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 전 즈음에 왼쪽 눈 밑이 불편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별 대수롭지 않게 여겨 그냥 지나쳤는데 주초에는 아프기까지 해서 약국을 찾아 통증을 설명하고 처방을 받아 약을 복용했는데 잠시 호전되는 것 같더니 주말에는 상태가 더 많이 악화되어 병원을 찾았습니다. “다래끼가 조금 심합니다. 5일치 약과 연고를 드릴 테니까 드시면 괜찮아 질 겁니다.” 의사는 진단을 내린 뒤에 제게 물었습니다. “약을 드셨나요?” “네, 약국에서 처방 받아 3일 정도 복용했습니다.” 듣자마자 의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약국에서 받은 약은 먹어도 안 납니다. 제가 처방해 드리는 약 복용하고 연고 바르세요.” 이렇게 의사가 처방해준 처방전을 갖고 인근 약국을 찾아 약과 연고를 구입했습니다. 약국을 나오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건 약국 약이 아닌가?” 의사가 한 말이 약국에 가기 전에 병원에 왔어야 한다는 의도로 한 말임을 저도 압니다. 하지만 의사가 툭 던진 말이 듣는 대상에 따라 대단히 모욕적으로 들릴 수 있다는 점에서 곱게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만에 하나, 약사가 그의 말을 들었다면 멱살잡이까지 할 수 있는 폄훼의 말이기 때문입니다. “말이든 글이든 언어는 상대를 전제한 행위다. 우리가 말을 하고 글을 쓰는 이유는 상대에게 들리고 읽히기 위해서다. 결국 언어는 나를 향하는 일이 아니라 상대를 향하는 일이다. 그러니 말을 하거나 글을 쓸 때 상대의 감수성을 배려해야 하는 예의가 있어야 한다.” 신지영 교수가 ‘언어의 높이뛰기’에서 갈파한 이 말이 떠올랐던 이유는 다래끼를 치료하러 갔다가 무심코 의사가 생각하지 않고 던진 한 마디를 듣고 나서 더 실감났기 때문이었습니다. 처음 간 안과였지만 다시 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 슬펐던 것은 그 불편한 소리를 내게 들려준 의사 가운에 새겨져 있는 그의 이름 때문이었습니다. 안과 전문의 〇찬양 사족 하나. 이번 주간, 다래끼 때문에 대단히 불편했는데 설상가상으로 목요일 새벽에는 편두통까지 공격하여 육체적으로 최악이었던 한 주간을 지냈습니다. 식탁 한 구석에 쌓여가는 약봉지를 보면서 연로하신 교우들을 위해 중보의 끈을 더 조여야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아프지만 않으면 나이듦은 근사한 일인데 조금은 유감스럽습니다. (ㅎ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