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흐르고 있었다. 2주가 지났다. 조금 천천히 흘렀으면 했는데 더 빨리 2주의 시간이 흘렀다. 1주차는 아내가 함께 하고 싶었던 장소에 머물며 잠간의 시간이지만 멈춤이라는 행위를 했다. 가급적, 일에서 떠나 쉬고, 또 쉬는 일을 해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노는 게 더 힘든 것은 어쩔 수 없는 목사의 숙명과도 같은 테제임을 또 한 번 느꼈다. 2주차에는 기도원에 머물렀다. 펜데믹 3년 동안 굳게 닫혀 있었던 곳이었는데 작금, 문이 열려 근 4년 만에 익숙했던 기도원을 찾았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한다고 했던 것처럼, 기도원 숙소는 1주차에 머물렀던 숙소에 비해 턱없이 보잘 것 없고 어리숙했지만, 내겐 왠지 모를 아늑함과 푸근함으로 다가왔다. 아침에 들리는 소쩍새의 소쩍쿵소쩍쿵 울음소리도 정감이 있었고, 기도원 정면에 펼쳐져 있는 산야의 푸르름도 여전히 위엄이 있었다. 옥한흠 목사 묘소에로 가는 길에 펄럭이는 이름 모를 나비들의 자태가 우아하다. 산책로에 피어 있는 여름 꽃들의 향기는 여전히 기세등등하게 나를 유혹했다.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내 마음 속에 그리어 볼 때’ 경기도에 있는 모처 교회의 팀이 소그룹 모임을 위해 기도원에 올라와 부르는 찬양 소리가 언제 우리가 코로나에 굴복했냐고 시위하듯 은혜롭게 들린다. 문득 뒤돌아보니 4년 만에 올라온 기도원은 로비가 바뀐 것 말고는 여전히 그대로 있다. 그런데 나는? 그렇다. 나는 흐르고 있었다. 시간에 걸맞게 보폭을 맞추어 흐르고 있었다. 지하기도실에 들어가서 한참을 무릎 꿇고 숨소리를 죽였다. 아무 것도 아뢰지 않은 것 같은 기도를 드렸는데 그 기도의 깊이는 이전의 깊이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무게가 있었다. 내 사랑하는 교회와 교우들을 위해 드린 침묵 기도의 제목들은 하나님께 드리는 절규였고, 신앙고백이며, 항복 선언문이었다. 그랬다. 나는 흐르고 있었다. 4년 전의 ‘나’가 갖고 있었던 깊이가 아니라 더 깊이 흐르고 있었다. 기도원 야외 벤치에 앉아 갖고 있었던 책을 폈다. 시인이 이렇게 읊조렸다. 우리가 길을 잃어버린 것은/길이 사라져 버려서가 아니다/너무 많은 길이 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앞이 보이지 않는 것은/어둠이 깊어서가 아니다/너무 현란한 빛에 눈멀어서이다 우리가 지금 희망이 없는 것은/희망을 찾지 못해서가 아니다/너무 헛된 희망을 놓지 못해서이다/한번 멈춰야 한다/한번 놓아야 한다. (박노해, 『너의 하늘을 보아』, p,461) 2주 동안, 멈추려고 했다. 굳게 잡은 것을 놓으려 했다. 그렇게 나를 흘려보내려 했다. 쥐어 쥠이 아니라 흘려보냄은 멈춤에서 일어난다. 하반기 사역의 현장에서 계속 흘려보내는 영성으로 서 보려 한다. 거기에 더 깊은 성숙한 영성이 기다리고 있기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