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교 시절, 실천신학 교과서처럼 목회를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젊은 목사 시절, 실천신학에 근거한 목회를 하면 큰 실수하지 않고 사역을 감당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현장에 나와 현장 목회자가 되고, 사역의 연수가 많아지고, 연륜이 빼곡해지면서 목회는 교과서 사역이 아님을 알았다. 신학적 이론이 아님을 알았다.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은 것을 독학을 통해서 배웠다. 목회는 신학적 이론이 아니라 눈물인 것을. 근래에 만난 한 문장들이 나를 부끄럽게 한다. “아픈 양일수록 상처가 많아 안고 와야 한다.” “목양실에 정말 필요한 것은 티슈다” 차준희 교수가 언젠가 사적인 전화를 하던 중에 내게 이렇게 말했다. “이 목사, 지금 우리 나이가 전성기고 황금기이지 않니?” 친구가 말한 목사, 신학자로서의 전성기, 황금기라는 의미가 그 동안 목회라는 전문 분야에서 사역하면서 쌓은 노하우, 지적으로 레벨-업 되어 있는 나름의 신학적 커리어 등등이 있기에 지금이야 말로 가장 농익은 목사, 신학자로서 선한 영향력을 타자들에게 끼치고 있는 시기라는 진단이었다. 친구의 말을 듣고 웃었다. 또 다른 스펙트럼을 전제하여 동의했기에 그랬다. 나는 耳順의 나이를 넘어선 목사의 삶을 반추하면서 신학교에서 평생 제자들을 키워온 신학자 친구와는 조금 다른 전성기, 황금기에 대한 정의를 한다. “목회가 결코 신학적 이론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지한 성숙에서 오는 전성기” 오늘 주일 오후 설교 텍스트는 다윗이 압살롬의 반역이라는 패륜적인 고통을 당한 뒤에, 다시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견인하심에 힘입어 압살롬 군대와 최후의 일전을 치르게 된 길르앗 전투를 배경으로 한다. 묵상하다가 한 구절에서 가슴이 먹먹해졌다. “다윗이 그의 백성을 내보낼새 삼분의 일은 요압의 휘하에, 삼분의 일은 스루야의 아들 요압의 동생 아비새의 휘하에 넘기고 삼분의 일은 가드 사람 잇대의 휘하에 넘기고 왕이 백성에게 이르되 나도 반드시 너희와 함께 나가리라 하니”(삼하 18:2) 밧세바를 간음하던 날은 전쟁 중임에도 불구하고 왕궁에서 늦게까지 오수를 즐기다가 일어난 다윗의 무감각을 고발한다. 이 일로 인하여 가족이 멸문지화를 당한 다윗은 다시 복권을 위하여 반드시 치러야 할 압살롬과의 전투에 앞서 이렇게 바뀌었음을 신명기 역사서 기자는 보고한다. “나도 반드시 너희와 함께 나가리라” (삼하 18:2f) 현장은 치열함이 없이 어떤 것도 해석되지 않는 장소임을 나는 현장 목회자가 된지 오래서야 알게 되었다. 단언하건대 목사에게 있어서 마주쳐야 할 현장의 치열함은 눈물이다. 이 눈물이이야 말로 친구가 말한 전성기, 황금기를 보내고 있는 시기의 주춧돌이자 필수 요소다. 아직도 목회를 이론으로 해야 한다는 집요한 유혹이 이성의 깊숙한 곳에서 스멀대며 올라온다. 나는 이성을 도외시하는 맹신적, 광신적 목회에 대해 병적으로 방어하지만, 이것과는 별도로 목회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체의 일들 중의 상당수는 실천신학적인 해답을 갖고서 풀 수 없는 것들이 비일비재함을 오롯이 체감한다. 이것들을 풀 수 있는 결정적인 키(key)는 눈물임을 근래 더 뼈저리게 경험한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오늘 내가 섬기고 있는 세인의 현장에서 바울이 밀레도에서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에게 고백했던 토로함이 크게 울려온다. “오매 그들에게 말하되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여러분 가운데서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여러분도 아는 바니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행 20:18-19) 목회는 신학이 아니라 눈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