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지금, 여기(now and here)에서 목사로 살면서 자의반 타의반 얼굴이 너무 화끈거릴 정도로 부끄러워 도무지 회중 앞에 서기가 너무 싫은 때가 있습니다. 저만 그런 것이 아니라 웬만한 상식의 목양을 감당하는 목회자라면 아마도 이런 마음은 공히 같은 것 같습니다. 청파 교회 김기석 목사가 초창기에 쓴 ‘가시는 길을 따라 나서다.’에서 그래서 그도 이렇게 갈파했던 진언이 가슴에 남습니다. “가끔은 주일을 맞이하는 것이 고문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매주 설교를 준비하기도 어렵거니와, 그 말이 사람들의 가슴까지 도달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절감하기 때문입니다. 설교자의 가장 큰 번민은 입을 다물고 싶을 때조차도 무언가를 말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자기 삶을 통해 뒷받침되지 못하는 말의 부박함이 떠오를 때면 어딘가로 달아나고 싶어집니다.” 2주 전, 입에 담기도 너무 민망한 일이 대대적인 보도를 통해 알려졌습니다. 독일 유학파 출신의 박사이자 목사인 자가 본인의 딸을 재혼한 여자와 상습적으로 폭행한 끝에 살해하고 1년 동안이나 백골상태로 방안에 방치한 엽기적인 기사입니다. 도무지 정상적인 사람의 모습을 갖고서는 행할 수 없는 일을 자행했다는 것도 이해가 안 되는 충격이지만, 그 살해 당사자가 제 출신 신학대학교 후배라는 것을 알고 한 동안 유구무언의 멘붕에 빠졌습니다. 이럴 때 목사가 설교를 한다는 것이 정말로 고문과도 같습니다. 어떻게 말을 해야 하지, 어떻게 이해를 시켜야 하지, 어떻게 그럴듯하게 이 참담함을 헤쳐 나가야 하지 등등의 괴로움에 사로잡혀 있는 어간, 명절 연휴 기간 읽고 있었던 책에서 다음과 같은 글을 발견했습니다. “나는 최근에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글을 읽었다. 그는 나치가 밤에 무슨 짓을 하고 있든 그들은 태양을 통제할 수 없었노라고, 그리고 수용소에서 인간의 악의 관점에서 볼 때 최악의 날들이 계속되고 있을 때조차도 태양빛은 막사의 판자를 뚫고 들어왔노라고 말했다. 인간의 잔인함과 사악함에도 불구하고 태양과 달과 나무와 땅의 하나님은 여전히 일하고 계셨다.” (엘리 위젤의 ‘샴고로드의 재판’ P, 211에서) 크리스채너티 투데이 한국어판에서 2016년 추천 도서 베스트 5에 선정된 ‘샴고로드의 재판’에 나오는 이 글을 읽다가 번뜩 스쳐오는 감흥이 있었습니다. 캄캄한 동서남북의 절망 수용소 속에서 하나님은 여전히 일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그 일하심의 증거가 희망을 끄지 않는다는 것임을. 벼락처럼 다가온 은혜로 인해 힘들고 지친 마음을 다잡이하고 일어서기로 했습니다. 하나님은 목사가 도무지 설교를 할 수 없는 최악의 영적 기상도의 조국교회이지만 아우슈비츠에서 그렇게 하셨던 것처럼 하나님의 방법으로 교회를 통한 희망을 끄지 않으실 것을 끝까지 믿고 다시 ‘쿰’ 하려 합니다. 내일부터 사순절이군요. 주님이 나를 위해 전부를 주신 스타트라인의 날. 무겁지만 감사함으로 맞이하겠습니다. 지체들에게 평화가 임하기를. 키리에 엘레이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