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신앙은 경계인의 삶을 요청한다. 인간 감각의 범주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신비를 일상의 역사적 순간에서 포착하는 구성 방식, 그리고 과거 가르침을 현재 및 미래의 신앙 지침으로 승화하는 내용을 기본 요소로 포함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성서가 신자 인생의 근원적 기준과 토대라는 명제 자체에는 이견이 없더라도, 실제 적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혼돈과 논쟁은 비일비재한 현상이다. 결국 성서는 하나님에 관한 이야기로부터 시작하면서도, 그 전개 과정에 다양한 관점이 내포되며 결말을 단정할 수 없는 미지의 양면성을 내포하는 셈이다. 저자는 성서와 인류 실존이 지닌 그와 같은 특성을 두 가지 양태로 파악하면서, 독자들에게 새로운 차원의 성서 이해를 개방한다. 먼저 저자는 특정 시점에 고정될 수 없는 성서 독해의 입체성을 잔잔하면서도 진지한 목소리로 낭송하면서, 성서의 형식을 자유롭게 분석한다. 잘 알려진 대로 성서는 고대 근동이라는 다소 모호한 시공을 배경으로 탄생한 과거 문서이다. 현대사회가 고고학이나 성서비평학의 힘을 빌려 고도화된 지성의 작업을 적용하더라도, 성서 기록에 대한 해석의 지평은 근본 한계를 지니며 이는 부정확한 설명과 오류의 배경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이런 구조적 모순은 성서 해석에 기계적 제한을 강요하지 않는 자율과 진보의 근거로 기능하기도 한다. 성경 구절에 대한 명확한 답이 부재한 사실은 시대와 문화 변화에 따른 본문의 창조적 재구성 작업에 동기를 부여하는 까닭이다. 사실 성서 줄거리가 모든 이에게 획일적이고 보편적 대상으로 인식된다면, 수많은 경험과 환경을 지닌 독자들은 성서로부터 활력과 생기의 근거를 확보하기 어렵다. 전체 민낯이 공개되지 않은 성서의 신비가 오히려 상상력과 창의력의 근거로 자리매김하면서, 모두에게 서로 다른 얼굴로 다가가는 해석의 잠재력이 비로소 균형 잡힌 영적 교두보를 구성한다. 이런 측면에서 글쓴이는 성서 해석 과정에 나타나는 초월적 영감과 문학적 역동성을 수용하는 방식을 통해 사사기를 고대에 묶어두지 않는 지혜를 발휘한다. 즉 분명 과거 어느 순간에 일어난 특정 집단의 사건을 마치 지금 살아가는 현대인의 일상인 듯, 시공의 간격을 의식할 필요 없는 편안함으로 재단하며 하나님과 독자 사이의 대화 자리로 본문을 안착시킨다. 이 절차를 거치면서 저자는 독자가 사사기를 자신과 무관한 일로 여기지 않도록 자연스러운 경청과 공감으로 이끄는 한편, 앞으로 당면할 미래지향적 과제로 사고의 너비를 노련하게 확장한다. 이는 짧은 기간과 단순한 방식으로 절대 숙련할 수 없는 역량이다. 여러 자료의 인용과 참고가 다반사로 일어나는 저술 세계에서, 산만하게 분산된 정보를 창의적으로 녹이는 신기는 어지간한 독서와 성찰로 도달할 수 없는 고수의 영역에 속하는 탓이다. 겉으로 드러난 작문의 훌륭함에 더하여 사사기를 향한 내용 해설과 신학적 촌평은 성서가 지닌 양면성을 극대화한 저자의 두 번째 재능을 상징한다. 인쇄된 사사기 본문은 사실 누구에게나 똑같은 문서일 뿐이다. 따라서 성서를 문자의 조합으로만 인식하는 독자라면, 내용의 차이 가능성 자체를 무의미한 일로 간주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제한적 측면을 전혀 다른 양상으로 상승시키는 역할이 바로 학술적 연구와 선지자적 선포가 합체하는 지점이다. 지은이는 이 점을 깊이 인지한 후 수많은 외부 정보를 사사기와 결합한 후, 현대사회를 위한 선언과 교회를 위한 외침으로 전환한다. 이런 특성으로 인해 본 저술의 집필 의도가 과거 본문의 분석에만 머물지 않은 사실이 명약관화하게 드러난다. 마치 투명한 거울처럼, 저자의 손길을 거친 사사기의 혼란과 무질서는 오늘을 살아가는 21세기 그리스도인의 실존을 반영하고 그에 대한 신학 해설은 타인과 자아를 새로운 윤리 관계로 재정립한다. 그리고 저자는 거기에 자기 객관화의 냉정한 방식을 더하여 독자들에게 메시지의 완성을 위한 공동 책임의 필요성을 설파한다. 글이 후반부로 향할수록 저자와 독자가 먼저 일체를 경험하며, 종국에는 사사기 속 주인공들이 그들 안에 내재화하는 단계까지 발달하는 결과는 이와 같은 저자의 혜안에 기인한다. 글을 읽은 사람은 사사기 속 등장인물을 향해 거친 비난의 언사를 내뱉을지 모른다. 그러나 실상 그들의 부족하고 연약한 불신앙 그리고 세속화와 다원주의에 물든 자화상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 경험과 이성을 토대로 인과론적 기재를 활용하는 현대 문명과 과학기술은 인간 사회에 많은 변화를 일으킨 원동력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을 부정하고 인류의 존재 목적을 상실하도록 유혹하는 현대판 우상이기 때문이다. 굳이 별도 해명을 첨가하지 않더라도, 가장 지혜로운 지성적 세계관이 오히려 사회 혼란의 근본 원인으로 고착된 반전은 매우 익숙한 그림이다. 따라서 하나님을 의도적으로 배제한 인간의 오만이 인류 파괴와 직결될 거라는 선지자적 전망에 긍정하는 현대인이라면, 저자의 논리 전개를 순순히 뒤따르며 자연스럽게 그의 결론에 동의할 것이라는 명제 역시 자명하다. 아마 저자는 목회와 삶을 구분하지 않는 인생 여정을 통해 이런 현실을 날카롭게 조망했을 것이다. 누구나 비슷한 생활 환경에 처하지만, 그 안에 담긴 인생의 비밀을 눈치챌 안목은 현대 사조를 다채롭게 아우르는 훈련이 평소에 충분히 응축된 이에게만 허락된 영역이다. 저자의 필력을 흔한 현학적 문학으로 치부하여 무시할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생의 본질적 혁신을 추동할 성령의 현존으로 받아들일지에 관한 선택은 독자에게 귀속한다. 사소한 결정으로 비칠지 모르나, 그 종착지는 큰 파장을 일으키며 성도와 교회의 생존을 확정하는 필요충분조건으로 귀결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