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단

제목[서평]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사람2024-03-27 10:36
작성자 Level 10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사람



   저자 유기성 목사


2009년 7월에 세인이 읽어야 할 책입니다. 


'나’를 포기해야 내 안에 주님이 들어오신다.

‘내 자아’로 가득찬 당신 마음엔 주님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요 15:4).


자기 죽음과 십자가를 통과한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예수 믿는다는 것은 지극한 평안과 사랑과 행복과 자유입니다.



|프롤로그|


예수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을 만나십시오!


최근 어느 목회자 성경연구 모임으로부터 강의를 부탁받아서 갔다가 한 목사님으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목사님의 리더십 유형은 무엇입니까?”

아마 그 목사님께서 저희 교회에 오셨다가 저를 보신 모양인데, 제 인상이 큰 규모의 교회를 담임할 목사로 보이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때부터 제게 꼭 묻고 싶은 질문이었다고 합니다. 분명히 카리스마 형 리더십은 아니고, 그렇다면 교인들을 잘 섬기는 리더십인지, 아니면 부교역자나 평신도 리더에게 맡기는 방임형 리더십인지 궁금하셨던 것입니다.

저 역시 순간 제 리더십에 대해 명확히 드릴 말씀이 없었습니다. 그 어떤 유형이라고 말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저도 잘 모르겠다는 것이 제 생각이었습니다. 그때 순간적으로 떠오른 것은, 만일 그런 유형이 있다면 교인들이 ‘계속해서 예수님을 바라보게 하는 유형’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제가 지금까지 해온 목회이고 또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믿음의 여정

저는 3대째 목사입니다.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는 순간 목사로 바쳐졌습니다. 저 같은 사람은 순순히 신학교에 가든지, 아니면 무지하게 매 맞고 신학교에 가든지 둘 중 하나라는 말에 저는 일찌감치 목사가 될 운명을 순순히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어려서부터 교회에 대해 회의가 많았습니다. 어려서부터 제가 보아온 것은 다투고 싸우는 교회의 모습이었습니다. 어떻게 늘 싸움뿐이었겠습니까만 아이들에게는 좋았던 기억보다 부모가 싸운 기억이 더 선명하게 남는 것처럼 어린 제게 교회 어른들은 늘 싸우는 사람들처럼 보였습니다. 어린 시절 저에게 가장 무서운 사람은 장로님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신학교 4학년 때 심장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저의 장인도 목사였는데, 제 아내가 대학 들어갈 때 간암으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목회자의 삶은 너무나 힘든 삶이었습니다.

저는 목사 안수를 받을 때 기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싸우는 자리에 제가 서야 한다는 것이 마음을 무겁게 했습니다. 안수 받기 전날 밤거리를 하염없이 걸었습니다.

“정말 목사가 되어야 하나?”

이 모든 문제의 핵심은 제가 어려서부터 예수를 믿은 것 같지만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알지 못했다는 데 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때 고등부 예배를 드리는 가운데 예수님이 모든 믿는 사람 안에 계시다는 설교를 들었습니다. 그것은 제게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 저는 예수님께서 제 안에 계시다는 것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신학교에 들어가면 예수님을 만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목사가 되면 예수님을 만날 줄 알았습니다. 그렇지도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했는데도 얼마든지 목회할 수 있고, 심지어 목회 잘한다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정말 두려운 일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주님인가?

아버지가 목사였기 때문에 저 역시 한동안 ‘작은 종’이었습니다. 그러나 교인들이 그렇게 불러주었을 뿐이지, 사실 저는 주(主)의 종이 아니었습니다. 종치고 저 같은 종은 없었습니다. 신학도 하고 교회 봉사도 하고 목사까지 되었지만 주님이 지시하시는 대로 한 것이 아니라 제가 결정해서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했습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사는 사람을 종이라고 하지는 않지요.

저는 신학생 때, “예수님 한 분이면 충분합니다”라는 고백을 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이 고백의 정확한 의미도 몰랐을 뿐 아니라 이 말이 마치 목회에 실패한 사람의 변명처럼 들렸습니다. 그 당시 제 마음의 소원은 큰 교회 담임목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목회에 성공하려면 학력도 경력도 영력도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하여 열심히 공부하고 실습도 좋은 교회에서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것이 잘못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만일 “예수님 한 분이면 충분합니다”라고 하면 성공하는 목회에 대한 꿈을 포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너는 나 하나면 충분하다면서?”라고 말씀하실 것 같았습니다. 제 마음 깊은 곳에서는 “예수님이 나의 주님이십니다! 나의 왕이십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일 내가 원치 않는 길로 나를 인도하시면 어떻게 하나 하는 불안함이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단 하나였습니다. 제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알지 못했을 때, 은밀한 시간은 죄짓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알고 난 다음, 은밀한 시간은 은밀한 은혜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나는 죽고 예수로 산다는 것

그리스도인은 이제부터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사람’입니다. 저는 어떻게 해야 자신이 죽는지 고민했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깨달은 것은 주님이 이미 십자가에서 그 일을 이루셨고 우리에게 그 놀라운 일을 보여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롬 6:6,8)


하나님께서는 제 자신에 대해 절망하게 하시고 “나는 죽었습니다!”라고 선언하게 만드셨습니다. 그 죽음을 경험하도록 이끄셨습니다. 결국 “하나님, 유기성은 죽었습니다”라는 진심어린 고백이 나오기까지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린 것입니다.

십자가가 ‘나는 죽고 예수님으로 사는 능력’임을 알게 되면서 제 삶과 목회는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저는 예수님과의 친밀한 관계에 눈떴습니다. 예수께서 왜 “네가 죽어야 한다”라고 하시는지 깨달았습니다.

그때부터 주님의 역사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목사인 제가 하려고 발버둥치는 목회를 한 것, 완전히 성령님께 복종하며 목회하지 못한 것이 문제였다면, 이제는 제 힘으로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만나도 주님의 뜻이라고 깨달으면 순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미 내가 죽었기 때문입니다. 두려움도 없고, 평가에 대해서도 자유하고, 오직 예수님만 바라볼 수 있습니다.


예수 안에서 죽고 예수의 생명으로 사는 사람

저는 1984년 군목 훈련 중 중상을 입고 응급수술을 받을 때,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체험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죽고 예수님으로 살며’ 목회하는 삶에 대해 날마다 저를 훈련시키셨습니다. 지금도 저는 그 훈련을 받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부목사님 한 분을 충원할 상황이 되어서 하나님께 ‘사역도 잘하고 설교도 잘하고 신실하고 인물도 좋은’ 목사님 한 분을 보내주시기를 기도하던 중에 갑자기 “너마저 그렇게 기도하면 어떻게 하느냐?”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모두 다 신실하고 일 잘하고 설교 잘하는 목사만 찾으면 실력이 모자라고 설교도 잘 못하고 인상도 좋지 않은 목사는 어디로 보내야 하느냐?”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생각해보니 모든 조건을 두루 갖춘 좋은 사역자는 항상 소수였습니다. 그러자 “그렇다면 ‘아무도 데려가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제게 보내주세요!’라고 기도해야 하나?” 하는 고민이 생겼습니다. 저는 제 생각을 내려놓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실 사람을 보내주십시오. 어떤 조건을 달지는 않겠습니다. 어떤 사람을 보내주시든지 훌륭한 주의 종이 되도록 잘 섬기겠습니다. 하지만 단 한 가지, 예수님 한 분이면 충분한 사람, 예수님 안에서 죽고 예수님의 생명으로 사는 것이 분명한 사람이어야만 합니다!”


십자가에서 죽은 사람

저는 최근 저희 교회 교역자 기도모임에서 부교역자들에게 두 가지 사실을 공개적으로 회개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첫째, 그동안 제 힘으로 부교역자들을 변화시키려고 했던 것을 회개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교역자들을 친히 가르치고 이끄신다는 것을 제가 온전히 믿지 못했음을 회개했습니다. 제 안에 제가 안 하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예수님 대신 제가 부교역자를 가르치려 애썼던 것입니다. 그 결과는 제게도 부교역자들에게도 항상 좋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으로 저를 깨우쳐주셨습니다. 이제는 부교역자들을 주님께 맡길 수 있습니다.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요일 2:20,27)


둘째로, 저는 부교역자를 능력으로 평가하고 있었던 것을 회개했습니다. 겉으로 표현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계속 교역자들을 평가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여전히 예수님을 신뢰하지 못했고 목회를 사람의 능력으로 하는 줄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주께서 그런 저의 마음을 기뻐하지 않으심을 깨달았습니다.

사역자를 보시는 하나님의 기준은 달랐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전 1:27-29)


하나님께서는 그가 오직 십자가에서 죽은 사람인지 찾으셨습니다.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하느니라 (고후 4:10-12)


이제부터는 저도 교역자들에게 “사역을 잘하시오. 설교를 잘하시오”라고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사역에서도 설교에서도 그 자신이 예수님과 함께 죽었음을 보여달라고 하기로 했습니다.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사람

저의 공개적인 회개 이후 많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부교역자들 앞에서 제가 죽으니까 주님이 역사하시게 된 것입니다. 성령의 기름부음이 부교역자들에게 동일하게 임했습니다. 부교역자들이 진정한 동역자가 된 것입니다. 눈물이 많아졌고, 기도가 깊어졌습니다. 교우들을 사랑하고 섬기는 마음이 달라졌습니다. 제가 없는 주일에 부목사님들의 설교를 통해 교우들이 더 큰 은혜를 받는 모습을 봅니다. 이제는 날마다 주님으로부터 배운 것들을 함께 나누며, 더 많은 주의 종들이 일어나기를 소원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이 책을 통해서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사람의 능력, 십자가의 능력을 경험하고 함께 나누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모든 영광을 오직 하나님께 올려드립니다.


선한목자교회 믿음의 실험실에서

유기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