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생일
아내하고 결혼을 한 뒤에 서로 다른 가정의 문화에서 자란 이유 때문에 이질적인 것을 많이 경험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생일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처갓집의 경우에는 생일에 대한 개념을 그리 중요한 날도 여기지 않는 반면에 저희 집의 경우에는 나름대로 중요하게 여겼기에 생일에 대한 관심과 의미 부여를 하는 것에 대하여 아내가 결혼 초에 상당히 어색해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랬는지 아내의 경우에는 시집식구들이 중요시 여기는 생일날을 특별하게 보내는 시집 코드에 맞추기 위해 한 동안 낯설어 했던 시절이 기억에 있습니다.
지난 주 개인적으로 49번째의 생일을 맞이했습니다. 진해교회에 부임을 하고 사역을 할 때 교우들이 담임목사의 생일을 기억하고 젊은 목사의 생일임에도 불구하고 지긋하게 상을 차리고 섬겨주셨던 것 때문에 매우 당황을 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그렇게 5년 동안 익숙해져 있던 차에 제천에 와서 직전 교회를 섬길 때는 아무리 주의 종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고 하지만 담임목사의 생일에 대하여 너무 둔감했던 것 때문에 또 다른 당황함을 경험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런 극단을 경험한 뒤에 광야교회로 나와 처음으로 생일을 맞이했습니다. 세인교회에서 맞이한 첫 번째의 생일에 같은 제천에서, 같은 공동체에서, 같이 신앙생활을 했던 개척의 사역자들이 정말로 정성을 다한 그러나 절대로 사치스럽거나 분에 넘치는 섬김이 아닌 사랑이 넘치는 생일상을 받아 보았습니다. 종이 느끼는 감사는 정말로 감격적이었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속물근성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세속적인 목사라고 혹시 저를 나무랄지는 모르지만 어쩔 수가 없습니다. 세인교회에서 맞이한 첫 번째의 생일에 느낀 행복감은 이루 말 할 수 없이 감동적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담임목사에게 준 선물 때문이 아닙니다. 그 이유는 담임목사에게 건네준 생일 꽃다발 때문도 아닙니다. 그 이유는 차려주신 생일상 때문은 더더욱 아닙니다.
종이 세인에서 맞이한 첫 번째의 생일에 감격해 하는 이유는 성도들의 인격적인 사랑 때문입니다. 고용사장의 역할을 충실하게 하기를 원하는 조직 공동체에서 고독하게 있다가 비록 외형적으로 보잘 것이 없어 지금은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작은 공동체이지만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인격적인 사랑의 관계로 맺어져서 예배시에 교제찬양을 할 때 눈물과 웃음과 기쁨이 흘러넘치는 공동체가 되었고 목사와 성도가 서로 신뢰하며 사랑을 함께 나누는 바로 그 감격의 은혜를 나누는 공동체에서 생일을 빌미로(?) 아름다운 교제의 나눔을 그날 맛보았기 때문입니다.
여전도회 협의회 회장 집사님이 생일 케이크에 10살짜리 양초를 하나 빼려고 했다는 말이 왜 이리 따뜻한지요.
한나와 한빛이가 "목사님 감기(신종 플루)가 유행이래요. 건강 조심하세요. 제가 기도해 드릴께요"라고 보낸 생일카드가 왜 이리 눈물이 날 정도로 행복한지요. "목사님, 목사의 두 번째 미션에 동역하게 된 것에 감사드려요. 오늘은 무지하게 행복하셨으면 좋겠어요."라고 격려해 준 집사님의 문자 메시지는 왜 이리 목사를 감동케 하는지요
울산에서 종의 생일을 일부러 축하해주기 위해서 먼 길을 기쁨으로 올라온 이집사님의 사랑은 왜 이리 심장을 뛰게 하는지요. 성도들이 사랑으로 마련한 소박한 생일상에서 종을 위하여 진심으로 축복 기도를 해주는 장로님의 기도는 어찌 또 그리 은혜로운지요. 부족한 종을 위하여 인격적인 사랑을 전해주신 모든 교우들의 그 사랑이 그 어떤 생일 선물보다 가장 값진 생일 선물이었기에 종은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세인에서 맞이한 첫 번째 생일, 문자 메시지에 올라온 문구대로 '무지하게 행복'했습니다. 세인의 지체들에게 사랑의 마음을 담아 감사의 인사를 꾸벅 전합니다. |