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귐의 기도에 이르기 위한 5가지 질문 중 3,4 - 이영미 -
3. 기도는 하늘 보좌를 움직이는가? 끈질기게 요구해서 그것을 얻어내는 것에 관한 비유 중 과부와 재판관의 비유와 못된 친구의 비유가 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그 비유는 과부와 친구처럼 무언가를 끈질기게 요구하듯 하나님께 요구하라는 비유가 아니고 악질적인 인간도 간청하면 마음을 바꾸는데 하물며 가장 선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에 얼마나 기꺼이 응답하시겠냐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 기도로 하나님을 바꾸려 하지 말고 하나님의 응답을 든든히 믿고 구한 것은 이미 받은 줄 알고 감사해야 한다. 요구할 것이 없어지면 비로소 침묵하게 되는데 이를 통해 진정한 기도가 시작된다. 침묵 후 새롭게 시작하는 기도는 성령과의 깊은 사귐을 통해 나의 영이 충만하게 되는 과정이며, 하나님 안에서 나의 거짓된 모습을 발견하고 참된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기도는 대결과 투쟁이 아니라 사귐이라는 생각을 잊지 말고 하늘 보좌를 움직이려 하지 말고 자신의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 -- 기도의 응답이 항상 yes만 있는 것이 아닌 것을 알고 no와 wait의 의미를 깨달아야 한다. 내 생각으로 no와 wait이지 하나님의 계획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을 요구하고, 때에 따라선 하나님의 선한 뜻을 위함으로 포장하기도 하는 교활함을 버리고 거짓된 모습이 아닌 참된 모습으로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4. 쉬지 않고 기도할 수 있는가?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은 항상 하나님과 동행하라는 말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을 만나고 함께 살아가는 것, 그것이 쉬지 않는 기도의 삶이다. 그러므로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명령은 항상 하나님과 사귐으로써 그분과 하나됨에 이르러, 삶 전체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이 되도록 하라는 뜻이다. 그러나 생활 자체가 기도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은, 따로 시간을 내 기도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기도에 전념하는 시간 없이 모든 시간이 온전하게 제물로 드려질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잘못이다. 하루에 일정한 시간을 내어 일상 생활을 멈추고 하나님과 깊이 대면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즉 바람직한 기도란 충분한 시간을 내서 하나님과 갚은 사귐에 저념하는 숩관을 유지하면서 그 기도의 힘으로 하루 종일 하나님과 동행하며 산제물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기도의 삶’과 ‘삶의 기도’를 통합시켜야 한다. 인류가 겪고 있는 문제들은 하나님이 게시지 않아서 생기는 것도, 하나님이 무력해서 생기는 것도 아니다. 그분의 뜻을 위해 자신을 온전히 드리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사귐의 기도는 기도자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고 그 뜻이 이루어지도록 자신을 내어 드리게 한다.
--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시간도 가져야 하며, 일상생활에서는 항상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세가 바로 쉬지 말고 기도하는 자세이다. 새벽기도를 함으로 내 하루치 분량의 기도를 다했다 생각했던 나의 모습이 부끄럽다. 이런 잘못된 자세 때문에 “기도의 삶”과 “삶의 기도”가 통합되지 못했던 것이다. 이렇게 통합되지 못하니 “나를 보내소서” 하고 하나님의 도구가 되지 못했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