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의 땅에서 그리스도의 노래를 부르다 김상근 연세대학교 신학과 교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으니 스탠리 존스의 명저 「인도의 길을 걷고 있는 예수」의 옮긴이이자 김순현 목사가 공들여 번역한 스탠리 존스의 자서전 「순례자의 노래」에 ‘추천의 글’을 기고한 필자가 다시 이 책의 서평을 쓰는 것은 스탠리 존스에 대한 특별한 존경의 마음 때문이다. 명색이 선교신학 전공자인 필자로서도 감당할 수 없는 학문적 혜안(慧眼)이 그의 글 속에서는 보석처럼 빛난다. 또한 그의 문장은 신앙인으로서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믿음의 단계(고백컨대 필자에게는 한계처럼 보인다)를 간결하면서도 운치있게 보여준다. 남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자화자찬이 넘쳐나는 것이 자서전의 특성이다. ‘내가 이렇게 살면 좋겠다’는 기대가 지나치게 반복되면 ‘내가 진짜 이렇게 살았다’고 스스로 믿어버리는 최면에 걸리기 쉬운 글이 바로 자서전 혹은 회고록이다. 이 글을 읽는 설교자들도 비슷한 경험을 했으리라 믿는다. 설교의 예화로 사용하기 위해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몇 번 하다보면 스스로에게 걸었던 기대가 어느덧 사실로 포장되고, 그 사실이 진실인 듯 확대되는 현상을 겪었을 것이다. 그래서 모름지기 예화를 사용할 때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 소위 자서전이나 회고록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는 ‘신앙 간증’ 또한 조심스럽게 사용해야 한다. 은혜를 위한 방편이 자칫 일종의 사기극으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잘못된 자서전이 횡횅하는 세태 속에서 스탠리 존스의 자서전이 의미를 갖는 것은 자신의 삶을 회고하는 그의 태도 때문이다. 스탠리 존스는 자신의 신앙 간증이라고 할 수 있는 자서전에서 여든 두해에 걸친 복음전도자로서의 생애를 이렇게 요약한다. “나는 표창을 수없이 받았고, 명예 학위를 일곱 개나 받았다. 나는 ‘올해의 감리교인’에 선정되기도 했는데, 복음 전도 집회를 갖고 있어서 표창식에 참석할 수가 없었다. 내 딸이 나를 대신하여 표창을 수상했다. 또한 나는 노벨평화상 후보로 노르웨이 의회에 두 번이나 추천되었지만, 마틴 루터 킹이 그 상을 받게 되어 기뻤다. 나보다는 그가 노벨평화상 수상에 적합한 인물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간디평화상’을 수상했고, 내가 쓴 책 중에서 「인도의 길을 걷고 있는 예수」와 「충만한 삶」은 1백만 부 이상 팔렸다. 나는 황제도 여럿 만났고, 왕도 여럿 만났고, 대통령도 여럿 만났고, 수상도 여럿 만났다. 하지만 회고하건대 이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보다는 내가 복음전도자로 세워질 때 받은 영예에 감사하는 마음이 훨씬 크다. (미국 감리교회) 감독이 되는 의식에 스물 네 시간동안 빠져 있을 때에는 내 영혼에서 그 영예가 조금 씻겨 나갔지만 말이다. 나는 그 위기를 아무 후회 없이, 아무 갈등 없이, 충성심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견뎌냈다. 그분께서 나의 과실과 실책을 용서하고 사랑으로 묻어 주셨다”(p. 746). 그렇다. 이 책은 한 은퇴 선교사의 성공과 실패에 대한 장엄 미사곡이다. 저자는 자신의 성공에 자만하지 않고 자신의 실패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저 담담하게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고백할 뿐이다. 그 중에서 가장 큰 은혜는 그가 복음전도자로 세워졌을 때라고 말한다. 필자는 이 서평을 쓰기 위해 800쪽에 달하는 「순례자의 노래」를 다시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나는 지금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가?’ 명색이 복음전도자로 부름 받았으면서 지금 내게 부여된 대학 교수라는 특수한 신분에 안주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필자는 지금 어떤 순례자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지. 아니, 지금 순례의 길을 걷고 있기나 하는 것인지.
평범한 환경 속 비범한 생애
많은 기독교 자서전의 서두는 대체로 비슷하다. 좀 심한 경우에는 “나는 죄인의 괴수였다”로, 일반적인 경우에는 “나는 방탕한 삶을 살았다”로 시작한다. 기독교 자서전의 영원한 고전인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첫 부분이 그렇지 않은가. 그러나 스탠리 존스는 자신의 비범한 삶을 “내 인생 초기의 모든 것과 그 환경은 평범했다”고 고백함으로써 평범한 삶을 시작했거나 지금도 그런 삶을 이어가고 있는 우리에게 큰 위로를 준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삶이 평범했다 할지라도, 순례의 길에서 불렀던 노래의 주제는 결코 평범하지 않았음을 강조함으로써(p. 43) 자신이 절대 평범하지 않은 사람임을 드러내고 있다. 물론 그 노래의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였다. 스탠리 존스는 미국의 동부, 그러니까 뉴욕과 워싱턴 사이에 있는 제법 큰 도시인 볼티모어 출신이다. 그는 그 도시의 프레드릭 에버뉴 감리교회에서 신앙 생활을 시작했다. 기독교 신앙의 가장 중요한 가치인 회심 경험은 인근 메모리얼 교회에서 로버트 베이트먼(Robert Bateman)이 부흥회를 인도할 때 경험했다고 회고한다. 이때부터 스탠리 존스의 “생명”이 시작되었고, “순례자의 노래는 거기서 시작되었다”(p. 49). 회심 경험은 사춘기의 질풍과 파도를 넘던 17살 때 찾아 왔다. 그 때부터 그는 “예수님의 북소리에 맞춰 행진하면서”(p. 62) 순례자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스탠리 존스는 복음 사역자로 훈련받기 위해 애즈베리 신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볼티모어 법원 부속 법률 도서관에서 일하기도 했고, 생명 보험의 영업사원을 하며 고단한 다리품을 팔기도 했다. 그는 그렇게 자력으로 학비를 마련한 다음 신학교에 입학했다. 그는 탁월한 설교자였다. 언제 어디서든지 복음을 전파할 준비가 돼 있었다. 덕분에 인도의 비판적인 변호사 모임과 같은 적대적인 청중 앞에서도 성경책을 들고 담대하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증언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이 같은 설교자로서의 비범성은 그가 애즈베리 신학교 재학할 당시부터 진가를 드러내고 있었다. 스탠리 존스의 신학교 시절에 빠트릴 수 없는 경험은 한나 스미스(Hannah W. Smith)의 「그리스도인의 행복한 삶의 비결」(The Christian? Secret of a Happy Life)을 읽으면서 촉발된 “성령의 체험”이다. 97쪽에서부터 114쪽까지 서술된 그의 “성령 체험”은 그것을 사모하는 사람들에게나 그것의 학문적 의미를 분석하는 종교심리학자에게나 매우 유익하고 흥미로운 정보를 담고 있다. 그는 교수로 남아달라는 애즈베리 대학 총장의 달콤한 제안을 사양하고 아프리카 선교를 자원한다. 그런데 미국 감리교회 선교국은 그를 아프리카가 아닌 인도로 파송한다. 인도에 대한 아무런 사전 지식도 없었는데 말이다. 특별한 훈련은 물론 선교에 대한 기초적인 훈련조차 받지 못한 채 그는 “힌두 문법책 한 권, 영국 금화 40파운드, 영국을 경유해 봄베이(지금의 뭄바이)로 가는 배 표 한 장, 그리고 한 차례의 악수를 받고”(p. 138) 선교의 길에 오른다.
선교 토착화를 위한 노력
선교 역사를 전공한 필자에게 이 책의 5장 “적응, 어디 정도까지?”는 학문적으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스탠리 존스는 인도에서 기독교 복음이 현지에서 어디까지 토착화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 그리고 토착화될 수밖에 없는 선교 현지의 복음이 반드시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은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것은 한 마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선교 현지에서 선교사는 반드시 토착화돼야 한다. 그것이 신학적인 주제이든지 제도적인 문제이든지 반드시 토착 문화와 지역 정서에 부합하는 복음을 전해야 한다. 스탠리 존스가 선택한, 아니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토착화 과정은 인도인들의 언어를 사용하고, 인도의 신자들로 하여금 민족 독립 운동에 투신할 것을 독려하고, 원탁회의를 통해 인도의 지식인들과 함께 대화하는 것이었다. 일방적인 전달의 선교가 아니라 선교 현지를 배워가는 선교를 지향한 것이다. 그의 첫 시도는 불가촉천민, 이른바 달리트(Dalit)로 불리는 인도 사회의 최하층 주민들 사이에서 시도됐다. 그러나 인도 지식인들의 조언으로 점차 선교의 접촉점을 상위 카스트로 옮겨간다. 시타푸르에서 활동하던 이 시기에 스탠리 존스 개인의 신상에도 몇 가지 변화가 생겼다. 인도의 교육 선교사였던 메이벨 로싱(Mabel Lossing)과 결혼한 것은 그의 인생에 기쁨이었다. 하지만 초기의 열정적인 사역을 견디지 못한 그의 육체는 선교 열정과 혼인의 기쁨에도 불구하고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다. 맹장염과 파상풍, 급기야 신경쇠약까지 더해져 선교사의 복무 연한인 10년을 다 채우지 못하고 8년 6개월 만에 미국으로 귀환 조치된다. 미국에서 뉴저지의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안식년 연구를 겸한 요양을 마친 존스는 1년 만에 다시 인도로 돌아간다. 하지만 인도로 가는 길에 들린 마닐라에서 학생 전도 집회를 인도하다가 다시 쓰러진다. 겨우 인도로 돌아와 산에서 요양을 계속하다가 러크나우에서 기적적으로 망가졌던 정신과 육체가 다시 소생하는 체험을 하게 된다. “새로운 생명의 세계”로 진입한 스탠리 존스의 복음 이해는 달라졌다. 그는 기독교와 예수 그리스도를 분리시키는 매우 심각하고 중요한 신학적 숙고를 마치고, 이를 그의 선교 사역에 적용하기 시작한다. 기독교와 그리스도를 분리시킨다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교회의 전통이 약화되기 쉽고 자칫 교회론이 부정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스탠리 존스가 추구했던 “그리스도 우선주의”의 핵심은 따라서 매우 신중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그는 자신의 신학을 이렇게 정리한다. “우리의 (유럽과 미국의 기독교) 문명 속에 여러분이 찾는 좋고 아름다운 것이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여러분의 마음에 든다면, 그것을 취하십시오. 하지만 여러분이 갖고 있는 좋은 것을 지키십시오. 우리는 동양의 다양한 문화들을 서양 문화로 대체할 마음이 없습니다. 우리가 주려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뿐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에게도 선물이지만 여러분에게도 선물입니다. 여러분이 우리가 꽃피운 것보다 더 나은 문화와 문명을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꽃피운다면, 우리가 여러분에게 배우겠습니다”(p. 181). 그러나 이런 통찰력 있는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인도인들의 반응은 그렇게 뜨겁지 않았다. 스탠리 존스는 그들의 적대적 입장을 세 단계로 설명했다. 첫째, 인도인들은 선교사의 가르침이 참이 아니라고 부정했다는 것이다. 거의 조건 반사에 가까운 반대이다. 둘째, 조금 개방적인 인도인들은 선교사들의 말을 듣고 이렇게 말했다. “우리 종교에도 비슷한 가르침이 있습니다.” 결국 모든 종교가 같은 목적을 지향한다는 일반론으로 선교의 메시지를 거부한 것이다. 셋째, 마지막 단계에서 인도인들은 선교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선포하는 메시지와 당신이 살고 있는 삶은 일치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우리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도전이다. 특히 마지막 세 번째 도전 앞에서 우리는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우리는 우리가 믿고 선포하고 있는 복음의 삶을 살고 있는가. 과연 우리는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을 살고 있는가. 스탠리 존스는 인도인의 주장을 빌려 그리스도인 독자들의 반성을 촉구하고 있다.
핵심은 ‘그리스도 우선주의’
스탠리 존스는 당시 선교학계의 화두(話頭))였던 제이 엔 파쿠하(J. N. Faquhar, 옮긴이는 파쿠하를 “파커”로 번역했는데, 스코틀랜드 출신의 선교학자였던 그의 이름은 “파쿠하”로 표기하는 것이 좋다)가 제안한 “완성이론(Fulfillment Theory)”을 지지하지 않았다. 완성이론이란 힌두교 역시 기독교가 간직한 복음의 빛을 어렴풋이 포함하고는 있지만 기독교를 믿음으로써 힌두교의 흐릿한 복음의 빛이 밝게 빛난다는 것으로, 당대의 진화론에 근거한 선교 이론이었다. 당연히 힌두교 학자들은 반발했고 스탠리 존스는 이를 목격하면서 “완성이론”을 거두어 들였다. 그는 힌두교를 포함한 다른 종교에 대해 침묵하기로 결정했다. 대신 유럽인과 인도인의 인격을 차별없이 변화시키고 하나님의 나라를 현실로 만들어 가는 그리스도의 복음만을 선포하기로 한다. 그는 그것을 “서양 문화와 서양 기독교 형식에서 해방된 그리스도”(p. 211)라고 요약한다. 스탠리 존스는 1949년부터 2년 주기로 인도와 그 외 세계 전역을 번갈아 순회하며 복음 전파 사역자의 임무를 계속한다. 한 마디로 그는 국제적인 명성을 가진 복음 전파자가 된 것이다. 스탠리 존스는 이런 자신의 명성을 활용해 세계 각국과 각 종교 단체, 교파 간의 알력과 분쟁이 있는 곳에 달려가 평화의 중재자를 자임한다. 진주만 공습(1941년)으로 시작된 일본과 미국 간의 전쟁을 막으려는 그의 노력은 흥미진진하다. 뉴기니를 일본에 예양함으로써 평화를 모색하는 방법이 영락없이 제국주의의 방식을 닮았지만, 그래도 그의 선한 의지는 높이 살만 하다. 콩고에서의 평화 사역과 분쟁 조정 노력, 인도의 독립 운동을 지켜보면서 마하트마 간디와 교류했던 여러 시기들, 간디의 비폭력 운동 분석이 마틴 루터 킹 목사의 흑인 인권 운동에 미친 영향 등 숨 가쁜 국제 정치의 현장에서 한 복음 전파자가 기울였던 평화의 노력은 개인주의적이며 탈정치적이기만 한 우리들의 신앙 자세를 부끄럽게 함과 동시에 되돌아보게 만든다. 필자가 특별히 감동적으로 읽은 부분은 스탠리 존스가 감리교회 총회에서 감독직(Bishop)을 사양하는 장면이다. 필자는 미국 연합감리교회(United Methodist Church)에서 “감독”으로부터 목사 안수를 받았고, 지금도 버지니아 연회에 소속되어 있다. 그래서 필자는 미국 감리교회의 감독이 어떤 자리인지를 잘 안다. 그 영광된 자리를 “복음 전파자”로 남고 싶다는 단순한 이유로 물리친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명예도, 돈도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그가 순례의 길을 오르며 불렀던 영원한 노래, 그리스도뿐이었던 것이다.
삶의 원동력 = 음표
이 책이 담고 있는 문학적 묘미는 따로 있다. 한 사람의 인생의 이면에 숨겨진 삶의 원동력이 저간에 알려지지 않았던 사건과 함께 하나 둘 그 비밀을 드러낸다는 점이다. 그 삶의 원동력을 스탠리 존스는 “음표”로 표현했다. 그가 불렀던 순례자의 노래에는 정확한 음표가 있었다. 정확한 음표가 없었다면 그것은 즉흥적인 휘파람이 되었거나, 아니면 많은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불협화음 밖에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손수 쓰고 직접 따라 불렀던 “음표”는 이 책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구체적인 신앙적 삶과 목회 프로그램을 소개하고 있다. 그것은 아슈람, 원탁회의(Round Table Conference), 중재 사역이다. 다소 지루하게 느껴지는 이 부분이 중요한 이유는 아슈람, 원탁회의, 그리고 중재 사역이야말로 스탠리 존스가 추구했던 사역의 근간을 이루고 있으며 출간된 지 40년이 지난 이 책이 다시 한국에서 번역된 실질적인 이유를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라는 강압적인 선교 구호가 난무하는 한국의 상황에서 스탠리 존스가 자신의 지켜야 할 “음표”로 사용했던 아슈람 제도와 원탁회의는 우리에게 합리적이면서 호소력있게 한국의 지성인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선교와 목회 프로그램의 모형을 제시한다. 이미 이런 제도를 다양한 방법으로 수용하고 있는 기관과 프로그램이 많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의 음표에 프로그램만 있는 아니다. 그가 불렀던, 아니 지금도 여든 세 살의 나이에 부르고 있는 순례자의 노래에는 “배려”라는 쉼표가 있고, “자유함 속에 훈련”이라는 박자가 있으며, 모든 사람이 “No!”할 때 “Yes!”를 외칠 수 있는 “신적 긍정”이 그 가사 속에 포함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실패를 실패로 인정할 수 있는 마침표가 있기에 그의 순례자의 노래는 단순히 흘러간 유행가가 아니라 기쁨과 슬픔의 마음을 모두 담아낸 승리의 노래가 될 수 있었다. 우리도 그런 힘찬 노래를 따라 부를 수 있으면 좋으련만!
한국 교회에 남긴 교훈
이 책을 읽는 또 다른 재미는 간간히 한국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는 것이다. 초대 한국 선교사의 아내였던 언더우드 여사의 순교와 장례식에 얽힌 이야기(p. 234)는 우리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한다. 스탠리 존스가 교파 통일을 주장하자 엉뚱하게 대통령의 권한으로 이를 시행하고자 했던 이승만 대통령과의 청와대 면담이나, 비극적인 하야(下野)와 망명 후 하와이에서 전직 대통령과 선교사가 만나는 장면(p. 571)은 숨겨졌던 우리 현대사의 한 장면을 드러낸다. 그러나 보다 실제적인 면에서 스탠리 존스의 「순례자의 노래」는 한국 교회에 기능적인 측면과 신학적인 측면에서 두 가지 큰 공헌을 할 것으로 보인다. 먼저 기능적인 면에서 스탠리 존스가 자신의 “음표”로 표현했던 원탁회의와 아슈람 제도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필자는 이 두 제도를 면밀히 검토해 한국적 상황에 적용시킬 것을 제안한다. 사실 원탁회의의 정신은 저자가 밝힌 대로 감리교회의 속회(장로교회의 구역예배) 정신에서 출발한 것이다. 필자는 스탠리 존스의 원탁회의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동양 정신의 공동체 의식에 출발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스탠리 존스가 제안한 원탁회의는 개인의 가치를 존중하고 자율적 의사결정이 합리성의 이름으로 보완되는 서양식 토론 문화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다. 사랑과 정(情)이 오가는 대화 공동체는 오히려 동양 문화에서 더 발전할 수 있었다. 이미 한국 교회의 보편적인 목회 프로그램으로 정착되고 있는 속회/구역 예배 사역이나, 이것이 이론화 과정을 거쳐 좀 더 체계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소그룹 목회(Small Group Ministry)”는 한국인의 공동체 문화를 잘 반영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스탠리 존스가 인도에서 성공적으로 시행했던 원탁회의를 한국적 소그룹 목회에 적용하는 실천적 방안에 대해 연구해 볼 것을 제안한다. 아슈람 제도 역시 한국의 기도원 문화와 잘 결합될 수 있을 것이다. 스탠리 존스가 아슈람 제도를 통해서 추구했던 영성의 세계는 통성, 금식, 새벽 기도와 사경회 형식으로 제한된 한국 기도원 문화에 새로운 대안으로 고려될 수 있을 것이다. 영성과 인성의 조화, 명상과 노동의 혼합, 개인과 가족의 병립, 그리고 기도와 실천적 삶의 합일을 추구하는 스탠리 존스의 아슈람 제도를 통해 우리들의 영성 문화를 재점검해 보는 것도 이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실제적인 도움이 될 것이다. 신학적인 면에서도 스탠리 존스의 「순례자의 노래」가 여러 가지 중요한 학문적 사색의 실마리를 제시하고 있다고 본다. 스탠리 존스는 권위적이지 않은 바르티안적인 메시지를 선포했던 감리교회의 토착화 선교 신학자였다. 스탠리 존스의 이런 모습은 바르티안적 메시지와 토착화의 균형있는 모습에 좋은 모델이 된다. 다시 말하자면 바르티안은 좀 더 토착화를 지향하고, 토착화를 지향하는 사람들은 좀 더 바르티안적인 간결한 복음 선포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또한 스탠리 존스가 평생 “노래를 불렀던” 「인도의 길을 걷고 있는 예수」는 이 땅에서 「한국의 길을 걷고 있는 예수」를 선포하려는 우리들의 노력으로 전환돼야 할 것이다. 복음이 한국과 만났을 때 어떤 문화적 현상을 동반하면서 토착화될 것인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 신학자들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 지를 숙고해야 할 것이다. 정말 좋은 책이다. 800쪽에 달하는 장문의 저서를 번역하느라 수고한 김순현 목사께 감사와 위로의 말씀을 함께 드린다.
김 상 근 연세대학교,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립대학, 에모리대학, 프린스턴 신학대학원(Ph.D.)에서 공부했다. 지금은 연세대학교 신학대학 교수이다. 책 속의 책
조지 맥도날드가 선교사가 되어 동양으로 막 떠나면서 키스 팔코너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 “실제적이고 유익한 믿음은 이와 같습니다. 첫째,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을 특별히 돌보신다는 것입니다. 셋째, 그러나 그 사람은 아무것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pp. 34~35).
그리스도인이 되는 게 어려운 일일까? 그렇지 않다.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는 게 어려운 일이다. 생명을 거스르며 사는 게 어려운 일이다. 폐가 숨을 쉬고, 마음이 사랑하는 게 어려운 일일까? 그것은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폐가 숨을 쉬지 않고, 마음이 사랑하지 않는 것이 어려운 일이다(p. 324).
책 속의 설교자료
「순례자의 노래」 스탠리 존스 지음/ 김순현 옮김/ 복있는사람 펴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
한 저명한 힌두교인이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한창 창궐하고 있는 콜레라와 전염병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잊었다. 그들은 지금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심지어 들에서 일하는 목동들조차 내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갈 때 이렇게 외쳐댔다. “이스 마시 카 아드미 자 라하 하이.” “예수 그리스도 인간이 지나가고 있다.” 나는 그들이 나를 선교 조직의 대리인이나 외국인으로 알아주지 않고, 나를 내 메시지의 중심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동일시해준 것이 그저 고맙고 감사할 따름이다. 나는 그 일이 기쁘고 황송해서 꼭 그렇게 되리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리라고 다짐했다(p. 163).
패배할 줄 모르는 기독교 정신
청나라에서 복음 전도 집회를 가지면서 겪은 일도 언급해야겠다. 청일전쟁 중에 나는 만주에서 복음 전도 집회를 갖고 있었다. 도시 전역에서 총싸움하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그리스도에게 항복할 사람을 청할 때에도 총소리가 들렸다. 청중 가운데 일부는 총알들이 윙윙 하고 그들 곁을 지나가자 벽 뒤에 웅크리고 앉아서 밤을 새웠다. 나는 한 여선교사에게 이렇게 물었다. “당신은 이런 위기에 어떻게 대처하나요?” 그러자 그녀가 웃으며 대답했다. “어떤 위기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우리는 지난 25년 동안 위기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우리는 어디에서 한 위기가 끝나고 다른 위기가 시작되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그 웃음은 억누를 수 없는 기독교 정신이었다. 기독교 정신은 패배할 줄을 모른다. 그것은 절망적인 것처럼 보이는 환경에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웃는다(pp. 236~237). 세상의 질병을 치료할 묘약사랑
미국의 탁월한 정신의학자 칼 메닝거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사랑이야말로 세상의 질병을 치료할 묘약이다.” 이것은 그가 실험을 마친 뒤에 던진 말이다. 그는 환자들이 자신의 요양소에 있는 까닭은 그들이 무엇이 중요한지를 몰라서가 아니라고 판결했다. 지식은 그들을 치료하지 못했다. 그들이 요양소에 있게 된 것은, 그들이 사랑하지 않았거나 사랑받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의료진이 소집되었고, 고위직 정신의학자로부터 하위직 정신의학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의료진이 환자들을 사랑으로 대하기로 결심했다. 그들이 환자들을 사랑한 것은, 환자들이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여섯 달 동안 실험이 진행되었다. 실험을 마친 뒤에 그들은 평가의 시간을 가지면서 환자의 입원기간이 절반으로 줄어들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제야 질병의 원인을 정확히 알게 된 것이다. 환자들은 사랑해본 적이 없거나 아니면 사랑받아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칼 메닝거가 선언한 치료법은 이것이었다. “사랑이야말로 세상의 질병을 치료할 묘약이다.” 하지만 기독교 신앙은 그것을 늘 말해 왔다. 과학이 이제야 실험을 통해 같은 결론에 달하게 된 것이다(p. 334). 하나님께서 사람을 인도하는 방법
첫째, 신약성경에 기록되어 있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성품과 가르침이 우리의 길잡이이다. 둘째, 하나님은 선한 사람들의 조언을 통해서 인도하신다. 셋째, 하나님은 섭리를 통해 인도하신다. 넷째, 하나님은 그대의 높은 도덕적 지성을 통해 인도하신다. 다섯째, 하나님은 내면의 음성을 통해 인도하신다(pp. 376~378). 가능성, 차별
조지 워싱턴 카버 박사는 노예 부부의 아들이었다. 그는 땅콩과 고구마 속에 있는 가능성들을 발견함으로써 남부지역의 농업에 어림잡아 7천만 달라 어치의 기여를 했다. 그는 고구마에서 150가지의 상업용 물질들을, 땅콩에서는 300가지의 상업용 물질들을 발견해냈다. 나는 그에게 이렇게 질문했다. “당신은 어떻게 그런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까?” “나는 땅콩을 내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 이 땅콩 속에는 무엇이 들어있습니까?’ 그러자 창조주께서 ‘너는 두뇌를 가지고 있다. 그러니 가서 발견해 내거라’ 하고 답하시더군요.” 창조주 하나님이 주신 답은 굉장한 답이었다. 그분은 창조할 줄 아는 창조자들을 창조하려고 하셨던 것이다! “당신을 대학생으로 받아들이기로 해놓고, 흑인이라는 것 때문에 입학을 거부한 대학교는 어디입니까?”라고 물었지만 그는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라고 답했다. 하나님께서 조지 카버 안에 그토록 아름다운 정신을 빚어놓으신 것은 땅콩과 고구마에서 상업용 물질들을 뽑아내는 것만큼이나 위대한 창조였다. 아니, 상업용 물질들을 뽑아내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카버 박사님, 당신과 나는 똑같이 위대한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땅콩 속에서 기적들을 발견하고, 나는 사람들 속에서 기적들을 발견하고 있거든요.” 우리는 그의 실험실에서 서로 손을 붙잡고 서로를 위해 기도했다. 그러고 나서 나는 그의 손등을 끌어올려 내 입술에 갖다 댔다. 우리는 우리가 계급차별과 인종차별이 없는 하나님 나라에 속해 있음을 알았으며, 삶이나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위대한 인물을 마주했다는 느낌을 안고 그와 헤어졌다(pp. 515~5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