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자가 이렇게 말했단다. 자녀는 죽을 때까지 부모에게는 어린 아이라고. 아들을 바라보는 마음이 이제나 저제나 독립적인 성인으로 인정해야지 하는 단호한 마음을 먹다가도 여전히 손을 놓으면 넘어질 것 같아 아이의 모습으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의 말이 틀리지 않는 것 같구나. 아들, 이제 결혼예식이 한 주 앞으로 다가왔구나. 어느새 성장하여 한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의 자리에 서야 하는 무거운 책임을 떠맡아야 하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렇게 잘 자라준 아들이 참 자랑스럽다. 뒤돌아보면 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지천에 넘치지만, 오늘은 극도로 자제하며 한 마디만 남기려한다. 나는 우리 아들이 영성적 지성이 있는 목사이자, 남편이자, 아버지가 되어주기를 바란다. 애비가 지난 세월, 읽었던 수많은 책 가운데서 목사의 삶이 어떤 삶이어야 하는지를 길라잡이 해준 최고의 책을 뽑으라면 ‘산둥수용소’(Shantung Compound)라고 말할 것 같다. 책 안에 랭던 길키가 남긴 천둥소리는 읽은 지 십 수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내게는 현재진행형 울림이구나. 길키는 위현 수용소에 있었을 때 경험했던 가장 보수적이고 복음적이라는 개신교도들과 지성적인 기독교인이라고 할 수 있는 사제 집단의 지도자들이 자행했던 극단적인 이기성에 충격을 받는단다. 이후 전쟁이 끝나 길키는 미국으로 돌아왔지. 하지만 그 수용소에 함께 있었던 개신교인(극단적 이기주의에 빠져 조금도 나누지 않으려 했던 자들)들을 비롯하여 당대 최고의 자본주의 국가라는 미국에서 대단히 엄청난 물질적인 부를 누리고 있는 상류층 기독교인들이 자선 혹은 구제 단체를 만들었다는 연락을 받고 그들이 갖고 있는 부를 나누는 작업을 한단다. 길키 역시, 수용소 출신이라 그 모임에 참석했는데 그들이 나누고자 하는 내용을 알게 되었을 때, 경악한단다. 영적인 것에 전혀 관심이 없이 일정량의 구제와 나눔을 지성적 기독교인이 해야 하는 므브먼트로 이해하고 그 실천을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폼 나는 인생으로 여긴단다. 이런 역겨움을 경험한 길키가 그들을 향하여 내던진 한 마디는 오늘 애비가 목회하는 현장에서 아주 냉철하게 아버지도 나를 경계하는 시금석으로 삼고 있다. “죄란 유한한 대상에게 궁극적인 헌신을 하는 것이라고 정의될 수 있다. 즉 죄란 자아와 자아의 실존, 또는 자아가 속한 집단에 최우선적인 관심과 헌신을 기울이는 것이다.” 지성적인 목회자나 신자들이 빠질 수 있는 대단히 위험한 이유란다. 이런 이유로 아버지가 결혼을 앞둔 아들에게 동시에, 이제는 뼈만 앙상하게 남은 한국교회의 목회현장에서 목사로 살아야 하는 아들이기에 유언과도 같은 마음으로 당부하고 싶은 것이 바로 이것이란다. “아들아, 영성적 지성을 견지하는 목사가 되거라.” 지성이라는 내공을 쌓는 이유는 영성적 사역을 돕는 도구로 만들기 위함이다. 본말이 전도되면 안 된다. 이렇게 말하면 어떨까, 아들, 철저히 공부하고, 철저히 기도하는 목사가 되어주렴. 지성을 무기로 무장하여 더 이상 대화가 되지 않는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서 노력해 주기를 바란다. 이건 내 며느리 은지에게도 해당되는 아버지의 부탁이다. 하나님의 기름 부음이 있는 아들의 결혼식을 위해 기도한다. 아버지가 단 한 번도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었던 아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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