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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셀 리더님이 좋아했던 시2024-06-04 13:36
작성자 Level 10

그 꽃 / 고은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천적
조병화

결국, 나의 천적은 나였던 거다

 

 

연탄 한장

-안도현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방구들 선들선들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을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 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봄과 같은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
생각해 본다.

그는 아마도
늘 희망하는 사람,
기뻐하는 사람,
따뜻한 사람,
친절한 사람,
명랑한 사람,
온유한 사람,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
고마워할 줄 아는 사람,
창조적인 사람,
긍정적인 사람일게다.

자신의 처지를 원망하고
불평하기 전에
우선 그 안에 해야 할 바를
최선의 성실로 수행하는 사람,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과 용기를 새롭히며
나아가는 사람이다.


- 이해인의《봄과 같은 사람》에서 -
 

 

처음처럼 - 용혜원


우리 만났을 때
그 때처럼
처음처럼
언제나 그렇게 수수하게
사랑하고 싶습니다

 

처음 연인으로
느껴져 왔던
그 순간의 느낌대로
언제나 그렇게 아름답게
사랑하고 싶습니다

 

퇴색되거나
변질되거나
욕심부리지 않고

우리 만났을 때


그 때처럼
처음처럼
언제나 그렇게 순수하게
사랑하고 싶습니다



별 헤는 밤/윤동주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

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

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

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슬히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 



이강덕 14-03-30 21:46
너무 귀한 시들이네요. 시어처럼 살아가는 한 주간이 되기를 바래요.
심재열 14-04-02 14:09
시 마다 문득 떠오르는 그리운이들이 생각나네요^^
이 봄이 가기전 그들에게 안부라도 전해야 겠습니다.
 

좋은시 감사하고 셀에서 잘 나누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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