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예배

제목[수요 예배] 누가 사람인가?2024-03-13 18:14
작성자 Level 10

서론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을 때대한민국은 거대한 초상집이었습니다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지 못할 때그건 이미 국가가 아니었기에 당시 대한민국은 말 그대로 맹골 앞바다에 수장된 세월호 그 자체였습니다.

  생때 같은 자식들을 차가운 진도 앞바다에 묻어야 했던 유족들은 말을 잃었고 그들은 살아도 산 게 아니라 지옥 같은 나날을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그중에 특히 유민이 아빠는 정부가 나 몰라라 하는 진상 규명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단식하며 항거하는 외에 다른 방법이 없어 식음을 전폐하며 곡기를 끊었습니다헌데 그가   단식하는 현장 옆에서 소위 말하는 일베들이 통닭을 주문하여 먹으면서 유민 아빠를 비롯한 세월호 유족들의   진상규명 요구를 정치적인 술수로 몰고 가며 비아냥거렸던 일이 있었고당시 이 기가 막힌 일이 일어나자 한  식자(識者)가 일간신문에 그들을 향해 이런 글을 남겼던 것을 기억합니다.

사람으로 태어나서는 결코 안 될 괴물들이 사람으로 태어나 진짜 사람들을 죽이고 있는 슬픈 세대가 도래했다.”

유대인 철학자 아브라함 죠수아 헤셀이 그의 걸작인 누가 사람인가?’에서 대단히 의미 있는 갈파를 했습니다.

사람이 지니고 있는 가장 중요한 문제는 그의 본성이 아니라그가 그 본성으로 무엇을 하느냐이다.” (아브라함 죠수아 헤셀, “사람이 누구인가?”, 18)

  또한 같은 책에서 헤셀은 이렇게 말을 이었습니다사람이 사람으로 존재하는 것은 그 알맹이 가치에인간 존재에 내포되어 있는 가치에 있다.”(위의 책, 20아브라함 죠수아 헤셀의 말을 귀담아 들을 이유가 있습니다.

  왜 사람이 사람인가답을 이렇게 말하면 식상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사실 이보다 더 완벽한 답이 없을 것 같아 그대로 답하고 싶은 문장이 있습니다사람이 사람인 이유는 그가 사람답기 때문에 사람입니다결국 이 말은  사람이 사람 답지 않을 때 그는 사람의 탈을 쓰고 있어도 결코 사람이 아니라는 강력한 경종이기도 합니다.

 

본론본문 25을 읽어보겠습니다.

그들이 앉아 음식을 먹다가 눈을 들어 본즉 한 무리의 이스마엘 사람들이 길르앗에서 오는데 그 낙타들에 향품과 유향과 몰약을 싣고 애굽으로 내려가는지라

  음식을 먹고 있는 어간그들은 애굽으로 내려가던 이스마엘 부족 출신의 카라반들이 근처로 오고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이 상황을 본 유다가 자기 형제들에게 한 가지 안을 제시합니다구덩이에 넣어버린 요셉을 꺼내 그를 이스마엘 상인들에게 팔자는 제안이었습니다유다가 제안한 제안이 그럴듯하게 보이도록 만든 근거를 이어지는 본문 26-27에서 증언합니다.

유다가 자기 형제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동생을 죽이고 그의 피를 덮어둔들 무엇이 유익할까 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고 그에게 우리 손을 대지 말자 그는 우리의 동생이요 우리의 혈육이니라 하매 그의 형제들이   청종하였더라

  혈육인 동생을 죽여 그의 피를 흘리는 죄를 짓지 말고이스마엘 상인들에게 팔자는 것이 이유였습니다이 구절만 놓고 보면 유다는 당시 고대 근동 시대에 대단히 무거운 죄로 인식되던 형제 살해에 대한 두려움을 누구보다도 크게 갖고 있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이런 이유 때문에 유다는 요셉을 죽이지 말고 이스마엘 출신의 상인들에게 팔자고 제안한 것으로 보입니다유다의 제안에 나머지 형제들이 수용합니다.

  27절에 번역된 청종하였더라라고 번역한 히브리어 쉐마는 그냥 듣는 것이 아니라 듣고 나서 동의했다는   의미를 포함한 단어입니다그러니까 요셉의 나머지 형들도 요셉이 미워 구덩이에 넣어 살해하고자 했지만심중에 적지 않은 부담감을 가진 것으로 여겨집니다결국 요셉은 형들에 의해 애굽의 노예로 팔리는 신세가 되었음을 본문 28이 보고합니다.

그 때에 미디안 사람 상인들이 지나가고 있는지라 형들이 요셉을 구덩이에서 끌어올리고 은 이십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매 그 상인들이 요셉을 데리고 애굽으로 갔더라” 이 구절에 대한 주석이 필요합니다.

  본문에 요셉을 사가지고 간 상인들의 정체를 두 가지로 설명하고 있는 것에 대한 주석입니다. 25,28절에 도단에서 형들이 만난 카라반은 이스마엘 사람들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반면 곧이어 같은 구절 28절과 37:36절에는 미디안 사람들이라고 적시되어 있기에 부연 설명이 필요합니다요셉을 산 상인들이 미디안 사람들인가이스마엘 사람들인가구약학자의 설명을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이스마엘인과 미디안은 모두 아브라함의 후손들이었다아스마엘은 하갈에서 비롯된 아브라함의 후손이었고   (창 16:15), 미디안은 아브라함의 첩 그두라에게 난 후손이었다창세기의 최종 편집자는 이 두 부류의 사람이   사막지방에 거하는 아브라함의 후손들이었기에 큰 차이가 없다고 보고 서로 다르게 언급하지 않고 하나의 이야기로 그대로 놓아 둔 것으로 보인다더불어 사사기 8:22-24절에서는 미디안과 이스마엘을 같은 족속으로 부르고 있는 것을 볼 때 둘은 같은 족속으로 정의될 수 있다.” (하경택, “정경적 관점으로 본 창세기 2”,320-321)

  설명을 듣고 보니 고조 할아버지의 씨로 탄생된 친족에게 팔리게 된 요셉의 운명이 드라마틱하다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이제 우리는 본문 해제 뒤에 임한 난제를 풀어야 합니다즉 유다의 제안입니다결국 요셉의 목숨을   살리게 된 유다의 제안을 어떻게 해석하는 것이 신학적 해석인가의 문제를 다루어야 합니다.

유다는 요셉의 구세주 역할을 한 것일까결론적으로 말한다면 유다는 요셉을 죽음에서 건져낸 주인공인 셈입니다.

  그렇다면 그의 죄는 정당화될 수 있단 말인가저는 이렇게 해석합니다유다가 마음을 돌이켜 요셉을 구덩이에서 건져 올리도록 한 것은 전적인 야훼 하나님의 간섭입니다다른 것으로는 도무지 해석이 안 되는 하나님의 전적인 일하심이 유다의 마음을 그렇게 먹게 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유다의 그런 행보가 그의 죄를 희석화해주는 동기가 될 수 있는가를 묻는다면 단연코 NO라고 답하겠습니다.

  동생을 은 이십에 미디안 상인에게 판 행위는 사람을 죽이는 행위의 죄에 비해 결코 작지 않은 범죄임을 율법에서 알려주고 있습니다출애굽기 21:16을 봅니다.

사람을 납치한 자가 그 사람을 팔았든지 자기 수하에 두었든지 그를 반드시 죽일지니라

신명기 24:7도 같은 맥락의 법입니다.

사람이 자기 형제 곧 이스라엘 자손 중 한 사람을 유인하여 종으로 삼거나 판 것이 발견되면 그 유인한 자를 죽일지니 이같이 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할지니라

  인신매매의 금지는 물론그 법을 어긴 자는 절대로 살려두지 말라는 엄격한 명령이 율법 서에 적시된 것을 보면 유다의 죄가 결코 용서받을 수 있는 죄가 아니라고 해석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수요 예배를 통해 본문이 주는 교훈을 이렇게 갈무리할 수 있습니다.

 

※ 사람의 가치를 상품으로 여기는 것은 죄의 극치라는 교훈입니다.

 

  본문 28절은 요셉이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은 이십에 팔렸다고 보고합니다함무라비 법전 같은 고대 근동 자료에 의하면 형들이 요셉을 팔면서 받은 금전적인 대가는 보통 가격이었다는 것을 알게 해 줍니다.
고대 바벨론 문헌들을 보면 주전 2000년 대초 근동 지역의 남자 노예 가격은 20세겔이었다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가격이 상승했다누지(NUZI) 문서에 의하면 2000년 중반의 노예 가격은 30세겔이었고, 1000년대 중반인  신 바벨론 시대에는 50세겔, 1000년대 말인 페르시아 시대에는 100-120세겔을 호가했다요셉의 몸값으로 지불된 은 이십 세겔은 노동자들의 2-3년치 봉급이었다상당한 액수의 금액이었다요셉의 나이는 17세였다.”

(송병현, “엑스포지멘터리-창세기 주석”, 669)

  적지 않은 금액을 형들이 받았습니다성경은 요셉의 몸값으로 받은 것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침묵하고 있어 그 후속 이야기를 전개할 수는 없지만 왠지 모르게 가롯 유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팔아 받아챙긴 은 삼 십을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을 본 이후에 취한 쓰라린 기억에 되살아나 슬프기 짝이 없어 보이는 추측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마태복음 27:3-8입니다.

그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이르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그들이 이르되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냐 네가 당하라 하거늘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대제사장들이 그 은을 거두며 이르되 이것은 핏값이라 성전고에 넣어 둠이 옳지 않다 하고 의논한 후 이것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묘지를 삼았으니 그러므로 오늘날까지 그 밭을 피밭이라 일컫느니라

  아마도 형들이 받은 그 물질의 행방은 결코 선한 일에 사용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사람은 상품이 아닙니다사람은 물건이 아닙니다사람은 사람 그 존재로서 존중받아야 할 가치 있는 하나님의 걸작입니다.

  오늘 아침새벽 묵상 본문이 에베소서 2:1-10절이었습니다바울은 이렇게 구원 받지 못한 인간을 정의했습니다.

결국 구원 받지 못한 인간은 본질적으로 진노의 자녀라고 정의했습니다하지만 이런 우리들이 하나님의 전적인 개입하심과 은혜로 인해 구원을 받게 되어 신분의 상승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어느 정도의 신분 상승이라고 바울이 천명했는지 소개합니다에베소서 2:10이라는 명구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임한 신분 변화는 이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해 지음 받은 자라고 천명합니다에베소서 2:10절 전반절을 공동번역 성경은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작품입니다곧 하느님께서 미리 마련하신 대로 선한 생활을 하도록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창조하신 작품입니다.” 영어성경은 NLT 번역은 감동입니다.

“For we are God's masterpiece. He has created us anew in Christ Jesus, so we can do the good things he planned for us long ago.” 직역하면 이렇게 번역할 수 있습니다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걸작품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우리들을 새롭게 창조하셨습니다그래서 우리는 오래 전부터 우리를 위해 계획하신 아름다운 일을 행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적용해 보십시다하나님이 걸작으로 만든 존재가 바로 라는 존재이며 라는 존재입니다.  사정이 이렇게 엄숙한데 와 를 상품으로 전락시켜 숫자를 매기고 물건으로 팔아넘기는 행위를 어찌 죄라고 정의하지 않을 수 있단 말입니까사람을 서열화시키는 행위사람을 상품 가치로 전락시키는 행위사람을 돈주고 팔고 사는 행위 등등은 용서 받을 수 없는 범죄행위이며그런 일을 행하는 자는 본인이 사람이 아님을 선언하는 것과 동일합니다시인 박노해가 일찍이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희망찬 사람은 그 자신이 희망이다길 찾는 사람은 그 자신이 새 길이다참 좋은 사람은 그 자신이 이미 좋은 사람이다사람 속에 들어있다사람에서 시작된다다시 사람만이 희망이다.” (박노해, “사람만이 희망이다”, 느린걸음, 63시인은 군사독재 시절에 사람을 물건 취급하며 마음대로 유린하던 죄를 지적하며 이렇게 본인의  소망을 천명했습니다사람이 희망인 세상을 만들자고저는 대단히 보편적인 철학에 근거한 시인의 갈파를 존중하면서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싶습니다정말로 아름다운 세상은 하나님의 걸작품인 사람들의 가치를 영혼의   가치로 존중하는 세상을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만들어야 한다고.

 

결론저는 이제 말씀을 맺으려고 합니다또 다른 시 한편 소개하고 설교를 마치겠습니다.

한 사람 건너 한 사람 다시 한 사람 건너 또 한 사람 애기 보듯 너를 본다 찡그린 이마 앙다문 입술 무슨 마음 불편한 일이라도 있는 것이냐꽃을 보듯 너를 본다.” (나태주, “나태주 시집-꽃을 본 듯 너를 본다”, 26)

  꽃을 본 듯 너를 본다라는 시어에서 말문이 막혔습니다감동이 봇물처럼 밀려와서 그랬습니다누가 사람입니까?

하나님이 만드신 최고의 걸작인 와 를 존중하는 사람이 진짜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입니다.

누가 사람입니까하나님이 지으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고 찬탄하신 와 를 가장 아껴주는 사람이 사람입니다이런 사람은 꽃을 보는 너를 보는 사람입니다하마스와 이스라엘 간의 죽기살기식의 전쟁터에 시인의 이 노래가 들려졌으면 너무 좋겠는데 현실은 아프기만 합니다.

  사랑하는 세인 지체 여러분나는 우리 교우들이 사람이기를 바랍니다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이기를 소망합니다.

찬양하고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