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층 베란다에서 보이는 하소 천(川)에 금계국이 만발해서 유혹한다. 오래 전 가난했던 시절, 하소천은 아낙네들의 빨래터였다는 이야기를 명예 권사님을 통해 들었다. 그 당시는 세탁기라는 것은 꿈에도 그리지 못했던 시절이라, 주부들이 빈번이 오가는 가족들의 빨래터로 이용되었고, 지금처럼 화학제품으로 도배된 세제류도 없었고, 있어봐야 양잿물과 같은 자연 세재로 빨래를 했으니 환경오염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가난했지만 참 괜찮은 시절이었다. 그랬던 추억의 하소 川이 경제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각종 오염물질들이 개발되어 하천으로 흘러들어 죽은 내(川)가 되어 버려 내가 제천에 이사 온 19년 즈음만 해도 악취가 진동하고 몰골 자체도 너무 보기에도 안 좋은 썩은 물이 흐르는 동네 냇가로 버려져 있었다. 하지만 하소 천이 몇 년 전부터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했다. 하소 천 살리기 운동의 결과였다. 시민들이 걸을 수 있는 둘레 길을 조성하고, 길 양편에 나무와 꽃들을 심은 지 이제 4년 정도가 되다보니 제법 다시 생명이 움직이는 천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걷다 보면 고고한 자태를 뽐내는 능수버들이 유혹하고, 수없이 많은 담쟁이들이 동양화를 그리며 수놓고, 천둥 오리들이 무리지어 찾아오고, 지나가던 철새들도 잠시 정착하고, 송사리들이 뛰어 논다. 이런 이유 때문에 다시 살아난 하소 천은 깨끗한 개울 천으로 탈바꿈되고 있어 시민의 한 사람으로 매우 행복하다. 얼마 전에는 포토 존 공사까지 해 놓아 그런지 금계국까지 만발한 작금의 때와 맞물려 젊은 커플 룩으로 치장한 연인들과 가족단위로 삼삼오오 짝을 지어 추억을 남기는 것도 쏠쏠하게 보는 재미까지 더해 집 근처에 이런 장소를 만들어준 자치단체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이렇게 하손 천이 시민 모두의 쉼터이자 휴식의 공간, 그리고 걷기를 하며 건강을 도모하는 장소로 더 발전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한데, 아직은 불안한 면도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비가 오는 날이면 폐수를 버리는 아주 질 나쁜 몇 몇의 이기적 단체들이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폐수 정화를 하는 중간 중간의 거름 장치들이 있기는 하지만 이런 몰상식한 일이 계속 벌어지면 역부족일 것 같다는 노파심이 있다. 140,000 시민의 행복한 휴식의 공간을 망가뜨리는 일체의 일들에 대해 매의 눈으로 모두가 바라보았으면 좋겠다. 용두산에서 발원하여 의림지를 거쳐 내려오는 깨끗한 물들이 모여 흐르는 하소 천이 다시는 훼손되지 않고 지금보다도 더 깨끗한 지류 하천으로 거듭나서 모든 이들이 함께 웃고 즐기며 걷는 행복한 장소로 더 발전되기를 기대해 본다. 이제 제천 시민으로 산지 19년을 넘어 20년째로 접어든다. 내가 아는 지인 장로님이 개척 당시 이렇게 말했단다. 세인교회를 개척한 이강덕 목사가 제천에서 5년 이상을 살면 내가 그때 세인교회로 나가 신자가 되겠다고. 서울틱(?)해 보이는 내가 제천에서 살지 못할 것이라는 장담 때문이었다. 유감스럽게 그분은 아직도 우리 교회 교인이 아니다. (ㅎㅎ) 제천에서 이제 햇수로 20년을 살았다. 7년이 지나면 내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 아무리 그래도 제천은 내 인생을 걸었던 행복했던 장소고, 따뜻한 제 2의 고향이다. 내가 사는 곳이 자연을 파괴하는 일체의 바벨주의적인 매커니즘과 맞서 둑을 쌓고 깨끗한 물과 아름다운 산과 보기에 심히 좋은 꽃들과 하나님의 사랑과 정으로 가득한 사람들로 그 맥을 이어가는 堤川이 되기를 두 손 모아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