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깨기 (WELCOME)경배와 찬양 (WORSHOP) ● 찬송가 364장 – 내 기도하는 그 시간 ● 복음성가: 괴로울 때 | 말씀읽기와 적용 (WORD)● 제목 : 기도 외에 대안은 없습니다. ● 본문 : 빌립보서 4:6-7 1) 바울이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당부한 성경적 배경은? ⓵ 바울에게 에바브로디도가 보고한 빌립보 교회의 영적 상태 두 가지는? Ⓐ Ⓑ ⓶ 바울이 편지에 제시한 목회적인 방법 세 가지는? Ⓐ Ⓑ Ⓒ |
2) 여호사밧이 갖고 있었던 믿음과 그 믿음의 결과는? ⓵ 믿음 - 역대하 20:3절을 현대적인 언어로 표현해 보자. ⓶ 믿음의 결과 – 역대하 20:6,12,15-17 |
3) 적용하기 ⓵ 나의 기도는 일회용품인가? 아니면 붙들고 있는 무기인가? ⓶ 나는 기도하지 않아도 살만하다고 믿는가? 아니면 죽는다고 생각하는가? ⓷ 나는 얼마나 기도하는 자인가? 아니면 장의사인가? | 사역하기 (WORK)주간 중보기도
1) 2월 사역을 위하여 (월별 목회 계획 참고) 2) 환우들의 치유를 위하여 3) 2020년 지역 셀 사역에서 영혼을 구원하는 은혜가 있도록 4) 수요 심야 기도회가 기도 응답의 진원지가 되도록 5)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더 이상 악화되지 않도록 6) 담임목사의 철원평화교회 부흥회 섬김이 승리하도록
셀 사역
1) 수요 심야기도회 사역에 적극적으로 임할 수 있도록 독려하기 2) 섬기는 피선교지 중보 및 셀 별 기도제목 숙지하고 반드시 중보하기 3) 지역 셀에서 형식적으로 태신자를 품지 말고 최선을 다해 영혼 구원 대상자를 선정해서 품고 기도하기 4) 개인 청결을 통해 건강 유지하기 5) 지역 셀 예배를 형식으로 드리지 않고 최선을 다해 은혜롭게 드리기 6) 셀 헌금 드리기를 통해 지역 셀 사역이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독려하기 | 설교요약 (SUMMARY)설교 요약 제목: 기도 외에 대안은 없습니다. 본문: 빌립보서 4:6-7 빌립보 교회는 바울이 칭찬한 초대교회 중에 데살로니가 교회와 더불어 쌍벽을 이루는 교회 중에 하나였습니다. 비록 교회는 소규모의 교회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빌립보교회는 바울을 지속적으로 지원하며 기쁘게 해 준 교회 중에 하나였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이렇게 칭찬한 빌립보 교회는 완벽한 교회였습니까? 아닙니다. 완벽한 교회는 이 땅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빌립보서 4:2-3절을 읽겠습니다.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빌립보 교회 공동체 안에 서로 반목하고 있었던 두 자매가 있었음을 암시합니다. 유오디아와 순두게입니다. 유오디아가 누구인지, 순두게가 누구인지 빌립보서 내증으로는 잘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이 두 명의 여인은 빌립보 교회에서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 여인들로 추측합니다. 문제는 이 두 사람의 사이가 별로 안 좋았던 것입니다. 에바브로디도가 빌립보교회의 헌금을 에베소에 있는 바울에게 전달하려고 갔을 때 에바브로디도는 빌립보 교회의 영적 상태를 바울에게 전했을 것입니다. 그 보고는 너무 잘 성장하고 있을 것만 같았던 빌립보 교회에 지금 두 가지의 골칫거리가 있다는 보고였습니다. 하나는 3장에 언급되어 있는 거짓 율법주의자들의 침투요, 또 하나가 앞에서 언급한 두 여인의 반목으로 인해 당하고 있는 교회의 시험거리였습니다. 이 보고를 받은 바울은 빌립보교회의 어려움을 이기기 위한 목회적인 방안을 제시하였는데 세 가지입니다. ① 빌립보서 3:2절입니다.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 율법주의자들은 개와 같은 존재들이니 조심하고 삼가라는 권면이었습니다. ② 빌립보서 4:3절입니다.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누구인지는 자세히 알 수 없지만 나와 같이 멍에를 멘 동역자에게 두 여인들의 반목을 잠재울 것을 위탁한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빌립보 교회의 모든 지체들에게 권한 바울의 목회 방법론이 오늘 본문 6-7절입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6절이 무슨 권면이었습니까? 기도하라는 메시지입니다. 그렇다면 7절은 무엇입니까? 그러면 반드시 응답을 받게 될 것이라는 바울의 선포입니다. 우리는 바로 이 말씀의 대목에서 대단히 중요한 영적 교훈을 받게 됩니다. ※ 교회와 성도에게 있어서 승리의 대안은 기도 외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 성도와 교회가 기도해야 합니까? 6절을 다시 읽겠습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말할 것도 없이 아멘 해야 하는 구절입니다. 그런데 이 구절을 통해 역발상의 은혜를 나누고 싶습니다. 본문 6절을 거꾸로 생각하면 이런 답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기도와 간구를 하나님께 드리지 않을 때 생기는 것이 있습니다. 염려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염려하다’라고 번역된 헬라어 단어 ‘메림나오’는 ‘생각이 쪼개지다’라는 뜻을 갖고 있는 단어입니다. 정신의학에서 ‘Anxiety disorder’라는 병명이 있는데 바로 ‘불안장애’입니다. 다양한 형태의 비정상적, 병적인 불안과 공포로 인하여 일상생활에 장애를 일으키는 정신질환입니다. 이 장애의 특징이 바로 생각과 정신이 쪼개져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게 되는 정신병입니다. 오늘 우리 성도들에게 적용하면 대단히 유용한 적용이 가능합니다. 기도하면 성도가 신앙의 여정에 집중력이 생깁니다. 그래서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이 분명하게 인식됩니다. 마땅히 신앙의 승리가 이루어집니다. 반면 기도하지 않으면 영적 정신장애가 나타납니다. 마음이 나뉘고, 생각이 나뉘어 신앙생활에 집중하지 못합니다. 이 의미를 바울은 오늘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교회에서 발생하는 일체의 염려거리, 성도에게 발생하는 이모저모의 생각의 분리나 헷갈림의 원인은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 그리고 세인 교회가 가려는 목적지는 이 땅에 이루어진 하나님의 나라에서 하나님의 백성답게 삶으로 인해 다시 이루어질 하나님의 나라에 영광의 면류관을 쓰고 궁극적으로 도착하는 것입니다. 마치 존 번역이 ‘천로역정’에서 소개한 크리스천처럼 말입니다. 동시에 우리 모두가 목적하고 항해하는 최종적인 항구 역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가야 할 그 하나님의 나라라는 궁극적인 목적과 항구가 설정되어 있는 행운아들임에 분명합니다. 그래서 한 가지 더 거룩한 욕심을 내야 합니다. 그 항구에 잘 도착하려면 바람을 잘 타야하지 않겠습니까? 저와 여러분과 세인교회에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설정하신 아름다운 목적지로 항해하도록 순풍을 도구로 주셨습니다. 그 순풍이라는 도구가 바로 기도입니다. 누가 기도하지 않습니까? 기도 안 해도 괜찮다고 믿는 교만한 자들입니다. 누가 기도와 담쌓은 자입니까? 그렇게 살아도 살아보니 살만하다고 느끼는 교만한 자들입니다. 이 땅을 사는 동안 기도하지 않아도 살만하다고 여기는 자들은 들으십시오. 오늘 내가 발 딛고 있는 이 땅에서 기도하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와 별로 큰 차이가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하나 안 하나 별 차이가 없다고 기고만장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기도한 이후에 눈에 보이는 효과가 그렇게 크게 나타나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기에 과학적인 메커니즘에 길들여져 있는 오늘의 현대적 그리스도인들 중에도 상당수 기도의 능력에 대하여 반신반의하는 자들이 수두룩할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로 유감스럽지만 기도하며 방향성을 곧추 세운 기도의 사람들과는 전혀 비교될 수 없는 것들이 그런 자들에게는 이미 존재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무엇일까요? 이미 그런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와 단절되어 있을 가능성이 농후한데 본인만 모르거나 아니라고 버티는 것뿐이라는 비극입니다. 이미 하나님과의 영적인 호흡이 끊어진 자들이 무슨 하나님과의 관계를 운운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말할 수 있겠습니까? 왜 교회와 성도에게 있어서 승리의 대안이 기도 외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오늘 설교의 레마로 정했을까요? 기도를 한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을 확인해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역대하 20장을 보면 우리는 염려를 주께 맡기고 주님을 바라봄으로 승리한 하나님의 사람을 만날 수 있습니다. 유다 왕 여호사밧입니다. 역대하 20장을 보면 모압과 암몬과 마온이 3개국 연합으로 유다를 침공합니다. 이들 연합군이 엔게디에 모여서 여호사밧 왕을 치러 온다는 전갈을 받습니다. 당시 여호사밧이 이끄는 남 유다의 전력으로는 3개 동맹군을 물리치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여호사밧은 두려웠습니다. 절대로 군사력이나 물리적인 힘으로는 이 싸움에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여호사밧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해서 이 역사적인 보고를 하고 있는 역대기 역사가는 당시 여호사밧의 심리를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역대하 20:3절 전반절입니다. “여호사밧이 두려워하여” 여기에 ‘두려워하여’라고 번역한 히브리어 ‘야레’의 원뜻은 ‘경기를 하다’는 뜻입니다. 어린이들이 자라면서 경기(驚氣)를 할 때가 있습니다. 驚氣를 할 때 잘 잡아주고 치료하지 못하면 심각한 후유증이 나타난다는 정도는 우리 모두가 압니다. 얼마나 여호사밧이 두려웠으면 경기를 할 정도로 두려웠겠습니까? 그런데 여호사밧에게는 대단히 중요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현재진행형으로 맺고 있다는 믿음의 극치였습니다. 역대하 20:3절 전체를 읽겠습니다. “여호사밧이 두려워하여 여호와께로 낯을 향하여 간구하고 온 유다 백성에게 금식하라 공포하매” 여호사밧은 두려워하며 경기하는 것으로 본인의 삶을 자포자기(自暴自棄)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여호와께로 낯을 향했다고 했습니다. 내 하나님께 물러보기로 했다는 여호사밧의 신앙의 극치는 내가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지금 나의 삶의 현재를 이끄시는 하나님을 느끼겠다는 위대한 신앙고백인 것이었습니다. 여호사밧은 그래서 이 전쟁을 주께 의탁했습니다. 역대하 20:6절과 12절입니다. “이르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하늘에서 하나님이 아니시니이까 이방 사람들의 모든 나라를 다스리지 아니하시나이까 주의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능히 주와 맞설 사람이 없나이다” (6절) “우리 하나님이여 그들을 징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하고”( 12절) 이렇게 하나님과의 관계가 현재진행임을 설정한 여호사밧에 임한 감동이 무엇입니까? 이 기사의 마지막 엔딩 스토리를 역대기 기자는 제사장 야하시엘의 입을 빌려 이렇게 후대의 독자들에게 보고합니다. 역대하 20:15-17절입니다. “야하시엘이 이르되 온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과 여호사밧 왕이여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너희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이 큰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내일 너희는 그들에게로 내려가라 그들이 시스 고개로 올라올 때에 너희가 골짜기 어귀 여루엘 들 앞에서 그들을 만나려니와 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대열을 이루고 서서 너희와 함께 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 유다와 예루살렘아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내일 그들을 맞서 나가라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 하셨느니라” 기도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현재진행형으로 설정한 자에게 주어지는 감동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싸우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대신 싸우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나를 대신하여 이루시는 구원을 우리는 보는 것입니다. 기도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는 것을 보는 은혜의 통로입니다. 기도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세인교회와 함께 하시는 것을 보는 은혜의 통로입니다. 기도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당신과 함께 하시는 것을 보는 은혜의 통로입니다. 주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 9:29절입니다.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그렇습니다. 나의 영적인 승리와 교회의 견고한 승리를 가져오는 것은 기도 외에 다른 대안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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