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 사역

제목2022년 6월 5일 (첫 번째 주) 지역 셀 사역2024-04-23 17:31
작성자 Level 10


얼음 깨기 (WELCOME)
생활을 하면서 틱히 네가 예민해 하는 것이 있다면?  

 
경배와 찬양 (WORSHOP)
● 찬송가 182장 – 강물같이 흐르는 기쁨 
●  복음성가 – 주님을 모르던 세월 
  

 
말씀읽기와 적용 (WORD)
● 제목 : 성령의 일하심에 민감하자.
● 본문 : 요한복음 14:16-17
1) 주께서 말씀하신 보혜사 성령 하나님의 역할은 무엇인가?
① 요한복음 14:16-17절을 중심으로 말해 보자.
⓶ 요한복음 14:26-27절을 중심으로 말해 보자.   

2) 사사 기드온이 결정적으로 실패한 사사라고 평가 받는 이유를 본문 레마와 연관하여 말해 보자.
⓵ 사사 기드온의 결정적인 패착의 원인은? (설교를 통하여)
⓶ 레마를 중심으로  

3) 적용하기
① 성령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해 민감하기 위해 내가 해야 할 일을 나누어 보자.
(하나의 실례: 렉치오, 메디타티오, 오라티오, 콘템플라티오)
② 현장에서 해야 하는 영적 민감함  

 
사역하기 (WORK)
이번 주간 사역

1) 주일 대면 예배 참여하지 않은 셀 지체 파악 후 심방하기
2) 피선교지 중보하기
3) 셀 지체들의 기도 제목 나누기 
4) 교회 대청소 솔선수범하여 참여하기 독려



셀 사역

※ 찬양하기 : 찬송가 부르기
※ 얼음 깨기 나누기
※ 찬양하기 : 복음성가 부르기
※ 예배기도 : 맡은 이
※ 말씀 증거와 문제 내용 나누기
※ 적용하기
※ 기도제목 중보하기 - 2022년 피선교지 중보
※ 헌금 봉헌
※ 헌금 기도: 셀 리더
※ 피선교지 중보하기: 다 같이
※ 폐회 : 주기도문
※ 교제하기
  

 
설교요약 (SUMMARY)
2022년 6월 5일 주일 오전 예배 설교 (성령강림주일 설교)
본문: 요한복음 14:16-17        제목: 성령의 일하심에 민감 하자.

본문 요한복음 14:17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세상’이라고 번역한 헬라어 단어 ‘코스모스’는 지극히 세속적인 영역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요한이 소개한 예수님의 일성이 크게 와 닿는 이유는 ‘코스모스’가 오늘 우리들이 발을 딛고 있는 현장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야 할 영역으로 더 강력하게 확장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이 기막히게 적용됩니다. 진리의 영을 받지 않는 세상, 진리의 영을 보지도 못하는 시대, 알지도 못하는 시대라고 주님은 강조하셨습니다. 허나 반전이 있습니다. 당신과 나는 진리의 영을 안다고 하신 것입니다. 진리의 영은 당신과 나와 함께 거하신다고 했습니다. 특권입니다. 오직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시는 유일한 특권입니다.

본문 16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주님은 아버지께 간구하여 나를 대신하여 사역을 감당할 보혜사(파라클레토스)를 보내주도록 할 것임을 밝히셨습니다. 이 보혜사의 정체를 이어지는 요한복음 14:26절은 이렇게 밝힙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주님이 보내실 보혜사는 제 삼위의 하나님이신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결론적으로 요약한다면 성령 하나님을 보게 되는 특권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지게 될 것이라고 주님이 약속하셨습니다. 주목할 것은 이 약속과 더불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질 또 다른 은혜가 있다는 점입니다,

이 구절에서 또 하나 발견해야 하는 감동의 은혜는 이것입니다. 다시 본문 17절을 읽을 텐데 이번에는 표준 새 번역 성경으로 읽어 드리겠습니다. “그는 진리의 영이시다. 세상은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므로, 그를 맞아들일 수가 없다.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안다. 그것은, 그가 너희와 함께 계시고, 또 너희 안에 계실 것이기 때문이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메네이-현재 시제)는 은혜를 말씀드렸습니다. 헌데 17절 마지막 단어는 은혜를 배나 선사합니다. ‘계실 것이다.’ (에스타이-미래 시제)가 주시는 감동입니다. 보혜사 성령 하나님의 일하심은 성경 당시의 그리스도인에게만 주어진 특권과 은혜가 아닙니다. 보혜사 성령 하나님의 일하심이라는 클라이맥스는 2000년이라는 시간과 이스라엘에서 대한민국이라는 공간을 뛰어넘어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적용되고 있다는 은혜입니다. 오늘 성령강림주일, 우리 세인 지체들이 받아야 하는 레마를 이렇게 정리해 보겠습니다. 

※ 나와 당신을 진리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지금도 일하시는 성령의 일하심을 민감하게 체휼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사기 6:34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여호와의 영이 기드온에게 임하시니 기드온이 나팔을 불매 아비에셀이 그의 뒤를 따라 부름을 받으니라” 기드온이 우여곡절 끝에 미디안의 압제에 시달리고 있는 이스라엘을 위하여 사사로 부름 받고 출정을 합니다. 기드온이 싸워야 하는 적군은 만만치 않은 미디안, 아말렉이라는 연합군 135,000의 대군이었습니다. 이들과 맞설 기드온의 군사는 300명뿐입니다. 무려 450:1의 싸움을 해야 했습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전쟁의 결론이 어떻게 나왔습니까? 1의 승리였습니다. 이걸 믿으라는 것이냐고 반문해도 됩니다. 이론적으로 군사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성경이 1의 승리를 적시했다는 점입니다.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앞서 소개한 6:34절이 그 해답입니다. “여호와의 영이 기드온에게 임하시니” ‘임하시니’로 번역된 히브리어 ‘라바쉬’ 의 원 뜻은 ‘옷을 입는다.’는 의미의 단어입니다. 직역하면 이렇게 번역할 수 있습니다. “기드온의 전 인격이 성령으로 옷 입게 되었다.” 이런 은혜를 경험하고 받은 자가 기드온입니다. 하지만 사사 중에 기드온과 삼손을 최악의 사사라고 역사가들이 평가하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저 역시 이번에 출간하게 될 ‘신-사사시대에 사사기 읽기(가제)’에서 밝히겠지만 기드온은 정말 최악의 사람이었던 것에 동의합니다. 사사기 8:24-27절을 보면 역사가는 대단히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기드온의 말년에 첨가합니다.“기드온이 또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요청할 일이 있으니 너희는 각기 탈취한 귀고리를 내게 줄지니라 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이스마엘 사람들이므로 금귀고리가 있었음이라 무리가 대답하되 우리가 즐거이 드리리이다 하고 겉옷을 펴고 각기 탈취한 귀고리를 그 가운데에 던지니 기드온이 요청한 금귀고리의 무게가 금 천칠백 세겔이요 그 외에 또 초승달 장식들과 패물과 미디안 왕들이 입었던 자색 의복과 또 그 외에 그들의 낙타 목에 둘렀던 사슬이 있었더라” 전쟁에서 승리한 기드온은 이후 자기 고향인 오브라고 돌아옵니다. 수많은 이스라엘 공동체가 미디안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기드온을 왕으로 옹립하려고 하였지만 표면적으로 거부하자 뜻을 이루지 못합니다. 기드온이 왕이 되는 것을 거절했기에 기드온이 대단히 겸손한 사람이라고 착각하게 하는데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기드온은 세속적 욕심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전쟁 승리의 수훈갑이었던 기드온은 백성들에게 금귀고리를 요구합니다. 나에게 바치라는 것입니다. 아마도 압박 수준의 기드온의 요청을 거부하기 힘들었던 백성들이었기에 금귀고리를 기드온에게 바치자 기드온은 모아진 금으로 대단히 실망스런 일을 행합니다. 사사기 8:27절은 이렇게 보고합니다. “기드온이 그 금으로 에봇 하나를 만들어 자기의 성읍 오브라에 두었더니 온 이스라엘이 그것을 음란하게 위하므로 그것이 기드온과 그의 집에 올무가 되니라” 기드온은 백성들이 바친 금귀고리를 가지고 금 에봇을 만들었습니다. 동시에 그 금 에봇을 가지고 바알산당의 근거지였던 오브라로 가지고 가서 산당에 두었는데 그것이 또 다른 우상의 대상이 되었다고 고발합니다. 제사장들이 입는 의복을 금으로 만들었던 기드온은 가장 추악한 말년 인생을 보내며 이스라엘에게는 올무를 남게 한 장본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저는 오늘 성령강림주일 설교를 통해 대단히 중요한 교훈을 전하고 싶습니다. 가뜩이나 자격 없었던 기드온을 그런대로 만들어 쓰셨던 하나님은 그에게 성령의 옷을 입혀주셨습니다. 이로 인하여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승리자가 되었던 자가 기드온이었습니다. 그러나 대단히 실망스럽고 유감천만인 것은 하나님이 입혀주신 성령의 옷을 벗어버리고 세속적 영광의 모드인 금 에봇을 입어버렸다는 점입니다. 오늘의 언어로 바꾸어 해석하겠습니다. 기드온의 가장 결정적인 패착은 성령이 주신 은혜에 대해 민감하지 않았다는 데에 있습니다.

오늘 본문 요한복음 14:16-17절이 주는 민감함이 있습니다. 성령님이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시는 최대의 은혜는 진리 안에서 이탈하지 않게 하시는 일하심입니다. 이 일하심에 대해 우리는 민감해야 합니다. 나도 민감해야 하지만 나의 자녀, 손들을 위해서도 민감해야 합니다. 어찌 보면 내 사랑하는 아들, 딸 그리고 손자 손녀들은 금 에봇의 시대에 방치되어 있는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진리의 영이신 성령 하나님의 일하심은 지금도 성경시대와 똑같이 유효합니다. 문제는 민감한가, 혹은 둔감한가의 치열함입니다. 재 강조하지만 성령 하나님은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내가 진리를 깨닫고 살아간다면 성령 하나님의 일하심에 민감한 그리스도인으로 보폭을 맞추어 걷고 있는 것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둔감한 그리스도인이거나 조금 더 심각하게 그런 자는 성령 하나님의 일하심을 믿지 않는, 결국 성령 하나님과는 전혀 관계없는 무늬만 그리스도일 가능성이 농후한 자입니다.

저는 이제 설교를 맺으려고 합니다. 지난주부터 2년 6개월 동안 중단했던 탁구 운동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다시 라켓을 잡고 처음 탁구대에 섰는데 얼마나 낯설었는지 모릅니다. 제가 사용하는 라켓이 팬 홀더이기에 쉐이크 핸드 라켓보다 조금 더 공에 대한 반응이 예민합니다. 2년 6개월 만에 상대방과 랠리를 주고받는데 얼마나 서툴렀는지 모릅니다. 그도 그럴 것이 2년 6개월 동안 구장에서 떠나 있었으니 왜 아니 그렇겠습니까? 하지만 저도 스스로 놀란 것이 있었습니다. 2년 6개월을 쉬었기에 다시 감각을 찾는데 한 참 걸릴 것 같은 경기 감각이 첫 날 운동을 하다가 돌아왔다는 점이었습니다. 동아리 회원들이 기본기가 워낙 잘 잡혀 있기 때문이라고 립 서비스를 해주었지만 제 판단은 조금 달랐습니다. 다시 2년 6개월 만에 탁구대 앞에 서서 경기에 임할 때 운동 감각을 다시 일으키기 위해 집중력을 배나 더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집중력은 민감함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지금 신-사사시대를 방불케 하는 영적 랜덤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 펼쳐질 세상은 호모-데우스의 극단적인 영적 피폐의 시대입니다. 그러기에 진리로 이끄시는 성령 하나님의 일하심에 민감하지 않으면 백전백패할 수밖에 없는 아슬아슬한 시대입니다. 정말로 다행인 것은 성경이 우리에게 확신시켜주고 있는 것이 있다는 점입니다. 무엇을? 성령 하나님께서 진리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지금도 당신의 백성을 위해 일하신다는 은혜가 오늘도 현재진행 중이라는 점입니다.

오늘은 2022년 성령강림주일입니다. 사랑하는 세인 지체 여러분! 나와 당신을 진리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지금도 일하시는 성령의 일하심을 민감하게 체휼할 수 있는 교우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은 선포합니다. 요한복음 14:26-27절입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