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16일 화요일 성서 일과 묵상 미갈인가? 다윗인가? 오늘의 성서 일과 시편 142편, 아모스 9:1-4, 사도행전 23:12-35, 시편 68:24-35, 사무엘하 6:16-23 꽃물 (말씀 새기기) 사무엘하 6:16 여호와의 궤가 다윗성으로 들어올 때에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다보다가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서 뛰놀며 춤추는 것을 보고 심중에 그를 업신여기니라 마중물 (말씀 묵상) 다윗과 미갈의 대비가 극명하다. 다윗이 춤출 정도로 기뻤고, 미갈은 그런 다윗을 업신여겼다. 히브리어 ‘바자’는 누군가를 얕보는 행위를 나타내는 단어다. 미갈이 다윗을 얕본 것은 단순히 다윗이 춤추는 행위가 천박해 보여서가 아닐 거다. 아버지 사울이 자기 남편에게 행한 사악한 일이 너무 많았지만, 한편으로 아버지 일가의 몰락이 떠오른 해와 같은 다윗에 비해 상대적으로 너무 초라하다는 박탈감에서 온 심리적 저항 때문이었으리라고 본다. 나름 이해가 되는 일이다. 그럼에도 영적으로 시사하는 교훈에 대해서는 냉정할 필요가 있다. 은혜로 진입한 어떤 이에 대해 내가 그 은혜로 진입하지 못한 것에 대한 상대적인 영적 박탈감이 엄습할 때, 가장 지혜로운 반응은 인정하고 은혜의 자리로 나 또한 진입하는 거다. 시기할 것을 시기해야 해야지 영적 승리를 시기해서야 되겠는가! 미갈의 패착은 은혜로 진입한 남편에 대해 축하하지 못한 악수(惡手)를 두었다는 점이다. 은혜받음은 시기의 대상이 아니라, 공유의 대상이다. 두레박 (질문) 혹시 한 줌의 재보다 못한 자존심 때문에 은혜의 길에 진입하지 못하는 악수를 두고 있지 않은가? 손 우물 (한 줄 기도) 하나님, 은혜를 사모하는 데에 있어서 주저하지 않게 하옵소서. 나비물 (말씀의 실천) 미갈이 아닌, 다윗의 길에 서게 하옵소서. 하늘바라기 (중보기도) 하나님, 김지안 집사의 병상에 함께 거하여 주옵소서. 임마누엘 하여 주옵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