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지은이 | 달라스윌라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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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출판사 | 복 있는 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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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일 | 2021-10-17 21:08: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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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스 윌라드의 ‘하나님의 모략’(복 있는 사람 간, 2012년)을 읽고 세인교회는 직분을 받기 위해서 반드시 교우들이 이수해야 하는 코스워크가 있다. 1단계는 초급과정으로 이재철 목사의 저서인 새신자반을 시작으로 성숙자반과 사명자반을 수강해야 한다. 이 과정이 끝나면 2단계 중급반인 크로스웨이 성경 연구를 약 1년에 걸쳐 이수해야 하고, 마지막 단계인 고급반 사역인 ‘구원 그 이후 반’에 수강하여 박영선 목사가 집필한 ‘구원 그 이후’라는 도서를 기초로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나누어야 한다. 약 3년 여 진행하는 제천세인교회의 성도 만들기 커리큘럼의 목적은 ‘진짜 제자 되기’다. 이 과정과는 별도로 남성 소그룹 사역반이 있는데 지금 나누고 있는 교재가 바로 본서다. 본서의 원제(原題)는 ‘The Divine Conspiracy’다. 직역하자면 ‘하나님의 음모’, ‘하나님의 모의’ 등으로 번역할 수 있다. 기독교 신앙의 시각으로 볼 때 대단히 불온한 제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윌라드가 이렇게 도발적인 제목을 붙인 것은 주군에 대하여 선(線)을 넘는 도전적인 일탈의 결과 때문이 아니라, 도리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의 정체성을 더 선명하게 밝히고 싶었기 때문이다. 즉 ‘제자도’(Discipleship)에 대한 의미 말이다. 세인교회의 남성 교우들은 지금 본서와 치열하게 투쟁하고(?) 있다. 대단히 지성적인 언어와 필채로 기록된 글들에 대한 이해라는 싸움과 더불어 이해 뒤에 오는 그렇게 살아내야 한다는 치열함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하기 때문이다. 총 10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본서의 면면은 대단히 전투적이다. 글 안으로 들어서면 그럭저럭 살아가도 괜찮다고 암묵적으로 동의해 주는 고맙고 친절한 교회에서는 전혀 들을 수 없는 불편함과 부담감이 지천이다. 필자가 가지고 있는 2012년 판은 양장 합본으로 600 페이지나 되는 무시무시한 분량을 자랑한다. 책의 분량도 외형적으로 숨 막히게 하지만, 각 페이지마다 담겨 있는 아날로그 감성이 진하게 묻어 있는 제자 되기의 매뉴얼은 빈틈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을 만큼 철저하다. 저자는 ‘현대성(modernity)’과 ‘세속주의(secularism)’의 실체를 기막히게 묘사했는데 기체가 상하 전복된 채로 추락하는 비행기(p,27)와 같다고 진단한다. 이런 참담한 현 상황에서 제자 된 자들이 추구하며 천착해야 하는 당위를 저자는 다음과 같이 역설한다. “하나님의 통치의 실체와 거기 포함되는 모든 도구는 예수의 인격과 함께 그의 인격을 통해 지금 우리 곁에 살아 존재하는 예수의 복음이라는 현재성이다.” (p,67) 필자는 저자의 일갈을 이렇게 받았다. 그리스도의 제자 되기는 역사 안으로 들어오셔서 인격적으로 지금도 성육신하심으로 우리와 교제하시고자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성을 삶으로 실천하는 것이라고. ‘죄 관리의 복음’이라는 신조어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저자는 이 단어를 독자들에게 던진다. 윌라드가 말한 이 대목을 만나자마자 필자는 그의 천재성을 확인하는 듯 했다는 소회를 숨길 수가 없다. ‘우익의 복음’과 ‘좌익의 복음’이 현대인들에게 제시하는 것은 ‘죄 관리의 복음’이라고 맹폭한다. 우익은 개인의 죄 용서가, 좌익은 사회악과 구조악의 제거가 최우선의 목표다. 다른 것은 관심외다. 이들 모두의 공통점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성품의 변화가 그들 메시지의 한 부분도 자리를 잡고 있지 못한 점이라고 저자는 탄식한다. 사정이 이러다보니 두 영역 모두 공히 본회퍼가 날린 ‘값싼 복음’ 이라는 비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p,79) 이런 글을 오래 전 읽었다. “죄라는 말이 요즈음 ‘기피 단어’가 되고 있다. 소수자에게 상처가 되는 표현을 피해야 한다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이라는 가치 때문에 앞으로 어떤 행동을 죄라고 부르는 것을 금지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죄를 부정하고 죄에 대하여 생각하지도 않고 살기를 원한다. 그래서 과거에는 ‘죄’라고 부르던 것을 요즈음은 ‘선택’이라고 부르고, ‘죄’라고 부끄러워하던 것을 요즈음은 ‘기호’라고 자랑하며 죄를 쌓아간다.”(김영봉, “가장 위험한 기도, 주기도”,IVP, p,163.) 저자는 지금 임한 나라와 앞으로 올 나라의 영적 상태가 장밋빛이 아님을 토해낸다. 도리어 무섭고 떨리는 나라가 될 것을 짐작한다. 이로 인해 비상한 마음을 갖고 하나님이 생각하고 또 기대하시는 나라와 그 나라의 사람으로 서기 위한 그분의 모략을 분별할 수 있는 방법과 대안을 본서에서 제시한다. 방법은 4-7장에 주도면밀하게 설명하고 있는 산상수훈의 삶 살아내기다. 더불어 저자가 강력하게 천명한 대안은 8-9장에서 역설하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철저한 순종과 실천으로만 이루어지는 제자 되기이다. 저자는 아픈 마음을 갖고 진단한다. “현재 기독교 신자들 사이에 만연해 있는 부정적 실체의 근본은 우리 안에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사는 법’을 꾸준히 배우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p,458) 더불어 “기쁜 소식을 값싼 은혜로 전락시켜 값비싼 불신으로 전락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p,459) 기막힌 성찰이다. 지면의 한계가 있기에 본서를 더 설명할 수 없어 아쉽지만 하나는 놓칠 수 없어 남기려고 한다. “현실을 뛰어넘어 새로운 비전의 믿음과 제자도로 나아가지 않는 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의 진정한 의미와 능력은 결코 진가를 발휘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그 복음의 의미와 능력은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의 진정한 한 부분이 아니라는 개념에서 언제나 패배하고 말 것이며, 교회는 생명 없는 소비자 기독교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pp,470-471) 이런 무시무시하게 올바른 지성적 영성을 토대로 한 저자이기에 그가 갈파한 말을 그는 우리 곁을 떠났지만 여전히 믿는다.
“하나님의 모략은 패배하지 않는다. (p,47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