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지은이 | 한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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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출판사 | 문학동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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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일 | 2021-10-05 15:39: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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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 (문학동네, 2021)를 읽고 개인적으로 운영하는 블로그가 있다. 2013년에 시작했으니까 이제 만 8년이 되어간다. 블로그 운영을 시작하면서 담아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북-리뷰와 삶의 이야기 기록하기로 한정하기였다. 오늘까지 서평 블로그에 173개의 북 리뷰가 담아 놓았는데 통계를 확인해 보니 거의 매일 한 두 명이라도 찾아주는 글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소설가 한강이 쓴 ‘소년이 온다’의 북 리뷰다. 4,771명이 이 글을 확인했다. 왜 이 글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줄까 많이 생각해 본다. 이유는 대단히 간단하다. 1980년 5월의 비극 한 복판에 있었던 그들의 입장에서 울며 썼기 때문이다. 더불어 그때 그곳에서 일어난 일에 대하여 무감각했던 것에 대한 통회 때문이다. 필자는 이 글의 서평을 첫 번째 출간한 졸저에 담았다.
“저자 한강은 참 잔인하다. 어쩌면 이토록 시리고 아픈 이야기를 포장 없이 그릴 수 있었지, 숨기고 싶지 않았을까! 광주 전 시민의 인구가 40만 명인데 계엄군 공수부대원들에게 80만 발의 실탄을 지급한 저 짐승보다 못한 이들의 편에 서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한 자들의 아픔이 너무 커서 말이다. 예상은 빗나갔다. 저자는 용감했다. 페이지를 넘기면 넘길수록 숨을 쉬지 못하게 하는 아픔을 소년의 참담한 1인칭 내레이션을 통해 과감 없이 발가벗기고 있으니 말이다.”(이강덕, “시골목사의 행복한 글 여행”, 동연 간, 2016,p,162.)
그녀로부터 시리도록 아프고 잔인한 이야기를 심장으로 받은 지 7년 만에 나는 다시 또 울었다. 이제는 광주가 아닌 제주도에서 일어난 아픈 일 때문에. 내가 짐작하기로 한강은 ‘소년이 온다’ 이후 심각한 트라우마에 빠져 때때마다 찾아오는 편두통에 시달렸을 것으로 감히 짐작한다. 이 고통은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용기를 줄 만큼의 무시무시한 통증이었을 것이다.
“통증이 시작되기 전까지의 시간으로부터 아프지 않은 사람들의 세계로부터 떨어져 나온다.”(p,121)
화자이자 주인공인 경하가 인선의 집을 찾아가면서 심장을 도려내는 듯한 편두통의 통증을 표현하며 내뱉은 이 독백이 나에게는 이렇게 들렸다. “확인 사살로 attack하고 있는 同痛의 통증” 앞으로 소설의 후반부에 낱낱이 고발될 4.3사건으로 묻어진 수많은 원한들이 전혀 그 장소와 그 시간에 존재하지 않았기에 같은 땅에서 같은 언어를 쓰고 있는 자들이지만 그게 나하고 무슨 상관인데! 라고 내뱉는 이질감의 통증이다. 한강만이 갖고 있는 독특함을 말해보라면 ‘천재적인 아픔 묘사’라고 답하고 싶다. 저자는 이 책에서 5,18 광주 민주화 운동과 더불어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가장 비극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 4.3 사건을 가장 아픈 필채로 독자들과 무감각했던 모든 이들에게 쓰라리게 까발린다. 무감각의 한 복판에는 이 글을 쓰는 필자도 예외일 수 없다. 무관심했던 공범자로 서 있다. 그래서 나는 한강이 무섭다. 웬일인가? 무섭고 무서운데 눈물이 나게 고맙다. 흘리는 눈물이 분명한데 눈 밖으로 돌출되지 않게 비밀스럽게 흘렸던 또 다른 주인공 인선의 삶의 언어들을 통해 4.3 사건의 비극은 고스란히 수면 위에 떠오른다. 결코 숨겨지지 말아야 하는데 초록이 동색인 정치 권력자들의 으름장으로 인해 숨겨져야 했던 비극의 사건은 그들만의 사건이 아니라 당신도 함께 느끼고 당해야 하는 공동의 비극임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소설의 형식과 구성 내용은 여기서 논하지 않으련다. 소설가만이 갖는 능력으로 시공간을 초월하는 방식의 내레이션을 택했기에 설명하자면 대단히 至難해 진다. 더불어 많은 지면도 필요하다. 그것 없이도 한강이 말하고자 했던 소설의 백미는 충분히 논할 수 있기에 용기가 생긴다. 인선의 엄마인 정심은 4.3 사건의 피해자다. 남편을 잃었고 친척들을 잃었다. 더 아픈 것은 그 심대한 트라우마는 그녀를 평생 괴롭혔다. 정심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그녀는 딸에게 말하지 않은 수없이 많은 4.3사건의 자료들을 모으는 일이었다. 이유는 통절한 원통함이 후대에까지 잊어지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정심이 떠난 뒤에 인선은 엄마의 아픔이 통째로 담겨 있는 역사의 알갱이들을 다시 경하에게 독백하듯 곱씹는다. 이 장면에서 나는 여지없이 울었다. 왜? 내 삶의 여정 중에 왜 대한민국은 이런 아픔들로 겹겹이 쌓여야만 했을까? 에 대한 탄식 때문이다. 몇 년 전, 가족들과 휴가를 제주도에서 보냈다. 해서 제주도에서 목회하던 후배 목사에게 4.3사건 기념관 안내를 부탁했는데 기꺼이 동행해주어 아픔의 현장을 다녀왔다. 유난히 그날, 기념관 주변에 까마귀 떼가 장관을 이룰 정도로 무리 비행하는 것이 보였다. 후배 왈, 이곳을 극도로 싫어하는 자들은 이 장소를 터부시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어둠의 영이 이 지역을 감싸고 있다고들 말한다는 전언도 들었다. 들으면서 이유도 모르고 죽어간 이들의 유족들을 향한 제 2의 타살이 지금도 진행형이라는 점에 경악했었다. “바로 곁에 누워서 엄마는 자기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냈대. 피를 많이 흘렸으니까 그걸 마셔야 동생이 살 거란 생각에. 얼마 전 앞니가 빠지고 새 이가 조금 돋은 자리에 꼭 맞게 집게 손가락이 들어갔대. 그 속으로 피가 흘러들어가는 게 좋았대. 한순간 동생이 아기처럼 손가락을 빨았는데, 숨을 못 쉴 만큼 행복했대.” (p,251)
빨갱이 멸절을 위해 제주도민 70%(당세 제주도민 300,000만 명)가 몰살돼도 괜찮다는 악마적인 당시 이승만 정권과 미군정의 기막힌 하모니로 이루어진 토벌 작전으로 인해 아무 것도 모르고 쓰러져 갔던 수많은 제주도민과 그 대열에 있었던 인선 가족의 이 가슴 아픈 보고를 읽다가 7년 전, 한강이 불러낸 동호와 정대가 다시 내게 소환되는 느낌이 들어 몸서리를 쳤다. 한강은 4.3사건의 실체를 기막힌 작가의 감각으로 이렇게 갈파했다.
“인간이 인간에게 어떤 일을 저지른다 해도 더 이상 놀라지 않을 것 같은 상태” (p,316)
필자는 목사로 살아가면서 아주 곧잘 바로 이런 무감각으로 인해 자괴감에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할 때를 경험한다. 어찌 보면 목사라는 자리는 끊임없이 놀라야 하는 자리이며, 결코 무뎌지면 안 되는 자리다.
“인간이 무감각하다는 것은 살아 있다고 하더라도 죽은 것이다. 죽였다. 죽였다. 죽였다. 죽였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리듬에 맞춰 귓가에 계속 읊조려댔다. ‘나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니까’ 그러나 이러한 암시는 다시 자신에게 되돌아와 마음속에 작은 소용돌이를 일으키다가 사라졌다. ‘맞아. 너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어. 아주머니가 죽을 때도, 이번에도 아무 짓도 하지 않은 거야”(엔도 슈사쿠, “바다와 독약”, 창비, 2017,p,164) 제 2차 세계대전이 한참일 때 포로가 된 미군 병사를 마취시킨 뒤 생체 실험을 하는 현장에서 있었던 의학도 스구로의 독백이다. 스구로는 살아 있는 사람을 죽이는 생체 실험실 안에 있었지만 그는 도무지 그 범죄 행위에 참여할 수 없었다. 전시(戰時)라는 긴박한 상황이라고 할지라도 그는 양심상 명령이었던 그 임상 실험에 동참할 수 없어서 실험 팀 뒤에 빠져 참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방안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인간이라면 도저히 저지를 수 없는 패악한 죄악을 묵과하고 있는 공범이라는 죄책에 몸서리치며 이렇게 소리친 것이다. 이게 사람이다. 이게 인간이다. 작가 한강은 이 작품에 대해 작가 평을 독자들에게 전할 때, 이 글은 4.3사건에 대한 기록이 아니라 지독한 사랑이야기라고 설명했다는 시놉시스를 인터넷 뉴스를 통해 본 적이 있다. 본 책을 읽고자 하는 독자들이라면 저자의 이 표현이 어떤 의미인지를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단 한 명이라도 그 생명은 나같이 소중한 존재이자 가치가 아닌가! 한강은 가족이라는 그 한 명의 가치를 사랑하는 지독히 아픈 사랑 이야기를 본서에 담고 있다. 필자 역시 독서 내내 지독히 아픈 사랑 때문에 홍역을 앓은 것처럼 몸살에 힘들었다. 그래서 김광석이 이렇게 노래를 불렀나 보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그렇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라는 단어에 담을 수 없는 가치다. 정치가 마약인 정치인들에게 경고한다. 여든 야든 이 땅 대한민국에 다시는 이데올로기라는 우상에 빠진 미친 괴물들 때문에 여리고 여린 민초들이 울지 않게 하라. 인간이라면 그것이 정치로 밥 먹고 사는 당신들이 해야 하는 최소한의 예의이자 사명이다.
난 이미 한강에 빠져 있다. 그녀는 시대의 아픔을 같이 아파하게 하는 천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