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이 길을 가는 여러분이 누님이 매우 안타깝게 여기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아들이 저와 같은 길을 가는 것입니다. 누님은 막내인 저를 무척이나 사랑하고 아낍니다. 이런 이유로 저를 응원하고 염려하며 중보 해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를 향해 볼멘소리를 주저하지 않는 것 중에 하나가 제 아들을 목회자로 만들려고 했던 일이었습니다. 막내 동생의 전 일생이 얼마나 험하고 외롭고 힘든 길을 걸었는지 알기에 누님은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 하나면 됐지, 이 험한 길을 아들에게까지 대물림하려고 하냐!” 저는 누님의 이 노기를 충분히 이해합니다. 왜 아니 그러겠습니까? 밀양의 농촌교회에서 단독목회를 시작할 때, 경상도의 투박하기 짝이 없는 할머니 집사가 이제 막 목회의 발을 디딘 젊은 전도사 부부에게 군기를 잡으려고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종 부리듯 막내 동생 내외에게 대하는 것을 보고 속울음을 터뜨렸다는 이야기를 후에 듣게 되었습니다. 뭐가 부족해서, 내 동생이 저런 깜도 안 되는 농촌 할멈에게 저런 대우를 받아야 하지, 사회에서 공부도 그만큼 했으면 대우 받을 수 있는 지식인인데 농촌 구석에 들어가서 기(氣)도 못 피고 주눅 들어 사는 목회자의 면을 처음 목격하고 가슴앓이를 했다는 것을 후담으로 들었습니다. 이렇게 가슴 졸이며 평생 막내 동생을 지켜보았기에 그 길을 조카가 다시 가야한다는 것이 못내 견디기 어려워 제가 그런 속마음을 던진 것입니다. 누님의 동생 사랑은 해가 갈수록 더해 갑니다. 그런데, 나는 이 길을 가는 것이 운명 같습니다. 너무 힘들고 또 힘들지만 나는 목사 말고는 다른 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닌 것 같습니다. 이 길이 힘들고 어렵고 견디기 힘들고 힘들 수록 더 그렇습니다. 지난 고난주간, 교우들과 펜데믹 이후 정말, 특새 다운 특새를 하나님께 드리며 한 주간을 살았습니다. 이미 교회의 여타 사역에 눈감고 있는 특별한 부류들과 달리, 6일 동안 그래도 내가 은혜로 구원 받은 성도인데, 고난의 절기에 새벽을 깨우며 원색적인 복음의 복기를 위해 힘을 내려고 했던 지체들과 함께 6일을 걸었습니다. 직장에서, 경영터에서, 삶의 터전에서 또 분주한 삶의 내용들을 감당해야 하는 부담감 100%이지만, 신앙의 우선순위를 놓치지 않기 위해 불편한 말씀을 들으면서도 같이 보폭을 디뎌준 사랑하는 지체들과 6일을 달렸습니다. 이순(耳順)의 나이를 훨씬 넘긴 지금이라 체력적으로 정말로 부담이 되었지만 최선을 다한 안수 사역도 다시 시도했고, 엎드림의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이 사역은 동시에 위안부 어르신들과 일제의 강제징용이라는 고통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내 나라의 정권을 가진 자들에 의해 자행된 폭력으로 인해 그 아픔이 배가 된 어르신들을 위한 사역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준비하며 특새 3주 전부터 말씀 준비를 위해 서재를 떠나지 않고 집중했습니다. 담임목사의 이런 나름의 몸부림을 아는 지체들이 함께 힘을 내며 발맞추어 6일을 걸었습니다. 이 길을 함께 걸은 지체들이 감당해야 하는 삶의 내용은 세속적인 필드에서 결코 녹록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지난 6일 동안 함께 영적으로 호흡하며 달려온 지체들이 있어 행복합니다. 목회의 길을 가는 목사의 길이 고독하고 외로운 천로역정의 길인 것처럼, 세인의 공동체를 섬기는 교우들의 발걸음 역시 투쟁하는 천로역정의 길이기에 이 땅에서의 소풍이 만만치 않음을 저는 압니다. 그래서 혹시나 오글거린다고 하는 교우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오늘은 이렇게 제 마음을 내놓고 싶습니다. 난 이 길을 가는 여러분이 가장 자랑스럽습니다. 여러분과 함께 천로역정의 길을 걷게 되어 행복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나라의 영웅입니다. 주군께서 여러분을 강복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