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다시 관리해야겠어요!
아내가 내게 말했다. 근 한 달 사이에 갑자기 팍 늙은 것 같다는 아내의 말에 피식 웃었다. 이제 늙을 나이인데 괜한 호들갑이라고 치부했기에 그랬다. 왠지 궁금해져서 거울을 보았다. 많이 늙어 있는 거울에 비치는 한 사람이 있다. ‘아버지다’ 60대에 들어서셨던 아버지의 얼굴이 거울에 비친다. 당시 아버지의 얼굴을 뵐 때마다 그 팔팔하고 혈기 왕성하던 젊은 날의 아버지는 사라지고 노쇠하고, 나약하기 짝이 없는 모습 때문에 마음 한 편에 예리한 칼로 찔림을 당한 아픔이 있었다. 헌 데 이제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영락없는 아버지다. 어떤 이가 말했다. “늙음은 천형(天刑)이다.”라고. 왜 아니 그러겠는가! 그래야 죽으니 말이다. 금요일 새벽예배를 인도하지 못했다. 한 동안 뜸했던 편두통 손님이 또 새벽에 찾아오셨기에 그랬다. 정말 서운한 건, 편두통 손님은 벌건 낮에는 오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드시 새벽 손님으로 오신다. 그렇게 오신 손님을 맞이해서 손님 대접하고 보내려면 한 나절은 힘을 써야 한다. 참 불편한 손님이다. 그렇게 편두통 손님을 대접하고 보낸 오전, 머리를 맑게 할 겸, 미세 먼지도 괜찮아 3층 베란다로 나갔다. 마침 주변 어린이집 악동 15명이 선생님의 인도에 따라 야외수업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즐겁게 춤을 추다가 그대로 멈춰라” 선생님의 노래 소리를 따라하던 아이들은 순간 멈췄지만, 선생님의 간지럼에 단 몇 초를 못 견디고 깔깔 대고 주저앉는다. 그렇게 술래가 된 아이는 또 힘차게 부른다. “즐겁게 춤을 추다가 그대로 멈춰라!” 이번에는 술래가 선생님을 간지럽힌다. 선생님은 뒤로 나자빠지는 흉내를 내며 다시 일부러 술래가 된다. ‘실버시티(Silver city)’인 제천이기에 유치원 아이들의 소리가 점점 더 적어지고 있다. 거울 속에 비친 이제는 노년의 길로 접어든 나는 유치원 악동들의 구슬 굴러가는 소리를 들으며 잠시 행복한 찰나를 보냈다. 정말로 절묘하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마냥 행복해 하는데 마침 건물 올리기가 한참인 주변 공사판에서 인부들이 틀어놓은 노래 소리가 들린다. “세월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 인생을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우는 데, 다시 못 올 그 먼 길을 어찌 혼자 가려 하오”
김광석의 노랫말이 은은하게 들린다. 그래, 이게 자연의 순리지. 채근담에서 말한 대로 ‘늙음은 추하지 않다.’는 명제에 동의하지만 그 늙음을 막을 수는 없다. 아내의 성화에 할 수없이 얼굴 변장에 동의하지만, 어떻게 늙음을 가릴 수 있을까 싶어 그만하라고 하고 싶지만 가정의 평화를 위해 오늘 저녁에도 얼굴을 아내에게 들이밀어야 한다. 오늘은 왜 그런지, 하나님 나라에서 안식하고 계신 아버지가 너무 보고 싶은 날이다. 거울 속에 아버지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