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인환 권사님을 추모하며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했을 때 나라가 한 번 들었다 놓은 것 같은 신드롬이 있었습니다. 종교를 초월하여 그 분의 선종에 대한 존경의 예를 보낸 것은 아마도 영웅이 그리운 시절이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서글픈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어느 일간 신문에 '가장 예수님처럼 산 사람'이라고 김추기경을 극찬한 것을 기억합니다. 저는 지난주에 김수환추기경에 비하면 일생의 삶이 참으로 초라하고 보잘 것이 없는 생애를 영위하셨지만 도리어 종에게는 더 김수환추기경에 비해 더 '예수님처럼 사셨다'고 말하기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말할 수 있는 안인환권사님을 하나님의 나라에 파송했습니다. 극도의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권사님의 젊은 시절에 삶의 굴곡이요, 가슴 아픈 족적과도 같은 연탄가스 사고의 후유증으로 인하여 그렇게 육체의 질고를 겪고 사셨던 권사님, 설상가상으로 둘째 아들의 청천벽력과도 같은 사고로 인한 또 다른 불행을 경험하셨기에 인간적인 생각으로 말하면 수없이 하나님께 등질 수 있었던 권사님이셨지만 도리어 그 모든 어려움을 일사각오의 신앙으로 극복하셨던 권사님을 종은 또렷이 기억합니다. 당신의 쌀독에는 한 줌의 끼니만을 이을 수 있는 경제적인 압박이 있었지만 그마저도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하여 퍼 주기에 인색함이 없으셨던 정말로 바보 같은(?) 권사님이셨고, 종이 직전교회에서 목회를 할 때 항상 말씀에 은혜를 받았다고 예배 뒤에 이슬 같은 눈물을 흘리시며 감격해하셨던 권사님이 그 눈물이 오늘따라 더 기억에 있습니다. 추운 어느 겨울날 날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하여 냉골에서 주무신다는 것을 알고 심방하여 방에 들어가 그 일을 확인하고 권사님의 손을 붙잡고 제대로 목회하지 못한 죄송함 때문에 울었던 그 날, 도리어 제 손을 붙드시고 인자한 웃음으로 염려를 드려서 죄송함을 표하시던 권사님을 제가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또 어느 날 건강이 극도로 악화되어 그렇게도 사랑했던 교회에서 이제는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상태가 되셔서 위로하기 위해 심방한 어느 날, '지금까지 지내 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를 찬송할 때 빨갛게 충혈 되어 눈물을 흘리시면 찬양한 뒤에 조그마한 목소리로 '목사님, 한 번 더'하시며 찬송을 요청하시던 그 순결한 권사님의 신앙을 이 종이 어찌 반이나 따라갈 수 있겠습니까? 이번에 장례를 인도하며 교우에게 전해들은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이제는 거의 자리보전을 하시는 상태에 누워 계시는 절망의 상태였지만 그 와중에도 성경을 읽는 것만큼은 양보하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치며 떨리는 몸으로 성경을 붙들고 읽으셨다는 권사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종은 왠지 모르는 희열이 몰려왔습니다. 김수환추기경의 선종을 경험하며 왜 개신교에는 저런 사람이 없을까? 의 자괴감이 있었는데 종이 이번에 권사님을 하나님의 나라에 파송하면서 그 자괴감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권사님은 김수환추기경에 비해 절대로 조금도 부족함이 없이 예수님처럼 사셨던 분이셨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안인환권사님! 당신은 진정으로 예수님처럼 사셨던 분이십니다. 권사님을 영접하고 맞이하신 주님은 분명히 스데반이 순교할 때 그랬던 것처럼 일어서서 영접하셨을 것을 종은 믿습니다. 안인환권사님! 정말로 수고하셨습니다. 다시 뵐 때까지 우리 세인교회를 응원해주십시오. 그리고 편히 쉬십시오. 세인의 모든 지체는 권사님을 사랑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