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받아들이면 사람의 삶의 폭이 훨씬 더 커집니다. 죽음 앞에서 두려워한다면 지금까지의 삶이 소홀했던 것입니다.”
최인호님의 유고 신앙고백집인 ‘인생’에 담긴 승려 법정의 어록입니다. 침샘암으로 세상을 떠난 가톨릭 신자였던 최인호님이 투병 중 폐암으로 별세한 승려 법정의 이 가르침을 남긴 이유는 엄청난 위로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설교 예화 노트에 옮겨 담다가 문득 생각에 잠겨 본다. 나는 지금까지의 삶이 소홀했던 삶이었는지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을 괜찮은 삶이었는지를. 경건해 지는 주일 예비일 밤이다.
“인간의 정신 속에서 침묵은 숨은 신(Deus Absconditus)에 관한 앎이다.”
독일의 글 쓰는 의사인 막스 피카르트가 그의 책 ‘침묵의 세계’에서 말한 갈파이다. 얼마 전, 개인적으로 참 아끼고 마음으로 사랑하는 지체에게 마음에 담긴 사랑의 언어를 전하기 위해 에둘러 전해준 가슴에 담은 나의 금언이었다. 되새김질할수록 심령을 울리는 가르침이다.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은 세태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침묵이 ‘숨은 신에 대한 앎’이기에 도리어 침묵을 더 사랑하기로 했다.
주여, 침묵을 사랑하는 지혜를 더 주소서.
“당신이 만일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다면 그것은 이미 하나님이 아니다.”
기가 막힌 통찰이다. 알리스터 맥그래스 박사가 쓴 ‘삶을 위한 신학’에서 소개한 어거스틴의 어록이다. 하나님을 나의 이성과 생각으로 해석하려는 건방짐에서 벗어나기를 저는 기도해 본다. 그리고 도리어 이해가 되지 않는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심에 최고의 경배를 드려본다. 나는 이사야 55:8-9절 말씀이 참 좋다.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글을 쓰는 지금 이 시간, 턴테이블에서 노찾사 2집에 실려 있는 안치환씨의 ‘광야에서’가 서재에 가득 울린다. 이상한 경건함이 충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