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함께

제목행성어 서점2024-06-11 10:03
작성자 Level 10

0bceefed06bd738ca90e39c88e2ad700.png

 


ㆍ지은이 김초엽
ㆍ출판사 마음 산책
ㆍ작성일 2021-12-09 19:38:39

 

김초엽의 ‘행성어 서점’(마음 산책, 2021년 간)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영문과와 국문과 사이를 고민하다가 결국 영문과를 선택했다. 1학년 시절, 교양필수 과목으로 영문학과에도 문학개론이라는 과목이 있어서 수강하다가 문학이라는 학문을 하는 사람의 보폭이 어떤 자세이어야 하는지를 초보적이기는 하지만 의미 있게 다졌던 기억이 있다. 일반적으로 과학적인 영역의 첫걸음은 정확한 공식과 데이터를 중심으로 한 기초적 자료들을 전제하여 출발한다. 이에 비하면 문학은 애매하기 그지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의 출발을 굳이 끄집어낸다면 삶이지 않을까 싶다. 조정래의 일설을 들어보자.
“일찍이 문화사가들은 작가를 일러 ‘시대의 산소이며, 등불이고 나침반이라고 했다.”(조정래, “시선,” 해냄,p,185.)
문화사가들의 정의를 수용할 때,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보게 된다. 그렇다면 작가는 삶의 굴곡들을 진하게 경험한 뒤에나 글을 쓸 수 있는 것이 아닌가의 질문이다. 왜? 산소, 등불, 나침반의 역할은 삶을 살아본 자들의 흔적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 훌륭한 소설가는 지천명의 나이를 지나야 탄생할 수 있다는 어떤 이의 말이 떠오른다. 작가 김초엽은 이런 전제를 감안할 때 훌륭한 소설가가 될 수 없다. 그녀는 아직 약관의 나이이기에 말이다. 필자의 너스레와 주절댐이 길었다. 이것을 말하고 싶어서다. 약관의 나이를 지나는 작가는 혹시 돌연변이인가, 예외일 수 있겠다는 심정의 토로, 뭐 그런 거다. 

작가는 포항공과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한 재원이기에 글쓰기 그것도 소설쓰기와 매치를 시켜보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왠지 어울려 보이지 않는 옷을 입힌 것 같다. 그럼에도 이런 기우는 사치스런 일임을 이 소설이 알려준다. 소위 말하는 S.F 소설이라고 치부해도 될 것 같은 작품이 ‘행성어 서점’이다. 원래 과학은 인간미가 없어 보인다. 시니컬하고 서늘해 보인다. 화학이라는 과학을 선택한 작가를 선입관을 갖고 접근할 때, 마땅히 서늘한 작가, 어리숙한 초보자 등등의 냄새가 나야한다. 그런데 소설은 반전이다. 아니, 내 표현으로는 혁명이다. 아주 짧은 14편의 소설마다 나는 인간의 냄새를 느꼈다. 단지 평범한 인간의 냄새가 아니라 뭔가 불편하기 짝이 없는 인간의 냄새 말이다. 김초엽이라는 이름을 내 인식의 틀에 타이핑해서 새겨 놓았다. 14편의 짧지만 결코 짧지 않은 그녀의 이야기를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미래의 이야기를 오늘 나의 이야기로 전개한 작가의 글말들이 손을 놓지 못하게 한다. 14편 모두가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