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지은이 | M. 스캇 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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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출판사 | 률리시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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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일 | 2021-10-26 17:35: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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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M 논문은 귀신들림(Demon possession)과 정신분열증(Schizophrenia)에 대한 상관관계 연구였다. 두 영역은 분명히 다른 차원의 현상들이지만 상관관계(inter-relationship)가 있음을 밝힌 논문이다. 논문을 쓰면서 연대 정신과에 있는 선생님들의 도움을 적지 않게 받았다. 연신원에서 석사학위 학생들에게 정신과 세미나에 참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서였다. 목회만 했던 목사에게 주어진 정신과 수업과 세미나는 논문 작성에 일조했다. 이때 알게 된 전문가가 본 서평의 저자인 M. 스캇 펙이다. 그리고 그때 만났던 걸작이 ‘people of the lie’(거짓의 사람들로 번역되어 있음)다. 이 책에서 펙은 이단 종파에서 버젓이 행해지는 개인의 장기자랑으로 이루어지는 쇼맨십이 동원된 축사가 아닌 전문성을 갖고 있는 전문가들이 이룬 팀 사역으로만 온전히 전인적 치유가 축사라고 분명히 못 박는다. “축사란 무엇보다도 내가 알고 있는 한 언제나 세 명 이상의 팀 단위로 행해진다. 어떤 의미에서 팀이 ‘단결하여’ 환자와 맞서는 것이다. 한 사람이 한 사람을 ‘대항하는’ 전통적인 치료와는 달리 축사에서는 치료자의 수가 복수가 된다.” (스캇 펙, “거짓의 사람들”, 윤종석 역, 두란노, 1997,p,278.)
필자도 전적으로 동의했다. 해서 1997년에 완성한 논문에서 필자 또한 귀신들림과 정신분열증 환자의 공통분모를 추적하여 긴밀한 상관관계가 있음을 인지하고 두 현상에 대한 치료방법론으로 팀 미니스트리(team-ministry) 방법론으로 규정했고 정신과 의사, 심리학적인 상담학자, 그리고 영적인 측면을 치료할 목회자로 구성된 팀 조직을 제안했다. 이 과정이 있어야 귀신들림(Demon possession)과 정신분열증(Schizophrenia) 환자의 효과적 치료를 기대할 수 있음을 논문을 통해 기고했고, 전혀 예상지 않았던 전국신학대학협의회의 실천신학 분야에서는 시상하는 최우수논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통상적으로 정신과 전문의들은 목회자들이 말하는 영적인 이해를 무시하려는 지적 교만이 충만하다. 반면, 목회자들은 정신과 전문의들이 전문성을 갖고 치료하는 psychiatry 영역도 무조건 영적인 것으로 취급하는 무지를 보인다. 이런 차원에서 팀 사역은 요원해 보이지만 논문을 통해 이것을 극복해보려고 했다. 스캇 펙은 필자에게 이 노력을 하게 해준 선생님이었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은 고전이다. 출판된 지가 이미 오래된 고전의 목록에 들어가는 수작이다. 이 책을 필자가 주목한 이유는 저자가 정신과전문의로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정신치료의 탁월함을 갖고 있는 전문가이지만, 그는 영적 영역에 대한 필드를 인정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본서의 제 3부에서 ‘성장과 종교’를 다루고 있는데 정신의학자답게 정신과적인 접근으로 종교를 다루지 않는다는 것만도 괄목할 만한데 한 발 더 나아가 종교와 과학의 관계를 아기와 목욕물의 비유를 통해 설명한 대목은 압권이다.
저자는 과학 자체가 하나의 종교라고 진단한다.(p,323)
상당수의 무신론적인 과학자들이 펙에게 난도질하며 공격하고 비난할 내용이다. 그렇지만 저자는 그들이 자신을 공격하는 단서들이 곧 아기와 목욕물을 함께 버리기 십상인 이유로 단정한다.
“나는 영적인 성장을 위해 지금까지 배워온 것을 회의하는 과학적 태도를 길러야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해왔다.”(p,324.)
저자가 이렇게 총 맞을 짓을 한 배후에는 그만이 갖고 있는 철학이 있기 때문이다.
“과학 자체는 가끔 문화의 우상이 됨으로, 우리는 이들에 대하여 마찬가지로 회의적이어야 한다. (중략) 아는 게 많고 회의적인 사람들이 신앙의 방향으로 성장하게 된다. 회의하기 이전의 하나님은 회의 이후의 하나님과는 전혀 다르다.”(pp,324-325)
과학을 신흥 우상의 대상으로, 종교를 하등의 질 나쁜 행위로 취급하려는 정신과학자들에게 던지는 선전포고와도 같은 저자의 이런 도발의 자신감은 도대체 어디에 기인하고 있는 것일까? 은총이다. 이 책의 마지막 4부가 은총에 대한 펙의 개진이다. 읽으면서 목사인 나는 의사에게 은혜(?)를 받았다. 2부에서 ‘사랑’에 대해 저자가 진지하게 펼쳐나간 임상 보고는 목사인 나 역시 현장에서 사랑이라는 개념의 이해 그리고 실천적인 행동에 대해 앞으로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를 알려준 통찰로 다가왔다.
“사랑 받는 것이 목적이면 그걸 성취하지 못할 것이다. 확실히 사랑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자기 자신이 사랑받을 수 있는 가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삶의 첫 번째 목적이 수동적으로 사랑받는 것이라면 당신은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없는 사람이다.”(p,145)
나는 이 글을 만나면서 마치 황금률을 만나는 듯 했다. 나는 저자의 이 일침을 이렇게 승화했다.
“사랑을 받을 만한 가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은 영적 성장으로 가능하다.”
저자가 이 영적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것의 한 일면으로 제시한 것이 은총이다. 하지만 조금 조심하자.
“지나치게 회의적이고 과학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우리는 ‘의식 세계 밖에 존재하지만 인간의 영적 성장을 돕는’ 이 강력한 힘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 이 힘은 만져볼 수도, 저울에 달아볼 수도 없다. 그러나 분명히 존재한다. 전통적인 자연 과학의 개념과는 맞지 않는다고 터널 속에 갇힌 듯한 편협한 시야로 바라보며 무시해야 할까? 그것은 대단히 위험하다. 은총이라는 현상을 우리의 개념 체계 안에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우주와 그 우주 내의 인간의 위치, 이에 따른 인류 자체의 본성을 완전히 이해하기란 어려울 것이다,”(p,375)
그렇다, 조심해야 할 이유는 은총은 과학적 이론처럼 공식을 풀어 해결한 결과물이기 아니지만 여전히, 늘, 항상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은총이란 이렇게 이론적인 설명으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더 신비롭고 환상적인 이유에 대해 저자는 기가 막힌 성찰로 이렇게 기술했다.
“은총은 획득되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이 전혀 다른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우리가 은총에게로 가는 것이 아니라 은총이 우리에게 오는 것이다.”(p,439)
스캇 펙은 정신의학자이다. 그런 그가 은총을 이렇게 표현하다니! 목사를 소름을 끼치게 하는 그의 발언이 왜 우리가 건강한 영적 성장이 은총이었나를 생각하게 해주는 지렛대 역할을 해주기에 충분했다. 은총은 ‘incarnated’ 의 개념으로만 해석이 가능하다. 저자는 책을 끝내면서 지난 1년 10개월 여 동안 펜데믹이라는 공포 속에 말 그대로 견뎌온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지 않은 위로의 메시지를 남긴다.
“영적 성장의 여행은 용기와 주체성, 생각과 행동에서의 독립성을 요구한다. 예언자의 말이나 은총의 조력이 유용하겠지만 그 길은 반드시 혼자 가야한다, 어떤 스승도 당신을 거기에 데려다 줄 수 없다.”(p,444)
위드 코로나 시대로의 진입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기실, 두려운 게 사실이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기에 말이다. 어떤 것이 펼쳐질지, 어떤 시행착오가 범해질지 나도 모르고 당신도 모른다, 그런데 가려고 한다. 저자가 책의 제목을 이렇게 정했다.
“The road less traveled” 정말 그렇다. ‘여행해 본 적이 없는 길’ 그래서 두렵다. 하지만 저자가 말한 이 말이 성경 말씀처럼 들려 아멘하고 그 길을 걸으려고 한다,
“은총의 실재는 인간이 우주 중심에 있음을 시사한다,”(p,446)
이 땅에 당신의 피조물을 만들어놓으신 창세 이후 지금까지 주군은 은총을 그 피조물에게 주셨다, 그러니 엄격한 의미로 말한다면 그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은 길, 그 누구도 안내하지 않은 길이지만 그 길은 성육신하신 그분이 먼저 가신 길이기에 나도 갈 수 있다.
주님은 내 삶의 주어(subject)이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