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5일 금요일 여행 3일차 이렇게 터키의 넷째 날은 시작되었다. 그래도 아침 조식은 저녁 식사보다는 눈길 가는 것이 많아 두둑이 배를 채웠다. 하루의 강행군을 버티기 위해. 오늘 일정의 메인은 파묵깔레 탐방이다. 성경상의 지명으로는 파묵깔레는 등장하지 않지만 인근 주변 지명들이 등장한다. 히에라볼리와 라오디게아이다. 안탈리아에서 라오디게아로 가는 길은 약 3시간의 여정이다. 그 중 오전 일정은 길목에 있는 골로새 유적 탐방 계획이 세워져 있어 순례 팀은 골로새 유적 터로 이동했다. 오늘의 지명인 데니질리와 호나즈 사이에 있는 성서 상의 이름인 골로새에 도착했을 때의 그 황망함이란 표현하기가 쉽지 않았다. 비시디아 안디옥보다도 더 낡은 이정표 하나만 횡 하니 놓여 있는 골로새는 충격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골로새 출신의 에바브라에 의해서 세워진 것으로 추측되는 골로새 교회는 당시 심각한 이단 사상이었던 영지주의 거짓 교사들과 유대 율법주의자들의 사상과 천사 숭배자들과 금욕주의자들로 인해적지 않은 안팎의 공격들로 심각한 영적 혼돈이 있었던 교회였음을 성경이 보고한다. 바울은 이런 공격을 방어하기 위한 적절한 메시지를 에바브라에게 써서 주었고 그는 이 편지를 통해 골로새 교회의 영적인 무질서를 올곧게 잡아 나가려고 노력했다. 아마도 바울의 진정성이 있는 교훈을 잘 받들었다면 골로새 교회는 더 진일보 한 귀한 교회가 되었을 것이 자명하다. 허나 이런 믿음의 기초와 고난을 통해 주어지는 귀한 은혜가 로마의 기독교 공인 이후부터 사라지기 시작했다. 소아시아에 세워진 모든 교회가 그렇지만 고난을 기피하는 교회는 그 때부터 교회일 수 없었다.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와 성령의 일하심이 떠났기 때문이다. 이런 아쉬움 때문에 그런지 개인적으로 나는 골로새 교회가 바울의 가르침대로 진화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토로함을 골로새서 1:24절을 묵상할 때마다 갖는다.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골로새 교회는 이정표 이외에 돌 흔적도 지금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관리가 안 되어 녹슬어 있는 이정표와 그 이정표 위의 텔(히브리어로 언덕을 의미하는 단어) 위로 올라가면 무성하게 펼쳐진 엉겅퀴들이 지천에 깔려 있고 도굴꾼들이 혹시나 모를 유적들을 발견하기 위해 여기저기 파헤쳐 놓은 흔적들만이 오늘 골로새의 무상함을 보여 준다.
그림 20) 골로새 유적지임을 알려주는 녹슨 이정표 골로새 교회 흔적의 아픔을 뒤로 한 채, 이제 순례 팀은 라오디게아로 이동했다. 성서의 이름으로는 라오디게아이지만 오늘 터키의 지명으로는 파묵깔레로 더 유명한 지역인 라오디게아는 히에라볼리 즉 빌립 사도가 순교한 지역과 불과 8km 지역에 위치해 있기에 순례 팀은 라오디게아 유적지를 먼저 순례하고 이어 히에라볼리에 있는 빌립 사도의 흔적과 더불어 여러 유적들을 을 본 뒤, 유명한 노천 온천이 흐르고 있는 유명한 파묵깔레 온천 지역에서 온천을 체험하는 순서로 하루 일정을 진행하기로 했다. 요한계시록 3:15-18절을 나누어 보자.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사도 요한을 통하여 계시하신 주님은 소아시아의 마지막 7번째 교회인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하여 맹공을 퍼부으셨다. 이유인 즉은 미지근한 신앙의 상태, 부유하다고 자부하나 벌거벗은 존재와 같이 수치 투성이의 상태, 그리고 영적으로 눈이 멀어 있는 것과 같은 한심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주님은 거의 영적 장님 수준인 라오디게아 신자들에게 안약을 바르라고 할 정도로 강하게 말씀하시면서 책망하신 것이다. 계시록에 이렇게 라오디게아의 상태를 언급한 이유는 다분히 라오디게아의 지역적 특성을 감안한 책망임을 순례를 하는 과정에서 알게 되었다. 라오디게아는 전통적으로 의학을 공부하는 오늘로 말하면 의대가 위치해 있었다. 더불어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돌들은 안약을 만드는 재료로 쓰이는 돌들이었기 때문에 영적으로 잠자는 상태의 무력함에 젖어 있었던 라오디게아 신자들에게 안약을 바르라고까지 말한 것은 의미가 있는 책망이었다. 라오디게아의 유적지에 도착을 하자 제일 먼저 눈에 띠었던 것은 규모였다. 골로새의 황망함을 보고 왔기 때문이라 그런지 눈에 들어온 규모는 가히 대단했다.
그림 21) 라오디게아의 신전 터
그림 22) 발굴 공사 중인 라오디게아의 유적 터
그림 23) 라오디게아 유적지에 있는 지하에 존재했던 수로의 흔적들.
그림 24) 라오디게아의 원형 경기장 유적 다시 한 번 계시록 3:15-16절을 보자.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성경에 기록된 이 말씀에 대한 접근을 시도해 보자. 라오디게아 유적지를 중심으로 남쪽으로 8km정도 지역에 온천 지대인 파묵깔레가 있다. 반면 북쪽으로 약 8km 지점에는 타우르스 산맥이 위치해 있다. 라오디게아 고대 도시를 만든 안티오커스 2세는 8km 떨어져 있는 파묵깔레 온천지대에서 뿜어 나오는 뜨거운 온천수를 사용하기 위해 수로를 만들어 라오디게아까지 연결했다는 점이다. 반면 타우르스 산맥의 정상에는 만년설이 있어 항상 차가운 물이 라오디게아까지 흘렀다. 재미있는 것은 서로 다른 지역에서 라오디게아까지 흘러내리는 차가운 물과 뜨거운 물은 8km 정도의 거리를 거치면서 라오디게아까지 이를 때가 되면 둘 다 미지근한 상태가 되었다는 점이다. 바로 이 대목에서 우리는 왜 주님께서 라오디게아를 책망하는 메시지로 찬물과 더운 물 그리고 미지근한 물의 비유를 했을까? 에 무릎을 치게 된다. 신앙의 회색지대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라오디게아의 흔적들을 더듬으며 더욱 실감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