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계탕을 식탁 앞에 두고 지난 월요일, 동기 모임이 인근 지역인 단양에서 있었다. 마침 동기 목사 한 명이 주일 사역을 마치고 제천에 내려와 하루를 묵고 모임이 있었던 월요일, 교회를 방문했다. 고향 친구이기도 한 동기 목사는 어려서 인근 교회에서 같이 자랐기에 고향 이야기로 모임이 있는 시간까지 환담하며 옛 이야기를 나누던 어간, 그 옛날 어린 시절을 이렇게 회고했다. “이 목사, 초등학교 시절에 아버지는 공휴일만 되면 우리 삼형제를 이끌고 교회에 가셨다. 그리고는 낡은 교회 건물 수리하고 보수 공사를 하는데 우리를 막 부렸어. 지붕도 고치고, 부러진 의자도 수리하고, 화장실 오물도 치우게 하고 엄청나게 혹사당했다. 교회 건축한다고 살던 집 팔고, 월세로, 사글세 집으로 이사했다. 성장하면서 이런 아버지한테 엄청 불만이 많았지.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어린 나이라 대들 수는 없었지만 아버지가 너무 미웠고 원망스러웠지. 한동안 아버지에게 반항하고 싶어서 교회도 들쑥날쑥하게 다녔다. 근데 말이야, 내가 목사가 됐다. 목사가 되고나서 보니 아버지가 남겨놓으신 그 신앙의 유산이 얼마나 그립고 큰지, 이제야 알겠다. 나는 목사지만 내가 자식들을 다 버려놓은 죄인임을 요즈음 깨닫고 하나님께 엄청 회개한다.” 친구의 옛 이야기와 간증을 듣다가 울컥했다. 나도 빼박인 공범자가 분명하기에. 지난 주간, 초복을 보냈다. 초복이 초복인 줄 안 것은 지체 한 분이 가져온 삼계탕 덕분이었다. 이제, 그렇게 산다. 내 이름도 잊어버리고 사는데 초복을 기억하며 산다는 게 어디 가당키나 한 일인가! 여하튼 연로하신 권사님이 정성스럽게 만들어 오신 삼계탕을 감사하게 먹으면서 이런 저런 소회가 임했다. 지역교회에서 담임목사를 섬기겠다고 삼계탕을 끓여오는 전설의 고향에 나올 법한 이야기는 이제 막을 내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아, 담임목사가 받는 것에 익숙해서 속물근성을 나타낸다고 비난한다면 잠시만 멈춰주기를 부탁한다. 시대가 그래서 그런지 교우들이 담임목사를 섬긴다고 무언가를 가져오면 나 또한 대단히 부담스럽고 거북하다. 그러니, 교우들은 안심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매주일 나누고 있는 목회 칼럼 란에 금주의 내용을 적시하기 위해 글을 쓰다가 든 생각은 조금 서글프다. 그래, 친구 목사의 말처럼 그래도 내가 어렸을 때 교회는 나눔이 있었고, 헌신이 있었고, 섬김도 있었는데 이제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되면 박물관에 박제되어 있는 고리타분한 이야기를 한다고 타박하는 메말라 있는 교회 정서가 못내 아쉽고 아프다. 지체가 보내준 삼계탕을 식탁 앞에 두고 ‘전설의 고향’ 같은 여운이 맴 돌아 웃펐다. 왜? 이제 서서히 이 따스함이 사라질 것이 분명하기에 더 더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