하신 말씀을 이제 청하건대 기억하옵소서 이들은 주께서 일찍이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구속하신 주의 종들이요 주의 백성이니이다” 느헤미야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셨던 언약을 붙들고 기도했습니다. 그 약속은 여전히 유효함을 하나님께 확인하며 기도했습니다. 모세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언약은 흩기는 하겠지만 다시 회복을 시키시겠다는 언약이었습니다. 이 언약의 내용이 이제 느헤미야 자신에게 해당되는 언약임을 확신하고 기도했다는 점은 놀라운 감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언약을 붙들고 기도했던 느헤미야는 본문 마지막 절 11절에서 위대한 기도를 하나님께 드리게 됩니다. “주여 구하오니 귀를 기울이사 종의 기도와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오늘 종이 형통하여 이 사람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하였나니 그 때에 내가 왕의 술 관원이 되었느니라”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의 비보를 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마음에 결단을 합니다. 그는 저 황폐한 땅 예루살렘으로 내가 가야겠다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기를 꺼려하는 곳이었지만 이제는 자신이라도 가서 무너진 예루살렘의 성벽을 재건해야 하겠다는 일념으로 결단의 기도를 드린 것입니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첫째 느헤미야는 아닥사스다의 술 관원이었기 때문에 제일 먼저 그가 예루살렘으로 가기 위해서는 아닥사스다의 허락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것을 오늘 본문의 기도문으로 “아닥사스다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둘째 느헤미야는 지금 바사의 수산 궁에서 최고의 안락을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에는 사람이 살 수 있는 조건이라고는 하나도 되어 있는 것이 없는 불모지입니다. 더군다나 그 곳에는 거민들이 공격과 위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느헤미야는 그 곳에 가고 싶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하면서 기도마저도 자신의 유리함으로 만드는 경우가 있음을 압니다. 기도도 자신에게 손해가 되면 그 기도를 합리화시킨다는 말입니다. 그건 기도가 아닙니다. 차준희 교수가 쓴 기도법칙을 보면 예레미야 예언자의 기도를 소개하는 글에서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기도는 입술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의 입보다 손과 발로 드러나는 삶을 주목하십니다. 기도는 입술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삶과 더불어 하는 것입니다. 삶의 변화가 동반되지 않는 기도는 아무런 능력이 없는 무모한 울부짖음에 지나지 않습니다.”(차준희, “기도법칙”, 교회성장연구소,pp,155-156.) 20세기의 선지자로 불리는 아이든 토저는 이렇게 현대인들의 기도에 대하여 비판했습니다. “지금 그리스도인들은 얼마나 세상적이고, 얼마나 세속적인가! 그들은 가구, 텔레비전, 야구, 축구, 골프, 자동차, 호화주택 그리고 정지 이야기를 한다. 천국과 하나님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하나님, 저를 더욱 가까이 이끄소서! 더 가까이 이끄소서! 라고 기도한다.” (아이든 토저, “GOD”, 규장, p,245.) 정말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이라면 기도의 진정성이 있는 대가 지불에 망설이지 마십시오. 내가 하나님께 진정성이 있게 기도했다면 그 기도의 응답에 따라 하나님을 저울질 하지 마십시다. 하나님은 응답은 언제나 하나님의 식으로 완벽하게 응답하시는 참 좋으신 하나님이심을 믿으십시다. 그 응답이 내게 손해가 되어 보여도, 하나님은 궁극적으로 승리하게 하심을 믿으십시다. 그게 대가를 지불하는 기도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말씀대로 살려면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지금 하나님의 교회가 기도에 집중하려는 역동이 있습니다. 말씀에 움직이지 않는 성도들까지 제가 어떻게 할 수는 없겠지만 지난 수요일, 말씀에 움직이려는 성도들이 보여 나름 감사했습니다. 기도하는 시간에 1인칭적인 하나님의 아파하심을 더 많이 느끼는 감동의 중보자가 되기를 바라며, 동시에 기도를 드린 대로 살겠다고 다시 한 번 결단하는 지체들이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대가 없는 기도의 승리는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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