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간, 서재를 뒤집어 놓았습니다. 작년 가을에 책 버리기를 또 한 번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번에는 전에 섬기던 교단과 연관되어 있는 책들을 함께 모아 버리기로 결심하고 실행했습니다. 나사렛 성결회로 가입한지 4년째가 되는 해이고, 교단 정체성에 대한 모호함을 일소하기 위해 개인적으로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진짜로 더 이상 미룰 일이 아님을 알고 버리기 실행에 나섰습니다. 서고를 정리하다보니 직전 교단에 관련된 서적과 저널, 심지어 흔적들이 세 박스가 나올 정도로 많다는 것을 알고 저도 스스로 놀랐습니다. ‘성결교회와 신학’이라는 책자가 수십 권이 넘는 것을 보며, 그랬구나, 내가 성결교회 목사였지 하는 소회가 다시금 밀려왔습니다. 교단 요람, 교역자 사진첩, 성결교회 헌법, 시행세칙, 예식서, 단행본, 직접 집필자로 나섰던 구역공과 및 사순절 묵상 자료, 그리고 소소하게 교단 기관지인 활천, 성결신문에 기고했던 자료들을 모아보니 제법 많아 쌓일 정도였습니다. 서고를 정리하는 목적이 운선순위였지만, 그럼에도 중간 중간 정리할 때도 차마 버리지 못했던 고향 교단에 대한 일체의 것들을 이번에 과감히 정리하여 버리는 박스 안에 자료들이 수북이 쌓인 것을 보며 옛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습니다. 인간은 추억을 먹고사는 존재임이 분명합니다. 저 또한 예외일 수 없습니다. 기독교대한성결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했고, 또 고향 교단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20여년 정도 성실하게 교단 목회자로 살아왔던 흔적들을 정리하면서 이런 저런 감동의 소용돌이가 제 마음에 휘몰아쳤습니다. 애증의 정서적인 찌꺼기들을 담아 일소한다는 마음으로 정리를 하면서 오래 전에 접했던 박경리 선생의 유고 시집 안에 담긴 글감이 문득 기억 안에서 복기 되었습니다. “마음이 욕망으로 일그러졌을 때/진실은 눈 멀고/해와 달이 없는 벌판/세상은 캄캄해질 것이다/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픈 욕망/무간지옥에 따로 있는가/권세와 명리와 재물을 쫒는 자/세상은 그래서 피비린내가 난다” (박경리, 『버리고 갈 것 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마로니에북스, 122) 소풍을 마치는 날, 그분 앞에서 피비린내 나는 인생 살고 왔다고 술회하고 싶지 않아 버리기를 줄곧 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이 했습니다. 이번에 꽤 많이 담아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일을 마치고 서재에 돌아와 앉아보니 아직도 버릴 것이 지천입니다. 그래서 박경리 선생이 이렇게 말했나 봅니다.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픈 욕망” 이러고도 목사로 살고 있습니다. (ㅎ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