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3일 화요일 성서 일과 묵상 야훼 하나님, 도대체 당신은 누구십니까? 오늘의 성서 일과 시편 100편, 스가랴 9:14-10:2, 사도행전 20:17-38, 시편 61편, 사무엘하 8:1-18 꽃물 (말씀 새기기) 스가랴 10;1-2 봄비가 올 때에 여호와 곧 구름을 일게 하시는 여호와께 비를 구하라 무리에게 소낙비를 내려서 밭의 채소를 각 사람에게 주시리라 드라빔들은 허탄한 것을 말하며 복술자는 진실하지 않은 것을 보고 거짓 꿈을 말한즉 그 위로가 헛되므로 백성들이 양같이 유리하며 목자가 없으므로 곤고를 당하나니 마중물 (말씀 묵상) 세인교회는 역사서로 분류되는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를 강해하며 살폈다. 세 권의 역사서를 공부하면서 포로기에서 포로기 이후로 넘어가는 치열했던 이스라엘 신앙공동체의 지난했던 과정들을 깊이 성찰했다.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이 철저하게 일하셨다는 측면에서 접근할 때, 분명히 과도기였기는 했지만, 이 시대는 하나님이 철저하게 유대 민족을 간섭하시고 통치하던 시대였다. 그러니 은혜의 한복판에 있었던 시대였다고 나는 해석한다. 이미 아는 지체들은 알다시피 스가랴 예언서는 두 파트로 구분된다. 1-8장은 제1 스가랴라는 이름을 붙여야 하는 예언자의 소리이고, 9-14장은 제2 스가랴라고 이름붙여야 하는 예언자의 소리로 각기 시공간의 차이가 있다. 제2 스가랴는 포로 생활을 마치고 조국인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유다 공동체의 지체들이 부분적이고 완벽한 회복은 아니지만 신앙공동체로서의 정체성과 변모를 어느 정도는 갖추고 있었던 시기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그 신앙공동체를 통하여 행하실 일들에 대한 시나리오를 대신 예언했던 예언자다. 조금 더 쉽게 접근한다면 하나님은 가장 민감하고 예민한 유다 신앙공동체의 과도기를 보내고 있었던 중간기 400년 시기 즉 주전 4세기부터 당신의 선민이었던 유다 공동체를 향한 구체적인 구속사의 시나리오를 쓰고 있음을 강력하게 시사했던 예언자였다. 이 지식은 전제로 해석할 때 오늘 성서 일과로 읽은 10:1절은 나름 빛이 보이는 듯한 희망의 노래 같다. 하지만 이어진 2절은 급반전이 되어 우울하다. 하나님이 계획하신 것은 포로에서 돌아오게 한 이스라엘 신앙공동체에 대해 품으셨던 장밋빛 청사진이었다. 그들을 회복의 공동체를 만들어 구속사의 도구로 사용하시겠다는 의지 말이다. 하지만 2절을 보면 하나님의 그 의지를 유다가 저버리고 있는 영적 기상도를 시사하기에 매우 유감이다. “드라빔들은 허탄한 것을 말하며 복술자는 진실하지 않은 것을 보고 거짓 꿈을 말한즉 그 위로가 헛되므로 백성들이 양같이 유리하며 목자가 없으므로 곤고를 당하나니” 참 가능성 없는 이스라엘 공동체다. 대책이 안 서는 이스라엘이다. 하나님의 입장에 서보면 참 갑갑한 마음일 것 같다는 소회를 떨칠 수가 없다. 그런데 그 이스라엘을 포기하지 않는 하나님,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는 야훼이시다. 도대체 당신은 누구십니까? 목회자로 어언 40년에 가까운 세월을 달렸다. 어제 작고한 김민기 님이 읊조린 그것, 그 말 그대로 나 역시 목회 현장에서 긴 밤 지새우는 지난한 일을 수도 없이 겪었고 또 겪고 있다. 언젠가는 청명하고 깨끗하며, 그 어떤 불순물도 가미되지 않은 순결한 아침 이슬 같은 주의 백성들이 세워져서 끝내 이기리라는 통쾌함을 바라보면서 말이다. 하지만 신 사사시대는 나를 두렵게 하고 떨리게 한다. 그 통쾌한 승리가 너무 요원한 것 같아서 말이다. 하나님이 없다고 믿었던 성경의 역사인 사사시대가 아닌, 하나님이 ‘나’라고 믿는 참담한 시대가 오늘 내가 살고 있는 신 사사시대이기에 그렇다. 그래서 그런지 제2 스가랴의 탄식을 보고하는 오늘 성서 일과가 나에게도 똑같이 울리는 경종으로 다가온다. 세인교회 3층 베란다에서 내려다보이는 제천 시내의 하늘은 잔뜩 찌푸려 있다. 두레박 (질문) 나는 신 사사시대에 어떤 목사로 서 있나? 손 우물 (한 줄 기도) 나의 지존이신 야훼 하나님, 제2 스가랴가 보았던 아픔을 종도 봅니다. 시대가 주는 두려움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큽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야훼께서 역사의 주관자이심을 믿기에 두렵지만, 주님을 보며 나아갑니다. 시대를 이길 수 있는 용기를 주십시오. 나비물 (말씀의 실천) 시대가 주는 무례함이 있지만, 그 시대의 무례함을 극복할 유일한 보루가 교회이고, 세인교회임을 유념하며 세속적 아류와 타협하거나 혼합되지 않도록 경성하자. 하늘바라기 (중보기도)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신 하나님, 사랑하는 젊은 후배 목사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아내를 잃었습니다. 후배가 겪어야 할 황망함과 참담함은 언어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압니다. 그래서 사람의 위로가 필요 없음도 압니다.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목회 여정 중에 수없이 저 또한 경험했습니다. 어떤 때는 하나님께 삿대질도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항복한 이유는 하나님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임을 다시 인지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후배 목사의 남은 여정을 하나님이 책임지셔야 할 당위입니다. 책임져 주십시오. 사랑하는 후배 목사의 아내를 데려가신 것에 대한 항의 기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