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준절 기간을 보내며
그리스도의 은혜를 묵상함과 동시에
마치 그리스도와 같이 살아간 그리스도의 사람들의 삶을 함께 묵상해 보았습니다.
삶을 묵상하다보니 자연스레 두 명의 그리스도교 윤리학자의 기도문을 깊이 묵상해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먼저 우리에게 잘 알려져있는 디트리히 본 회퍼의 '옥중 서간' 중 하나인 "나는 누구인가?"라는 기도문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그들이 종종 말하기를
나는 마치 감방에서 걸어 나올 때
마치 지주가 자기 저택에서 나오듯
침착하고, 쾌활하고, 당당하다고 한다.
나는 누구인가? 그들이 종종 말하기를
나는 간수에게 말을 건 넬 때
마치 명령하는 권한이 있는듯
자유롭고, 친근하고, 분명하다고 한다.
나는 누구인가? 그들이 또한 말하기를
나는 불행한 날들을 견디면서
마치 승리하는데 익숙한듯
평온하고, 미소 지으며, 당당하다고 한다.
그러면 나는 정말 다른 이들이 말하는 것처럼 그런 존재인가?
새장에 갇힌 새처럼,
불안하고 뭔가를 갈망하며 병든,
손들이 내 목을 조르고 있는 듯 숨가뿐,
빛깔과 꽃들과 새 소리에 굶주린,
친절한 말과 이웃에 목마른,
압제와 사소한 모욕에 분노로 치를 떠는,
위대한 사건들을 간절히 고대하는,
무한히 멀리있는 친구들로 인해 힘없이 슬퍼하는,
기도하고, 생각하고, 만드는데 지치고 허무해진,
무기력하게 그 모든 것과 이별할 채비를 갖춘 그런 존재?
나는 누구인가? 이것인가, 저것인가?
오늘은 이 사람이고, 내일은 저 사람인가?
나는 동시에 둘 다인가?
타인 앞에서는 위선자,
내 앞에서는 한심스러울 만큼 슬픔에 잠긴 악골인가?
아니면 이미 성취된 승리로부터 혼돈 가운데로 도망치는,
내 속에 여전히 살아있는 패잔병 같은 그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그들은 나를 조롱하고 이 고독한 질문을 비웃는다.
내가 누구인지,
오 하나님 당신은 아시나이다.
내가 당신의 것인 줄을.
다음으로 묵상한 기도문은 미국의 저명한 윤리학자로 유니온 신학대학교의 교수로 재임했던 '라인홀드 니버'의 기도문 이였습니다.
하나님,
우리가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은
우리가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평온한 마음을 주옵소서.
우리가 변화시켜야 하는 것들은
우리가 그것을 바꿀 수 있도록
용기를 주옵소서.
그리고 우리가
이 둘의 차이를 분별할 수 있도록
지혜를 주옵소서.
내일을 위해 염려하지 않고
주어진 매순간을 누리게 하옵시며,
고난을 평화를 향해 반드시 거쳐야하는 여정으로 보게 하소서.
죄악된 세상을 저의 시각으로 보지 않고,
주님 행하셨던 것처럼 진상을 분명히 알아
주님처럼 살게 하소서.
오직 주님 뜻에 굴복하오니,
세상을 아름답게 하실 주님을 믿게 하옵소서.
저로 하여금 이생에서기쁨으로 살게 하옵시고,
영원한 세상에서 당신과 함께 할 때는
더 큰 기쁨이 있게 하소서.
너무나도 유명한 두 가지의 기도문이 유독 이번 한 주간 깊은 울림을 주었던 이유는 사실 '용기'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 자신을 칭하거나 분류하기는 하지만 정작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삶의 현장에 얼마나 진실하게 임했는지 스스로 의문을 던져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나는 얼마나 그리스도와 사람을 위한 삶을 살아왔는지 말입니다.
고민하던 중에 한 줄기 빛과 같은 기도문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우리의 주 되시는 독생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피비린내 나는 '겟세마네의 기도'였습니다.
마태복음 26장 39절에서 42절 까지의 말씀입니다.
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40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4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 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42 다시 두 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고
그 즉시 모든 고민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존전 앞에 나아와 무릎을 꿇고, 용기를 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의 삶을 동경은 하였으나 동일한 삶은 구하지 않았던 구차한 제 모습을 바라보며,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지 않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와 그들의 삶 뒤에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과 기도라는 철저한 자기부정이 있었음이 저와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위안과 힘과 도전이 되지 않았나 깊이 묵상했던 귀한 한 주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