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제천이라는 동네는 참 매력적입니다. 원래 ‘堤’라는 한자가 둑을 쌓는 제방이라는 의미가 있는 단어이기에 제천이라는 동네가 높은 지대에 위치해 있음을 암시합니다. 지대가 높다보니 공기가 너무 좋습니다. 동서남북 20km 이내에 물 좋은 계곡이 있습니다. 어느 계곡을 가든 물이 깨끗하여 사람의 마음을 치유하는 매력도 있습니다. 이런 좋은 동네에서 산지가 벌써 14년이 되어갑니다. 사실, 제천이라는 동네는 저에게는 생면부지의 땅이었습니다. 이곳에 들어올 때 단 한 명의 지인도 없었으니 말입니다. 제천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란 고등학교 시절, 한국지리 시간에 대학입시를 위해 머릿속에 암기했던 의림지라는 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저수지가 있는 곳, 충북선의 분깃점이 되는 도시, 한국 최대의 시멘트 생산지 정도, 아 하나 더 조선 시대에 유배지가 될 정도로 오지 중의 오지라는 것이 알고 있는 지식의 전부였으니 저에게 제천은 이방인의 땅과 같았던 곳입니다.
목회를 하는 목사라는 신분은 아골 골짝 빈들이라도 복음 들고 가야한다는 것에 세뇌가 되어 있었기에 계산하지 않고 들어온 이 땅에서 그럭저럭 14년이라는 세월을 흘려보내면서 주어진 시간의 되돌아옴이 없음을 알기에 뭔가를 남겨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조급함이 언제부터 들기 시작했습니다. 목회자로 살면서 남길 수 있는 것을 고민하면서 저에게 주어진 숙제는 책 읽기였습니다. 책은 너무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배신하지 않는 유일한 동료이었기에 믿고 나를 맡겼고, 긴밀한 데이트를 즐겼습니다. 메이지대학 교수인 사이토 다카시가 독서의 소중함을 말하는 대목에서 이런 글감을 던져주었는데 가슴에 담아 놓았습니다.
“어제보다 조금이라도 나아진 모습으로 살고 싶다면, 단단한 내공을 쌓아 삶의 어떤 위기에도 흔들리고 싶지 않다면 반드시 책을 읽어야 한다. 왜냐하면 아무리 열심히 산다고 해도 우리가 경험하고 배울 수 있는 지식과 경험은 한정되어 있어서 습관적으로 반복하는 생각과 행동에서 벗어나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창의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한 사람이 깊은 내공을 쌓는 데 필요한 재료의 질과 양을 더하는 행위이다.”
언젠가 불교계에서 이판승으로 존경받던 법정의 강의를 우연히 듣게 되었습니다. 그날 그가 전해준 불교적 영성에 대한 기억은 실은 별로 기억에 없는데 오히려 그가 내뱉은 한 마디에서 거룩한 분노가 일었습니다. 당시 정부에서 4대강 사업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불도저로 밀어붙이기를 하던 때였는데 그가 전언한 한 마디가 이러했습니다.
“개신교에서 믿고 의지하는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는 있는 그대로 자연을 보존하는 것일 텐데 그 창조의 섭리를 계승하고 보존해야 할 기독교 지도자 출신의 통치권자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연을 무시하고 파괴하고 있는데 그 원인은 토목 말고는 아는 게 없기 때문이다.”
당시 강연에 참석했던 자들이 치는 박수는 저에게는 불교에서 기독교를 향하여 내리치는 서슬이 시퍼런 죽비 소리처럼 들려 오금이 저렸던 아픔이 있습니다. 불교계의 사유함의 거목이라는 그의 말은 결코 타종교를 비하하거나 천박하게 매도하는 공격의 소리가 아니었습니다. 사이토 다카시의 말대로 무엇이 귀하고 아름다운 것인지를 아는 내공이었습니다. 거룩한 분노는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개신교 목사로서 공부하지 않는 게으름, 타성에 젖어 있는 상투성, 생각하지 않으려는 천박성과 전쟁을 벌여야 한다는 왠지 모를 사명감이었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글 모음은 3년 여 시간에 여행한 300여개 정도의 글 들 중에 27개를 선별한 것입니다. 현직 목사이기에 가장 그래도 잘 할 수 있는 것은 신학적인 저서들과 신앙적인 내용이 들어있는 도서들이겠지만, 쉽게 가는 길을 생짜배기 초짜가 선택해서야 발전이 있을까 싶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모두 세 꼭지로 이루어진 서평의 내용 중에 첫 번째 꼭지는 소설 부분입니다. 필자가 읽고 목양의 현장에서 귀하게 인용했던 글들 12권을 다루었는데 인문학적인 소양을 키워가는 데 적지 않은 자양분으로 저에게 적용된 글들입니다. 두 번째 꼭지는 인문, 사회과학의 글들 12편입니다. 자연과학에 약한 필자에게 그래도 역부족인 것은 있지만 함께 공유하고 싶은 글들은 인문, 사회 영역이기에 많은 통찰을 주었던 책들을 추려 보았습니다. 정리하면서 왜 이 시대에 더 더욱 인문, 사회 과학에 주목하고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하는지 절감했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 꼭지는 청파 교회를 시무하는 김기석 목사의 글 읽기 모음들입니다. 김 목사의 글들을 모은 이유는 설교를 하는 데 이골이 난 필자이기에 나도 모르게 설교 듣기에 익숙하지 않은 못된 습성을 고치기 위해 일주일에 사이버 상으로 꼭 들리는 세 명의 현직 목회자 중의 한 명이 바로 김기석 목사이기 때문입니다. 또 그의 설교와 글들은 필자의 성향과 크게 엇나가지 않아 공감하는 부분이 많다는 점도 그의 글을 택하게 된 동기입니다. 개혁적 모드를 갖고 한국교회의 아픔들을 진단하지만 비인격적인 모드가 아닌 가장 정중한 예의를 갖고 그 아픔들을 쓸어 담으려고 노력하며, 동시에 나름의 대안 제시를 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설교를 청파교회에 가면 듣게 됩니다. 그의 주옥같은 글 3권을 덧붙였습니다. 김기석 목사의 아름다운 글에 累(누)가 되지 않을까하는 두려움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그래도 함께 공유해야할 촌철살인들이 主(주)를 이루어 필자 혼자만 간직하기에는 너무 이기적인 것 같아 용기를 내 보았습니다. 개인적인 욕심이 있다면 그의 글에 대한 서평을 빼놓지 않고 기록하는 편이라 상당수 그의 글에 대한 목사로서의 감회를 노트해 놓았는데 기회가 되면 그의 글에 대한 감흥들만을 다룬 책을 후속으로 내놓고 싶은 마음입니다.
제천이라는 동네는 참 매력적입니다. 그 이유는 촌스럽기 때문입니다. 이런 촌스럽기에 그지없는 동네에서 촌 발을 날리는 무명의 촌스러운 목사가 용기를 낸 글들이 독자들에게 조금이라도 공유할 수 있는 분모가 있다면 이 보다 더 큰 기쁨이 또 있겠는가 싶어 첫 번째의 책을 내놓습니다. 이 책의 출간을 위해 저자로서의 첫 번째 발걸음이기에 말 그대로 위험부담(?)이 있는 졸필임에도 불구하고 부족한 사람의 글을 아름다운 모습과 시선으로 격려해 주시고 귀한 책으로 엮어 주신 도서 출판 동연의 김영호 사장님과 더불어 편집부에 심심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더불어 부족한 사람의 기도 후원자로 든든히 서 준 제천세인교회 지체들에게 무한 감사를 드리고, 항상 실력 없는 동기 목사를 위해 구약의 난점들을 귀찮게 질문할 때마다 내색하지 않고 고민을 해결해주고 용기를 북돋아 준 고마운 친구 한세대학교의 차준희 교수, 그리고 모교인 서울신학대학교에서 상투적, 교리적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죽은 시인의 사회’의 존 키팅처럼 후배들을 몰아치고 있는 친구 이용호 교수가 진정성이 있는 추천사를 써주어 가뜩이나 졸필인 책을 빛나게 해준 것에 대하여 두 친구에게 심심한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더불어 인천 괭이부리마을에서 교회가 타인을 위해 존재할 때만 교회라는 본회퍼의 일갈대로 평생을 도시 빈민들과 함께 하며 헌신한 친구 새결 교회 이상선 목사는 필자의 서평집 출간에 적지 않은 수고를 아끼지 않은 고마운 친구입니다. 그의 사역에 진정성을 갖고 존경한다는 표현으로 감사를 대신 전합니다.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가난한 신학생에게 인생을 걸어준 바보 같은 짓을 했지만 결혼 이후 지금까지 항상 냉철한 야당인으로 필자가 교만해지지 않도록 올곧게 세워주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눈물로, 엎드림으로 못난 남편의 부족함을 메워주며 영원한 지지자가 되어준 아내 심재열은 오늘 이 글을 쓰게 해준 최고의 영적 동반자입니다. 차제에 아내에게 제대로 해 보지 못한 남편으로서의 따뜻한 사랑의 언어도 전해 봅니다. 겸하여 아비가 졸업한 서울신학대학원에서 지성과 감성과 의지를 겸비한 사역자가 되기 위해 정진하고 있는 사랑하는 아들 이 요한 전도사가 부족한 아비의 글을 감동으로 느껴주어 훌륭한 목회자로 서 주기를 기대해 봅니다. 끝으로 장모님이신 김상임 권사님은 팔십 중반의 연로하심 때문에 당신의 육체를 가누기도 힘이 든 노환으로 고통을 받고 계심에도 불완전함 투성이인 못난 사위의 목양을 위해 생명 걸고 중보 해 주시는 가장 강력한 영적 응원자이십니다. 효도 한 번 제대로 못한 사위이지만 사랑한다고 전함으로 감사의 뜻을 전해드립니다.
한국교회는 필자의 영원한 짝사랑 대상자입니다. 무너져가고 있는 한국교회를 보며 그 가능성의 한계를 넘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엎드림이기에 그 엎드림을 책 속에 담으려고 했습니다. 졸필인 이 책을 넘기는 모든 독자들이 한국교회의 회복을 위한 같은 엎드림이 있기를 두 손 모아 봅니다.
제천이라는 촌 동네를 사랑하며 목회하는 사람 이강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