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란 무엇일까? 미국 초대형 소설 베스트셀러 작가 스티븐 킹이 기막힌 말로 답했다. 정신감응(精神感應)이다. (스티븐 킹, 『유혹하는 글쓰기』, 김영사, 2015, 125쪽) ‘정신감응’이라는 심리학적인 단어가 일반인들에게는 대단히 낯선 단어일 수 있다. 그러면 영어표현은 어떨까? 정신감응을 영어표현으로 ‘텔레파시(Telepathy)’라고 번역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외래어로 이 단어를 바꾸어보니 ‘정신감응’이라는 단어가 조금은 친숙해진다. 나도 적지 않은 글을 쓰는 직업을 갖고 있다 보니 글을 쓸 때마다 아주 빈번하게 경험하게 되는 것이 있다. 적어도 내 시나리오 안에는 글을 쓰기 전부터 이렇게 글을 쓰겠다는 저자의 기본적 틀이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막상 글을 쓰다보면 행간과 자간을 기록할 때 불연 듯 떠오르는 영감(?) 같은 것이 있다. 순간, 반짝이며 다가온 섬광 같은 것이라고 말하면 공감이 될까 싶지만 마치 그런 거다. 이것은 글 쓰는 이만이 느끼는 말 그대로 ‘텔레파시’와 같은 감정이다. 그래서 글을 쓸 때는 긴장도 되지만, 감동을 기대하는 흥분도 동시에 임한다. 이제 일 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갔다. 지금 몸담고 있는 교단 신문인 나사렛 신문사에 한 달에 한 번 기고했던 북-리뷰 송고를 중단한지가 그렇다. 신문 발행을 주간하는 목사께서 부득이 신문지면을 줄여야 하는 교단의 결정으로 인해 한 달에 한 번이 아니라 격월로 글을 보내주면 좋겠다는 고육지책의 전화를 받고 마침 글쓰기에 대한 자질 부족으로 매번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바, 기회인 줄로 알고 절필하겠다며 정중히 고사했다. 그렇게 1년의 시간이 지났는데, 교회에 매달 배부되는 교단 신문사의 월별 신문 구독자가 거의 사라지는 아쉬움이 생겼다. 담임목사의 글이 더 이상 게재되지 않음을 알고 구독하는 교우들의 특심(特甚)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에 교단 신문사가 인터넷 판인 ‘나사렛 뉴스’ 콘텐츠를 개발하여 매거진의 형식으로 지면 신문과는 별도로 창간되었는데 1년 전에 기고를 중단했던 ‘이강덕 목사와 함께 하는 책 한 권 톺아보기’ 아이콘이 그대로 존속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업데이트가 되지 않는 것을 알고 불편한 마음이 있어 편집장과 상의하여 9월부터 다시 글을 송고해 업데이트를 하기로 했다. 지면 신문에 로드하는 것은 고사했지만, 인터넷 판에만 글을 업데이트하는 것을 조건으로 다시 글쓰기를 진행하려고 한다. 일본 최고의 서점 체인인 츠타야의 우메다 지점에서 인문분야 컨시어지(concierge)를 맡고 있는 미사고 요시아키가 본인의 책 머리말에 독일의 유명한 동화작가인 미하엘 엔데의 글을 인용한다. “당신이 인생의 기로에 서서 고민할 때, 아주 적절한 순간에 아주 적절한 책을 들고 아주 적절한 부분을 펼쳐서 지금 당신에게 꼭 필요한 답을 발견한다면, 당신은 그것을 우연이라고 생각하겠는가?” (미사고 요시아키, 『천년의 독서』, 시프, 2023, 10쪽)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요시아키의 강력한 선언을 나도 믿기에 졸필이기는 하지만, 내가 몸담고 있는 교단의 지체들에게 조금이라도 기여하고 싶은 마음으로 용기를 내기로 했다. 어쩌면 천로역정이라는 경주를 하고 있을 고단함으로 인해 많이 힘들어하고 있는 교단 동역자들에게 교단 표어 그대로 함께 어깨동무하며 옆에서 조금이라도 힘이 되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다시 졸고를 기고하기로 했다. 물론 하나님이 힘주실 것을 믿으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